발칙한 QT
내 그래서[시65:1-13] 본문
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나.
이랬으면 좋겠다.
정말.
다른 아무 것도 아닌
그 어느 것도 나의 관심을 끌 것 하나도 없고
하나라도 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것 없어
오직
주의 성전
그 아름다운 천국의 생명의 감동으로만
매일 내 영혼이 가득 차서
매사 매시 만족하게 되는
그런 삶.
곳곳에 이런 고백들이 나온다.
주의 집,
주의 성전 만을 바라보며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며........
나.
아직 솔직히 아무 자극없이 하루종일 두라면
아마 외로움의 무서움에 지쳐서 매몰되어
어디로 도망가고 싶겠지만
아직 할 일이 있고
퇴근하여 쉴 집이 있으며
그곳이 더구나 '영적 고센'의 아주 고요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코끝이 시릴 청정하고 아름다운 지역이어서
잠시의 시간을 주님의 성전,
그 성전의 아름다움의 흔적,
나름 깊은 은혜 속으로 침잠해갈 확률이 점점 많아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을
주님은 이렇듯 로고스의 하나님으로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확인 도장 찍으시는 것 같아
참 기쁘며 한편으로 더욱 더 그 사모의 분량을 넓히고 늘리라는
이야기이신 듯하다 .
'주하인아
네 방향을 알겠지?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을 사모함의 인생
고센 깊은 곳에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야곱이
그 나머지의 인생을 어찌 기쁘게 이어갔을 지 말이다.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천국의 기본 심정,
천국백성이 누리는 엄청난 에너지의 한 부분 아니겠니.. ' 하시는 듯.
그래.
내 그래서
다시 한번
이 늙어가야만 하는 인생의 생물학적 후후반부를 들어서는 자로서
아직, 아니다 .. 새로 기뻐하며 세상을 바라볼
남은 인생을 기대하며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내 변화들.
45세 넘어서 시작된 인생의 대 변화들이
그러함을 기조로 시작된 것이고
그래서 내가 앞으로 더 ,
'여호와 이레'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야 할 당위성인 것이다.
6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주는 그러시다.
모든 것 다 '주의 힘으로 ' 하신다.
우리 부족한 인생들이
마치 자기가 한 것 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뒤에 업고 자기 업적을 세우기 바빠서 이고
자기가 보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으려는 미련함을 '똑똑한 논리'로 착각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의 힘을 빌리시겠는가?
그 분은 단지 '그분의 기쁨'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통해 자신의 언약을 지키실 뿐이고
우리에게 그래서 '자유의지'를 주셨을 뿐...!
주님은 주님의 힘으로 모든 것 다 하신다.
겨우 산 뿐인가?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그러신다.
그리고 성령의 흐름으로 치리하신다.
그래
내 그래서
더욱 염려할 이유가 없어진다.
내게 주어진 무게?
어디가 있느냐?
내가 지었을 뿐.
내가 자부할 일.?
어찌 가능한가?
그 능력마져, 환경마져 하나님이 허락하셨던 것일 뿐임인데..
그래
그래서
난 주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다 .
'여호와 닛시 승리의 하나님'
' 엘샤다이 , 전능자 하나님''
7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바다의 설렘, 물결의 흔들림?
바다가 설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대 격변들.
불가항력적인 환경의 어려움들... 이다.
물결의 흔들림?
그것으로 인하여 가정이 풍파가 되던....
그 어떤 것이든 외적인 환경에 대하여
나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들이다.
가난해도 더 화목한 가정을 이루든
싸움으로 파탄이 나든
모두 그 사람들의 환경에 대한 반응 탓이다.
물결을 바다의 설레임 자체로 보는 것도
물결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혹은.고요한 간지러움으로 보든
모두 내가 만든 현상이다.
'만민의 소요'
이 구절이 이상하게 걸린다.
소요.
바다의 설레임도 , 물결의 정체도
그를 받아 들여 고요히 하는 방법도 이제는 안다.
하나님 안에서, 십자가 밑에서, 성령 안에서.. 말이다.
그러나 , 그 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원리를 알고 깨닫고
믿음으로 간직해도
아직 내 속에서 '소요함'을 멈출 수 없을 때가 있다.
이게 죄송스럽다.
이전에는 '죄책감'이었다.
"아..
저 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간증거리가 수도 없이 많으면서
매일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성령님을 체험함에도
어찌 내가 이러는 가?
나는 ... 나는... 나는..."
하나님이 말씀 말씀 말씀으로
수도 없이 이런 나의 '소요'를 달래 주셨었다.
"그건.. 네 부족함이 아니다.
네 알지 못하는 어려움,
반드시 벗어야할 육신의 가시를 벗는 과정이다.
그 가시의 파생이고
그것이 완전히 멈추면 성화된 존재가 아니겠는가?
안타깝지 만 사랑으로 기다리리라"
주님이 이러시는 듯해왔었다 .
오늘 말씀으로 '소요', 만민의 소요를
"진정하시니라'신다.
그래
그 진정시키는 것조차도
내 죄책감이나 노력이나 결단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
주님.
주의 힘으로만 가능함을
점차 더 깨달아 간다 .
주께서는 내 의지로 이겨내고 더 강해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더 좋겠지만
아픔이 있는 자, 불가한 자에게는
그런 소요에 대하여 소요의 이유되는 근저마져 바라보시며
기다리시고 때가 되어 말씀하실 시기가 되면
이렇듯 말씀으로 다시한번 '터치'하신다.
' 네 안의 소요' 마져 진정시킬 것이다"
아멘입니다.
주여
그래서 내가
주님을 더 기뻐하고 더 떠날 수 없이 붙어 있는
주님의 가지입니다.
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 초장의 양 떼로 옷입었다"는 표현을 읽으면서
녹색의 초장에 갑자기 오물 오물, 꼬물 꼬물 거리는
흰색의 무리들이 점차로 퍼져나가며
녹색과 흰색으로 채워져가는 ...
마치, 드론에서 촬영하는 동영상을 보는 듯
머리 속에 잠시 영상으로 스치는 듯 하며
노래하고 싶어졌다.
'흥얼 흥얼 ... ♬'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만을 기뻐하고 살려는 자들,
그들의 안에 오직 하나님 만이
하나님의 자체,
하나님이 오직 구주 임이 기뻐하는 자
성전 , 시온의 성전, 천국의 하나님 보좌가 계신 그곳 만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진정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떤 폭풍우의 물결도 바다의 해일도
그로 인한 물결도
그 사람안의 어떠한 이유의 '소요'도
더 이상 문제가 되어지지 않는다.
이제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 만이 기쁨이기에
이 세상의 것들은
주어지면 감사하고
안 주어지면 청정하게 되며
다가오면 기뻐하고
떠나가도 든든해지게 될 것이고
가지게 되면 풍성하고
놓게 되면 자유로와 지는
그리고 그의 매사의 궁극은
하나님께 얼마나 기쁨이 되어 드렸는가가 관심이 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
그래서 나는
더욱 하나님을 기뻐하고
매일 말씀과 기도로 바라 보아야 한다.
걱정 근심?
가라..
매일 감사와 기쁨이 내것이 될 것이고
주께서 원하시면
초원이 흰양떼로 그득하듯
채워주실 것이며
아니면 다른 풍성한 기쁨으로 우리의 소유를 채우실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족할
내 이유다.
내 나머지 삶이
그래서 행복하다.
주님.
오늘도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에서
제안에 기쁨이 ., 평강이 그득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지금도 잠시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나이다.
주님이 아시는 바
제 안의 소요들이 고요해짐을 느낍니다.
어쩌면 짙푸른 초원에 양떼가 드글 거릴
물질적 풍요든
즐거워 소리쳐 외치는 영적 풍성함이든
주께서 주실 축복을 기대합니다.
지금도 주신
이 하나님의 성전을 기대하고
그 아름다움을 사모하는 마음에
더 큰 시간과 기대와 사모의 크기를 더하소서.
내 주여.
내 혼자 되지 않사오니
주께서 그리하소서.
성령으로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 크시고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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