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고민이 영생이 되게 하소서[막10:17-31] 본문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사람, 그것도 부자청년인 한사람이
예수께 달려와 꿇어 앉아 여쭙는데
그것도
'영생'에 대한 것이다.
꿇어 엎드린다는 것,
그것도 가진 게 많은 자가 그렇다는 것,
그것은 '절박'하지 않으면 그리 될 수 없음이다 .
하지만,
그 절박에 대한 것이
인생살이의 문제가 아니고
'영생'이라면
문제가 달라지지 않을까?
가진게 많은 자가 무엇이 절박하여
'영생'을 그리할까?
아.. 단지 그 사람의 속성 상
철학이나 형이상학, 예술에 관심이 많은 것이라면
그의 가지고 못가짐에 상관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저리 절박함을 보이진 않을 게 거의 분명하다.
그리고, 대부분. ..
철학이나 예술 등은 가난하거나 청빈을 추구하는 자들이
그런 추구를 하는게 보통 아니던가?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특이함.
그 특별함을
예수께서는 (꿰뚫어) 보시고
'사랑하'셨다.
그 특별함은
'영생'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것 아니던가?
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하지만,
영생이
진정
깊은 문제가 되고
우리가 사는 본질의 문제가 되어
영생을 위하여 이 땅을 사는 것이
온전한 관심이 되기 위하여서는
'그 많은 재물',
이 땅의 것에 대하여
내려 놓을 수 잇어야 한다.
그것.
스스로의 힘으로
면벽으로
목탁이나 자신의 육신을 괴롭힘으로 가 아닌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성령의 힘으로 말이다.
그제야,
이땅의 것을 도외시하고 내세로 도망하는 어리석음이나
단지 논리의 유희나 철학적 사고에 그치지 않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방법이다.
오늘 내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
이제
'영생'을 더 사모하는 자되거라....다
내 유일한 고민이 '영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하다.
또 이 아침.
사랑하는 자로서의 주하인이 될 수 있는
지침을 허락하셔서..
주여.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
수없이 많은 유혹과
그보다 더 많은 장해물들이
주님의 나라,
온전한 영생을 고민하고 갈구하는 길을
막아섭니다.
코로나도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예수 앞에 회개 하고 돌아앉아
곧오실 예수님을 사모하기를 바라심으로
허락되어지는 일들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먹고 사는 문제로 인하여
가진 것을 잃을 두려움으로 인하여
주님..
주님의 뜻,
주님 나라에 대하여
자꾸 잊게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영생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주저 앉아 간구하는
젊은 부자 청년을 봅니다.
주여.
과정에서
진심으로 넘어가야할
가진 재물마져 내려 놓을 수 있을 만큼
절절한 사모가 더 필요함을 보았습니다.
제게 그리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이제.. 영생에 대하여
오늘 하루라도 집중하여 생각할 기회를 허락하소서.
주님.
그게 온통 제 관심이 되게 하소서.
그를 위하여
어떤 것이라도 내려 놓을 수 있는
과감한 결단을 제게 허락하소서.
주님.
그리하기 위하여
성령으로 인도하셔서
영생의 간절함을 제게 허락하소서.
주여.
오늘 하루라도
영생에 장애가 되는 그 어떤 것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결단케 하소서.내 주여.
거룩하시고 살아계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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