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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고 계신다(막6:45-56 ) 본문

신약 QT

날 보고 계신다(막6:45-56 )

주하인 2011. 1. 19. 10:08
제 6 장 ( Chapter 6, Mark )

 

그렇다

 

잠시

구름이 눈을 가리고

바람이 으슬 거리게 하여도

그 뒤에

해가 있음은 불변이다

 

그렇듯

주님 예수님께서

날 보고 계시고

내가

그 눈안에 있음도

전혀

변할 수 없는

진리이고

사실이다

 

감사하다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주님이 재촉하신다.

 먼저 다른 편으로 배저어 가라고..

 

주님의 뜻 안에서

'메마른' 듯, 홀로 있는 듯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인생의 모든게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 없다.

내 모든  게 주님의 뜻이다.

아니, 어쩌면 고난은 그 분이 건너길 재촉하시는

진정한 뜻에 속해 있는 지도 모른다.

고난은 달갑게 받으면

주님을 위함이다.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그때도

주님은

날 위해 기도하신다.

주님은 날 위해 단 한순간도 쉬지 않으신다.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인생의 원리는 '연단'이다.

주님이 홀로 보내신 이유는 인생의 바다에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test를 거치기를 바라심일 수도 있다.

과도한 편안은 썩음이다.

향기 없음이다.

정체다.

 

 이때 , 연단 받는 우리 믿는 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은 뭍에 계시어 전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

'외로움'과 '절망'에 빠질 수 있다.

아..

그것도 예수님을 의식할 수 있는 분들에게만 그렇다.

믿음이 일천한 주 모같은 자들은 온통 몸부림 뿐일수 있다. ㅜ.ㅜ;;

 

 


 
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그렇다.

주님은 그 깊은 밤,

그 멀리 산에서도

인생의 괴로움을 보시고 계신다.

그것을 믿지 못함이 문제다.

믿는 자들에게는

그 분 예수님이 바다위로 걸어실 동안의 괴로움 조차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그러기 위해

당연히도 '믿음'의 성장이 우선이지만

마땅히 오늘 내가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주님이 해 주신

그 수많은 '간증거리' ,

기적같은 사랑의 증거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

특별히 나 같은 자들은 편해지면 마음이 해이 해진다.

둔해진다.

그러함으로 폭풍이 불어오는

홀로 있는 듯한 외로운 시간에 닥치는 어려움은

그 감사함을 잊게 만든다.

'배은 망덕 !'

사람은 대부분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예수님께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러기에 그러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늘 '오병이어의 떡 떼시던' 그 놀라운 일을 잊지 않도록

되뇌이고 되새김도 필요하다.

감사하신 주님을..

 

 

 엊 저녁.

퇴근 후 트럼펫 모임을 가려고 식사 먼저 하려 병원 식당에 내려가서

' 중견 탤런트'이신 분 - 병원 호스피스 봉사를 많이 나오신다 -과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비슷한 연배이신 그 분은

늘 힘이 있는 언어구사와 눈빛이 형형하셔서

믿음으로 단단하게 서 있는 분으로

호감이 가던 분이시다.

 한참을 대화하던 중 그 분이 그러신다.

'지난 해 여름에 김수로라는 드라마에 부족장 역할로 나와서

한 7회분인가 촬영을 하고 났는데

갑자기 PD님이 돌아가셨어요.

65세 되신 분이신데 ..

새로 그자리에 올라오신 감독님이 젊어서인지

단 한번의 생각도 없이 전개해오던 스토리를 과감히 바꾼다며

'부족장들 다 죽여..'하는 바람에

단번에 역할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때 전 충격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어디에도 끈은 없었는데

그런 배역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촬영에 임하고 있었는데

단 한번의 예상치 못한 일로 잘려 버리니

이것은 .. 마치 이단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을 원망 많이 했었습니다.

 .......

이제 다시 회복했지만요.'

 정말 의외다.

열심히 병원에 나오시고 단 한번도 그런 모습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사람의 깊은 속을 함부로 외견 만 보고 예측함이 불가함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한편, 오늘 묵상에서

예수님이 동행하지 않으신,

홀로 방치된 깊은 밤의 뱃속에서 마주하는

격랑의 두려움은

인생의 환난과 풍파를 겪어 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

그중에서도 우리 세대의 아픔과 어찌 다르다 할 수 있을까?

그 분은 더구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니

사람의 눈치와 하나님의 눈치 사이에서

더욱 큰 격랑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때 누구라도 '예수님이 보시고 계심'을 잊지 않을 수 있을까?

보시고 계심을 잊지 않으려 노력해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주님은 '떡떼던 그 기적의 간증을 잊지 않기'를 권유하신다.

 

 난 어떤가?

괜히 '1월'들어 이해할 수 없이 환우가 확 준다.

나름 , 주님의 뜻 안에서 가장 선한 일이라 생각하며

지난해 열심을 다해 '논문'을 썼던 것이 제동이 걸렸다.

 올초 들어 괜한 인간적 낮아짐을 경험한다.

변화 없는 내 내적 터부들이 다시 기를 쓰려함이 느껴진다.

나름으로는 기도는 하려 노력하고

그래도 말씀은 붙들려 하고는 있는데

마음은 자꾸 메마르다.

조금 더 그대로 있으면 '풍랑'이 거세질 것 만 같은 필링이다.

조금씩 당황하고 있었다.

이전과는 물론 다른 대처도 없지 않지만...

 

 어제 묵상 적용에 '기도원'이 있었다.

트럼펫 모임을 마치고 9시 넘어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

오랫만에 '기도원'으로 확틀어 들어갔다.

마침 기도회가 끝나서 사람들이 몰려 나온다.

딱 그시간이 난 좋다.

사람들의 뜨거운 기도소리가 남아 있고

찬양 반주가 이어지는 시간,

그 틈에 성전의 복작거리는 틈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서

방석을 깔아 놓고 십자가 바로 아래에서 조용히 조용히 읊조리는 기도를 했다.

시끄럽고 집중이 안되고

며칠 간을 멍하고 메마른 마음이 지속이 되어

기도가 될까 하는 나름의 생각을

늘 그렇듯 주님 뜻대로 이끌어 가실 줄을 믿고 - 그러고 보니 믿음이 생겼다... !  ♥'- 그냥

그렇게 그렇게 기도했다.

은혜가 많이 온다.

차분히 기도하고 집에 돌아 오니 아내가 지친듯 잠이 들어 있다.

그럴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이라 걱정이야 했겠는가 마는

머리를 수술하는 두려움에

나름 깊은 내적 에너지 소모가 깊을 것이다.

얼른 닦고 곁에 누워 잠을 잔 후

아침에 일어나 묵상집을 들여다 보니

조금은 선명하게 말씀이 다가온다.

 

' 의도적으로 허락하시는 메마름'

' 연단을 위한 고난'

 

'그들을 위한 끝없으신 기도'

 

' 그리고 우리가 느낄 수없는 상황에서도

 보시고 계심'

 

'상황을 넘어서는 임재'

 

' 해결하심'

 

그렇다.

주님은 내 이렇듯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메말라 하고 격랑에 흔들릴 것 같은 불안함을

이해하시고 강하게 하심이시다.

내 ... 생각지도 못했지만 내 속에 들어온 '믿음'의 싹처럼

조금 더 아프시지만 기다리고 밀어 넣으신 '연단' 후

내가 정금처럼 나올 것을 기다리시는 것이시다.

어쩌면 남아 있는 내 인생동안 더 힘든 일이 어찌 없을 수 있겠다고 장담하겠는가?

그렇다면 그 안에서도 날 '보고 계시는 그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강력하게 믿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이 '인생의 과정을 통하여 믿는자들에게 보시고 싶어하시는'

그 분의 창조의 진정한 목적에 합당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 주님을 믿어야 한다.'

그 분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믿음이다.

현재의 흔들림도 다 주님 뜻 안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믿어야 한다.

기뻐해야 한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잊으려는 이 망각의 순간에

나와 동행하셨던 일들을 되새겨야 한다.

떡 떼주셨던 그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게 보이신 오병이어의 그 기적을...

 

 

적용

1. 간증을 되새긴다.

 . 날 구원해주시던 그 순간 순간들,

 . 날 인도하시면서 함께 하셨던 그 강렬한 기억들.

 . 나에게 허락하신 그 놀라운 축복들.

 . 말씀 말씀이 살아 움직이시는 순간들.

 . 그 감동........

 

2. 전도한다.

 . 인생의 목적은 말씀 순종하며 변화함이다.

  전도는 순종해야 할 기본이다.

  말씀 전할 때 주시는 놀라운 축복과 감동을 기억하자.

 

 간질이 있으신 환우 한분에게 전도 했다.

 산부인과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시고

 혹시 추후 수술 할 수 있을 시 간질과의 관계에 대하여 물어 오시자

 '스트레스'에 대하여 촛점을 맞추었다.

 '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간질은 잘 재발하지 않는다.

 그 기본은 영혼이 편해야 한다.

 난, 내가 알고 있는 평안은 평강'이라 한다.

 눈물 날듯한 기쁨의 평안.

 그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내가 너를 쉬게 .. ' 라는  몇 구절을

 속사포 쏘듯이 환자에게 선언하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하며 내 간증을 곁들였다.

 환자분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내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예' 했다.

 예수님 믿겠다한다.

 할렐루야.

 난... 전도하고 .. 말씀 대로 내 간증을 다시한번 깊이 되뇌이었다.

 전도하는 내내 내 입은 은혜로 달떠 있었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말씀은 살아계시다.

 너무 시의 적절하신 말씀으로 살아계신 아버지가

오늘 아침도 내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매일 달게 읽으리라.

 

4. 보고 계시다.

 공중에 그 분의 눈이 있으시다.

 내 가슴 속에 그 분이 계시다.

 그 분의 눈 속에 내 모습이 이쁘게 들어 있다.

 내 일거수 일투족을 그 분은 이쁘게 보신다.

 이쁘지 않아도 이쁘게 보신다.

 난 그것을 묵상하리라.

 

5. 어떤 상황에도 주님은 다 보고 계신다.

 다 그분의 뜻 안에 있다.

 곤란?

 환란?

 곤고?

 모욕?

 두려운 상황?

 그분을 염두에 두지 않는 단어들이다.

 염두에 두면 그 분은 모두 '희망'이고 '소망'이고 '연단'의 정금으로 화한다.

 

6. 내 메마름의 정체를 알려주셔서 감사하다.

 기도해도 허락받지 못한 이유는

 연단이시다.

 주님은 그것마져 다 보시고 계시고 의도적으로 허락하신 것이기도 하다.

 

 

 

기도

 주님 그랬습니다.

제가 마음이 메말랐던 것이

어쩌면 기도했지만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혹시 .. 하는 불신앙이 자리잡아 가기 때문이었던 것을

어제의 대화로

어제의 말씀 적용 아주 조금인 기도원행으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루어 주지 않으셨음은 날 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의도적 연단 과정이었고

그 과정에서도 주님을 믿고 보고 있도록 훈련시키시는

주님의 뜻 안에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힘이 된것은

그럼에도 그 멀리에 계신 듯한 '예수님'이 날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주님의 눈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내 어려움.

어렵지만 주님을 믿고 확신하는 믿음 만 있다면

금방 해결해 주실 것임을 압니다.

배웟습니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고

그 밤에 찾아 오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주시고

바람과 물을 잔잔히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과거의 기억으로 보아 그랬습니다.

기적처럼 다시 일어서고

놀랍도록 변화하게 하시고

다시금 하나하나 내 빈곳에 보형물 채워 넣듯

말씀으로 믿음으로 채워 넣으시는

주님의 그 다지심을 느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늘 보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니 감사합니다.

그 보시는 눈길이 너무 자애로우시니 감사합니다.

멀리 계신 듯해도

느껴지지 않는 메마름이 자리 잡아도

그래도 주님은 날 보고 계신 사실이

단 한번도 절 향한 눈길을 떼신 적이 없는 사실이

절 희망에 부풀어지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 자식들에게도 그리하시고

제 아내에게도 그리하시고

새로 믿으신 어머니께도 그리하시고

우리 형제들에게

모든 친척과

잘 믿는 세상의 모든 기독교인들,

특히 이 블로그에 오셔서 말씀을 사모하려는 결심을 가지신

모든 당신의 뛰어난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느낌으로 기쁘게 하소서.

특별히 이름 기억하지 못하는

어제의 그 만남의 형제분을 기억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기쁨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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