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난 배부르다( 출16:16-36 ) 본문
제 16 장 ( Chapter 16, Exodus )
분수 밑의 흰꽃.
난 왜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만 보아도
이리 가슴이 흔들릴까?
흰꽃의 분수를 바라봄이
내 영혼이
예수님을 바라는 마음을
상징해서는 아닐까?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인간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많이 거두나
적게 거두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남을 것도 없고
부족할 것도 없다.
많이 벌어
대회사 회장이 되어도
10배나 더 많은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토록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젊음이 무한히 유지될 수도 없는 것이고
가난하다고
그들보다 호흡을 덜하는 것도 아니다.
많이 가져도
죽을 때는 달랑 수의 한벌이 전부인걸...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재테크가 무얼까...
노테크는 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그것보다는
하루를 귀중히 살려 노력하면서
남을 위해 베풀다가 가는게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세상의 성공을 위해
비전이라는
그럴 듯한 단어 아래서
오늘을 희생시키며
남을 밟고서라도
자신 만 편안히 살려 노력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결국 죽을 것을..
또한 노후를 편히 살아도
죽는 것은 곧 닥칠 것을..
오늘의 묵상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신다.
주님을 의지하려 결심하는 자들은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의지하여야 한다.
그길은 비록 쉽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한에서
매일의 만나를
감사하며 사는 삶이 당연하다.
비록 난
박쥐같이 눈치만 보지만...ㅎ
22. 제 육일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24.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어느 때는
더 거두고 저장해야할 때가 있다.
안식일 전날 그랬다.
우리의 인생에도
어느때는 많이 거두어서 모아야 할 때가 있다.
이때는
주님이 명하신 때다.
난
주님을 믿고 나서 편해진게 이거다.
늘
몇가지 생각의 가능성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선택을 해야 할 때는 '에구.. '하면서
찍듯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보처럼..
그러나,
믿는 우리에겐 '여쭈어 보기만'하면 된다는
간편한 방법이 있음을 안다.
기도를 깊게 잘 못하는 나는
응답은 못받지만
말씀을 통하여
묵상 중에 그림처럼 생각이 떠오를 때 가 있다.
그러면 그게 주님의 뜻이 아니시면
막으시라고 하며 진행하기도 한다.
성공한다.
그리고 그보다 큰 기쁨이 날 찾아온다.
주님을 의식하고 한 일...
이게 스스로 참 자랑스럽고
은혜가 날 가만히 두지 않는다.
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4.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내 인생의 만나는 무엇인가?
무어라 딱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돌아보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만나 덕이란 것을 안다.
난 날마다 그 분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어서 지금까지 왔다.
의원 원장으로 있다가
다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밟으려 왔던
이 병원에 '산부인과 과장'으로 주저 앉으면서
금전적으로 상당히 적어졌었다.
아이들은 많이 컸다.
과거의 눈으로 보면
불행한 상황이고
많이 배고파야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난 정말 만족한다.
그것은 돈으로 표현되는
일생의 양식을 넘어서는
다른 것으로
내 영혼이 풍족히 되어서 임이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통한
매일 같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 탓이리라.
이것은
논리의 장난이나
이전에 쓰신 분들의 글을 맹목적 차용하거나
예수님의 말씀이니 무비판 적으로 받아 들여 인용하는
괴리가 많은
그런 단어의 선택이 아니다.
난 지금 배 부르다.
지금 뿌듯하다.
장래는 불투명하고
가진 것 별로 없지만...ㅎ
그것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만나'
즉, 하늘의 양식이 비같이 내 영혼에 내리기 때문이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한다.
주님이 공부하라면 한다.
나이 40말에 새로운 내시경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주님이 인도하신 결과임이 분명하다.
아니시고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의원 경영 중
내 정욕에 만족할 정도의 돈이 벌어 졌었더라면
난 중늙은이로 변해 있을 지도 모른다.
노는 것 좋아하고
육신의 쾌락을 채우는 중독적 기호를 채우는 것을 즐기는 심사상
어디하나 고장 나 있을 지도 모른다.
수술은 .. .... 만 하고 있을 지도..
아.. 개인의원 원장님 들 비하가 아니다.
그 분들은 그 분들 나름대로
멋진 사명의식으로 생명 지킴이 역할을 하신다.
얼마전 돌아가신 수십만 명 노숙자를
무료 진료하신 요셉의원 원장님 만 보아도 그렇지 않는가?
난 내 수준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주님은 나에게 맞는 '만나'를 허락하셨었다.
지금도 그렇고 ..
이제 내가
주님 뵈올 그 요단 강 넘어에 가게 될 때까지
내 만나를 끊임없이 부어 주실 줄 안다.
문제는
이전에 그렇듯
수많은 시행 착오 후에야
만나가 맛나는 만나임을 알게 되는
그런 어리석음은 피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이 하라시면 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라면
이전처럼
어쩔 수 없이 월급이 낮추어지는 것 같은
그런 피동적 상황에 빠지기 전에
이제는
그냥 주님의 말씀을 능동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그 분이
지금껏
세상의 모든 것도 그러하셨듯
이스라엘 백성에게 필요할 때
2일간의 만나를 수확하라 말씀하셨던 것처럼
일상의 필요한 것은 채우실 것을
알기에 그렇다.
만나
만세 !
적용
1.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
그랬다.
2. 묵상은 생명이다.
모든 것을 주님께 물어 보고 한다.
그 길은 묵상과 기도다.
3. 며칠 후 있을 장도에
아내의 건강이 무리가 갈까 걱정이다.
기도한다.
4. 당직이다.
기쁨으로 최선을 다한다.
5. 성경 여섯 장 읽겠다.
6.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루를 산다.
참는다.
기쁨으로...
기도
주님
늘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주신
만나를
매일의 양식으로 기뻐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자꾸만 속에서 나오는 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반발처럼요.
그것은
양식으로만 만족하고 살지 못하는
인간의 죄악성 탓일 줄 압니다.
자꾸만 자꾸만 허덕이게 만들고
무엇인가 갈급해 하게 하는 정욕의 부분인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은
말씀으로 인도하시며
만나를 먹이듯이
영혼의 만나를 매일 내려 주셨음을
감사하며 고백합니다.
그 만나로
제 영혼은 살찌워 지고
제 육신의 세력은 점차로 낮아지고 있음도 압니다.
그러나,
고백하였듯이 아직도 순간순간
놀라울 정도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옛 성질과 구습이
절 힘들게도 하고 있습니다.
주여
지속적으로
주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만나로서 만족하게 하는
만나만으로 배불러 하는
여유로움을 가지길 원합니다.
양식 이상의 것을 욕심내는
이 욕심을 가라앉히소서.
또 하나 빌 것은
아내가 몸이 안좋습니다.
낫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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