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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精대로 행하여( 출17:1-16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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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精대로 행하여( 출17:1-16 )

주하인 2008. 4. 25. 09:23

제 17 장 ( Chapter 17, Exodus )

 

 

 내 인생 

가는 길목 길목은

심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 것을 건너서

넘어지지 않고 올 수 있었음은

모두 주님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였습니다.

 

 피보다 붉은

그 분 사랑 탓이었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우리는 가야한다.

신 광야는 엘림이 있어 쉴 곳이지

끝까지 있을 곳은 아니다.

 여기서 끝까지 머무는 것은

'여기가 좋사오니' ..이다.

 

 노정대로 행한다고 한다.

路程 ( 정해진 길...)

갈길을 가야 한다는 얘기다.

 주님께서...

 

 주님이 정해주신 노정

즉, 갈 길은 어디인가?

요단 강 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닌가?

 그곳을 가기 위해서

신광야의 편안함을 벗어 버려야 한다.

잠시 '마실 물이 없는 '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이다.

아니

기독교인의 마땅히 걸어야 할 인생이다.

불신자들은 예외다.

그들은 그들 마음대로 산다.

 여기서 관심을 보이는

인생 노정이란 

'기독교인'에만 국한된다.

 

 휴~~

감사하다.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 백성들은 불평이 심하다.

왜 그럴까?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걸 알고들 있을 텐데

왜 그럴까?

 노정이 비록 쉽지는 않지만

그 길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시는 데도

왜 이럴까?

 인생길,

쉽지 않지만

왜 나에겐 기쁨보다 힘듦이 더 강했었을까?

지금은 비록 덜하지만.. 

 

 여기서

'노정대로 행하여'라는

오늘 주신 말씀이 답으로 다가온다.

 

 주님의 뜻하신 바를 알고 그 뜻을 확신해야 한다.

내 인생길이

나를 위함보다는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과정이고

내 노정의 끝에는

천국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영혼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하며

좋은데 간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최소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10대 재앙을 통하여 보았고

홍해를 통하여 확인했고

날마다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만나와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확인했을 것이며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데서

다시 한번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흔들린다.

 그것은

'노정대로 향하는 '

그 노정의 끝이

요단강 넘어..임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내 인생의 끝이 천국임을 확신하는가?

주님이 내 인생을 간섭하심을 알고도

또 흔들리지는 않는가?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하나님

세심하시고

인내력도 대단하시다.

 더더구나

반석에서 물을 내시어

그나마 지혜있는 자들이

당신의 살아계심을 또한번 깨달아 주기를 바라시는

간절한 주님의 우리에 대한 기대를 보이신다.

가슴이 저린다.

 

 기적을 보이는 도구는

지팡이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를 바라신다.

그 과정은 힘이 들어도

주님을 의지하면

모든 것 다 챙기신다는 것이다.

그 분은

내 곁에

나에게 익숙한 도구, 사람들을 통하여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신다.

 

 

  
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출애굽 후의 삶이

비단 목 마름 배고픔 뿐인가?

 사단의 역사가 또 얼마나 클 것인가?

세상의 풍파

익숙한 사람들에 의한 배반

이혼,

사별,

상처

다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사단은 우리를 흔든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내 지팡이는 내 지팡이가 아니다.

내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다.

 지팡이를 통하여

주님은 또 싸움을 승리로 이끄신다.

 

 내 지팡이는 무엇인가?

내 노정을 다 마치는 데 나를 도울 나의 지팡이는 무엇인가?

나로 익숙하며

주님의 사랑하시는 도구이며

나를 돕는 ..

 아내인가?

그럴수 있다.

내 달란트인가?

직업인가?

 

 

 

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어찌되었던

어떤 도구를 쓰던 간에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주님을 끝까지 쳐다보는

'여호와 닛시'

즉,

승리의 깃발 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 노정이 결코 쉬운 길 만은 아니고

일반

기복적교회에서

그리도 강조하는 '축복'만이

하나님의 원리가 아님을 알수가 있다.

 

 승리는 싸움을 전제로 한다.

 우리 인생 노정은

배고픔과 목마름

사납고 험한 환경

마귀와의 싸움을 필연으로 한다.

그것은

주님이 허락하신 '시험'의 여정이다.

 이 노정 자체가

아담으로 말미암은 원죄의 부속 성질,

자범죄를 뽑아내는 연단의 과정이고

이 정결해진 영혼이

천국의 삶을 누려야 하거늘

고난과 연단은

당연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당연한

'노정에서'

내가 가져야 할 인생에 대한 태도다.

 

 모세나 아론처럼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노정이 주님 곁으로 가까이 가는 과정일 뿐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풍파가

단지 고난이 아니고

주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확연히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주님을 선택할 의지가 생기는 것이고

선택하는 순간

주님이 우리의 영혼에 역사하셔서

선한의지를 불러 일으키며

샬롬의 심령천국 안에 거하게 된다.

이것은 보통 말하는 '은혜' 받았다는 증상을

그 기본으로 한다.

 이 성령의 은혜가

에너지가 되어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힘들어도 힘들지 않을 수 있다.

 

 삶은 고해의 바다다.

누구의 표현대로..

주님이 허락하신 연단과정은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어려운 길이다 .

 

 여호와 닛시

 

주님 만이

오직 주님의 도움 만이

이 노정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놀라운 평강의 기쁨 가운데

온전히 주님 나라에 까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게 '코람데오'다 .

 한번 비취임을 받고 끝났다고 생각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달라고 하는 기복적 생각은

엘림에서 머물어 살기를 원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다름이 아니다.

그곳은

곧 질력이 난다.

그들은 더 큰 것을 원하게 되어 있다.

어차피 인생은 머물어 있으면 썩게 되어 있다.

그게 본성이다.

인간의 죄악이다.

 결국

우리는 가야 한다.

결국 우리는 기복을 벗어나

온전하신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온전하신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쁨과 감사함과 놀라움으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주님 뵐 때

두팔 들어 그 분의 맞으심을

받아 들일 수 있어야 한다.

천국의 온전한 평강과 함께.. ...

 

 

 

 

적용

 

1. 난 길 위에 서 있다.

 지쳤다

쉬고 싶다..가 요새 내 단골 메뉴의 단어다.

아직은 가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면 그래야 한다

힘내자.. 주하인 ~

 

2.  엘림은 내 끝까지 머물 곳 만은 아니다.

 어쩌면 허락되실 주님의 요구에

민감하게 눈뜨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주님이 원하시던

'예'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내려 놓자.

 

3. 불평을 하지 말자.

 알면서도 입을 떼면

놀라웁게 막지 못할 힘을 가지고

내 입에서 불평이 쏟아짐을 깨닫고 있다.

 그 속의 원흉은 사단이다.

사단이 원죄로 인한 상처를 붙들고 흔들어 댄다.

상처가 컸었던 자들은 그 드라이브를 이겨내기 쉽지 않다.

430년 노예의 상처는 거의 전 영혼이 벌겠었을 것이다.

입을 닫는 것이 원리다.

 

4. 주님 만 본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먼저 주님 생각하겠다.

 

5. 내 주위 사람들을 귀히 여기겠다.

 내 가족

 내 동료들

 내 환우...

 내 친구..

 내 민족..

 내 .............................

 그들 이 내 지팡이가 될 수 있다.

 

6. 어려운일이 있어도 주님을 의식하면 모두 해결될 것을 믿는다.

 논리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상황도

주님은 해결하신다.

항상 날 넘어 서신다.

예측해서 기뻐할 일이 없다.

예측해서 두려워할 일은 더 없다.

 캐나다 워크샵.

얻을 것도 많을 것이다.

쉼도 있을 것이다.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7. 성경 여섯 장 읽겠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내 인생 모두를 엮어 가시는 주님.

내 익숙한 것을 통하여 역사하시고

앞으로도 역사하실 하나님.

 내 주위 모든 자들

내 주위 모든 것을

사랑하기로 결심합니다.

아니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그 마져도 도우소서.

엉터리 같은 이 심사는 사랑할 수 있을 자만 사랑하려 하고 있으나

주님

당신이 도우시면

주님 뜻같이

주님 뜻대로 사랑케 하실 수 있습니다.

전 압니다.

그동안 역사하셨던 당신의 역사가 그 증거입니다.

사랑합니다.

도우소서.

내 인생길 여정이

얼마나 남았을지

얼마나 어려울지

얼마나 가벼울지

전 알수 없으나

주님의 팔을 의지하여 나가오니

주님 만 보게 하소서.

반드시 갈길 힘써 나가길 원합니다.

그리 인식하고 인정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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