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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난, 기대고 싶다[시146:1-10]

주하인 2012. 12. 27. 11:05

내 안에는

아직도

외로움 남아 있어

 

나로

기댈 곳

의지할 곳

바라고 찾게 하나

 

이제

내 영혼

눈들어 다시

하늘 바라보라 한다

 

어느새

아침이

저렇게 밝게 왔으니

두 손들어

할렐루야

찬양하라 하리라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할렐루야"

(할렐루야는 히브리어이고 알렐루야는 라틴어 - 오늘 처음 알았다 ^^*)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탄사

말 그대로 하나님이 기쁘고 감사하고

그 분의 임재함의 은혜가 놀라워

자신도 모르게 내는 감탄의 소리 ~~
 

이제 곧 3절이하 '의지'하는 사람의 심사에 대하여 나온다 .

그렇다.

나.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

난.. 인생..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빨리 주님 부르시어

아무 고민없는 저 .. 나라 같으면 좋겠는 사람이다.

이 땅..

어찌 어찌 살아내어

아주 아주 조금이나마 하나님의 뜻에 맞는

영혼의 숙성화, 성화를 이룸의 소명이

다행이도 이루어진다면

어서 어서 주님 부르셨으면 좋겠는 사람이다.

 그런 '삶의 어려움과 감탄'이 나올

수학적 집합관계나 서로 비가역적인 관계에서.. .

즉..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할렐루야'하고 감탄의 소리가 나옴은

영적인 경험,

은혜의 체험이 있지 않고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오늘 '내 영혼아'..라는 표현은

더더욱 '은혜'가운데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

조금은 성장한 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다.

어찌 내가 내영혼에게 '명령'을 할 수 가 있던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

그런데 그게 '할렐루야'라는

자신도 모르는 감동의 상태에서 나오는

감탄의 소리와 더불어 나온다는 것은

정말, 이 오묘한 하나님의 은혜의 체험이 없는 자들에게는

'오류'와 '가식' 덩어리 일 뿐이다.

 

그런데..

나..

이 '할렐루야'가 너무 마음에 든다.

찬양하다 말구 나도 모르게 '할렐루야~~!!! ' 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경우가

서너차례는 될 것이다.

'아멘 ~~!! ' 도 그렇다.

설교 말씀듣다가 '할렐루야 ' 하고 외치고 싶은 것을

몇번씩 누르는 지 모른다.

 

이것.

이러한 '할렐루야'의 감탄은

'내 영혼'이 성령의 감동하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령'하나님께서 인도하심 받게 하기 위하여

'의지'를 발휘하여야 했음도 사실이다.

솔직하게 아침마다 '큐티' 하려 의지를 발휘하는 것도

그리 쉽지 만은 않았다.

말씀 묵상은 지금도 '부담'으로 막아서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난 '내 영혼아.. '한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드려 '찬양'을 올리는 것이

그 분이 나를 만드신 이유시라면

난 그 분을 위해 내 무언가를 해드려야 함에도

난 정말 제한점이 많은 자이다.

그러함에도 나에게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말씀 묵상을 통하여 '레마'를 받아 들이고

내 앉은 이 조그만 반경의 삶의 틀 속에서

블로그에 올리고

내 적은 영적 깨달음을 이 어지러운 사이버 공간에 외치고

...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지금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자.. '하고 달랜다.

 

이리 말하면

예수님 믿는 것은 '내 의지'가 우선인 것처럼 들린다.

영혼을 거스르는 것을 내 의지로 그냥 누르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아니다.

아주 많은 분들이

갈렙이나 여호수아의 그 영웅적 모습을 그리며

영적인 큰 틀을 가지고 밀고 나가시다가

지치는 것은 무슨 일인가?

'내 영혼아... '만 가지고 나가기에 그렇다.

 

그 앞의 '할렐루야'의 그 감동의 이유를 잊음이다.

나.

정말 소심한 자 맞다.

주님 앞을 나서게 되어 냉랭해질까 두려워

발걸음을 내세우지 못한다.

마음 한 구석에는

이 뜨거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선교'하러 갈까... 탁 내려놓고 수도나 할까......##!@.. 많은 생각들이 떠돌면서

십년 가까이 들쑥 날쑥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함은 그러한 '소명'을 가지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할렐루야와 '내 영혼아.. ' 의 때가 맞은 분들에게 가능한 일임을 깨달아

조금은 잠잠해져 갔다.

이제는 '기다린다' .

어디까지 어떻게 펼쳐질지 나모르지만

아직은 내 속의 흔들림들이 조금 더 잠잠해질 때

주님이 부르시는 소리가 나의 머리속을 강하게 칠 때

또 다른 할렐루야로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런데 이런 '감탄'과 '영을 다구치는'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 사이를 가로막는

그러한 인생의 어려움 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게.. 삶이다.

부자라고 행복하고

가난하다고 늘 불행할까?

부자는 부자의 고통이 있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의 고난이 있다.

이 인생이 얼마나 힘이 드는 지

수천년 전부터의 성경 속에도 고난은 길길이 나와있고

인생은 고해의 바다라 소리쳐 외치는 중국의 누구도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 속의 보편적 인생 들은

지금 우리, 누리는 자들의 눈으로 보면

저것을 조금만 더 확장시키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싶은 고난의 연속들이고,

이제 현대 수십여년 ,

그것도 잘사는 10% 내외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녹녹치 않은 고난 덩어리들의 하루를 살아가는

지구촌의 이웃들이 편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물질은 풍요해졌지만 '자살자들이 세계 일류를 달리고'

이혼율과 행복지수는 심각할 정도로 양극을 차지하고 있다.

불행한 세대...들..

일본, 중국, 유럽, 미국........어디하나 행복할 듯하게 보이는 곳이 없다.

 

이때.........

누구든 붙들고

날 도와주는 자를 기대하고 싶어지는게

특별히 '나이들어가는 '

힘 빠지기 시작하는 우리세대들인데

누가 과연그럴 수 잇을까?

이 선천적으로 '원죄적 ' 존재의 빈영혼들에게

누가 있어

이 텅빈,

허전하고 뚫려버린 듯한

이 영혼의 의지처가 될 것인가?

친구인가?

누구 바람처럼 나타나 '위로'의 말을 던지고

천금을 내려놓고갈 위인이던가?

그들은 모두 똑같이 힘없는 '인생'들일 뿐이다.

서로 '소통'하고 서로서로 SNS하고

서로 서로 웃어보이지만

그들 가슴 속은 더 썩어들어가는

유한한 , 그냥 생물일 뿐이란 이야기다.

 

인간은 '의지처'가 아니다.

그들은 그냥 '위로'해줄 상대다.

위로자가 아니고 위로 받을 자란 이야기다.

 

이러한 진실임에도

세상의 누가 눈에 보이는 '그들'의 위로를 받고픈

이 허탄한 기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이던가?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진실에 눈을 떠야 한다 .

다시한번 진실을 보아야 한다 .

아무리 외로움이 날 찔러

영혼이 허겁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듯해도

의지할 것은 '하나님'이실 뿐이다.

그 영원하시고 홀로 계시고 위대하신 사랑의 왕.

하나님.

 야곱같이 어이없는 행동을 해도 변함없이 지켜보실

'야곱의 하나님'만을 바라야 한다.

그분 만을 '나'의 도움, 자기의 도움으로 삼고

여호와 하나님 ,

그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감동 중에 감탄으로 외치는

매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분 만이 내 소망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 인생의 허겁증,

내 의지하고 기대고 싶어 견딜수 없는

이 선천적 외로움과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진실한 '해결'이 된다.

 

오늘 그래야 한다.

'내 영혼아'.. .하고 내 영혼에 외쳐야 한다.

내가 나이고 나는 무슨 존재인지

내 속에서 나 이외의 어떠한 역사들이 용솟음치는지

하나도 관심이 없이 그냥 매일 넋놓은 양처럼 살다가

순간 세상에 스러지고 넘어지다가

상처 만 그득한 미련한 자 되지 말고

' 영혼아.. 내 속에서 힘을 내자.'

오직 하나님 만을 나의 의지처로 삼고

오직 내 하나님 만을 감동하고

할레루야 감동으로 외치는 하루가 되자.. '

그리 외치자.

그래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감동 만으로

내 소망을 이루어 가자.

그 것만이 내 희망이고

내 삶의 지금 허락되어진 이유임을

다시한번 깨달아 알자.

 

다시한번 힘내자 .

주하인.

지치고 스러지고 넘어져 상채기 난

내 영혼을 다시한번 추스리자.

그래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다시한번 회복하자.

내 주위에 벌어지는

좋구 나쁜 어떤 것도

칭찬도 비하도

내 속의 좌절도  그렇지 않을 것 같은 괜한 희망도

다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자.

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이 내 영혼의 흐름의 지표가 되도록하자.

그리하여 내 영혼에 채워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평강 만으로

내 하루의 삶을 채워가다

필요한 주위 누구들에게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 감동의 경험을

오히려 내려 놓아주는

그런 자되자.

 

의지하려 허겁하지말자.

의지할 자 오직 주님 뿐이다.

의지하기 보다는

위로할 자 되길 원하자.

 

 

적용

 

1. 할렐루야...

 이런 상황이 나에겐 자주 있음을 잊지 말자.

 찬양의 기쁨.

 상황과 상관없는 인사이트의 기쁨.

 변화되어져 가는 상황의 누림의 기쁨..............

 할렐루야다.

 주님은 살아계셔서 내 하나님으로 가까이 가까이 다가오신다.

 자기의 하나님.

 내 하나님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난. .. 아직도 내 바램과 다르게 움직이는 내 영혼 속의 부대낌을 느낀다.

 그래서 '내 영혼아'하고 외칠 개연성을 충분히 느낀다.

 아직은 내 영혼아 .. 하고 안외치어도

 하나님의 바래심이 내 영혼의 바램이 될

 그날이 될 때까지는 더 의지적으로 내 영혼을 위하여 기도할 때ㅑ다.

 

3. 의지 하고 싶은 .. .나...

 아직, 울고 싶을 때가 많다.

 되지 않는 나.

 외로운 나............ 그런 나를 아시고

 주님은 '아직도 의지할 자를 세상에서 찾느냐?' 하신다. 

 세상엔 나를 위로할 자 그리 없음을 알면서도

 정신을 잃고 내 영혼은 ' 내 영혼의 비었던 곳'으로 향하게 한다.

 그럴 때마다.  .. .. 외롭다.. ..

 외로울 때마다.. 힘이든다.

 주님 그것을 읽어주시고 알아주신다.

'세상에 의지할 자가 어디 있느냐?'

 하지만 의지할 자 찾을 수 밖에 없는 네 마음을안다...시는 것 같이 느껴진다.

 오늘 말씀이..

 

4. 자기 하나님 

   내 하나님.

 

 난.. 이것을 오늘 묵상의 제목으로 삼고 싶다.

 하지만, 묵상을 진행시키는 큰 주제가 '외로움'이다.

 그래서 기대고 싶다.. 가 내 마음의 흐름이다.

 그것을 아시는 '내 하나님' , 나의 '자기 하나님' 께서

 이리 말씀 속에서 '굵게 ' 튀어 나오신다.

 

5. 성경 세장 읽겠다.

 이렇게라도 해야 말씀을 읽을 의무가 생긴다.

 내 영혼을 옭죄는 나의 방법 ^^*

 

6.  내 소망.

 어서 어서 내 하나님이 더욱 뚜렷하게 되게 하소서.

 가끔가끔 '할렐루야'를 외치는 자 보다는

 매사에 그러한 감동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내 소망이 되시는 내 하나님.

 매사에 모습을 드러내소서.

 

7. 현실의 기도

 열나는 'YCW' 님 .. 잘 회복되게 하소서.

 내일 종무식때 논문 제출한 것 .. 연구 ..상 받게 하소서.

 내 하나님.. 작은 의지를 합니다.

 

 

기도

주님.

감사드립니다.

제 인생을 통해서 해결할 이 외로움을 읽어 주시고

그러함에도 제 인생에 '할렐루야' 감동하고 살아가는 시간들이

점차로 늘어가 그 구멍이 적어졌음을

들여다 보게 하시니 그것 역시 참 감사합니다.

주여.

저에게 '살아계신 내 하나님'을

점점 뚜렷이 알게 하시고

'소망'을 올바르게 가지게 하실

원리에 대하여 정리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알면서도 '자꾸만' 내 이 깊은 외로움을 위로해줄 자를

찾아 허겁대려 하던 요 며칠을 다시한번 돌아다 보게 하십니다.

나.

기대고 싶습니다.

주님... 눈에 보이지 않고 잘 느껴지지 않아 많이 외로웠던 이전에 비해

지금은 훨씬 더 가깝고 뿌듯한 위안으로 느껴지는

내 살아계신 하나님.

이제 더욱 간절히 바라옵기는

그 위로자 하나님,

내 기댈 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내 이 엉터리 같이 남아 있는

괜한 심성적 어려움을

더욱 사실로 위로해주소서.

제가 알수 있는 강한 감동으로 매일을 잡으소서.

그 감동이 너무 기뻐

더 이상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영혼의 움직임을 제하여 버릴 수 있는

강한 믿음과 소망과 의지를 주소서.

지혜를 주소서.

때를 아는 영적 민감함을 주소서.

오직 주님으로만,...

오직 하나님 만 갈구하게 하소서.

내 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결과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하나도 의심되지 않는

온전한 기대감을 저에게 주소서.

주님.

해결할 세상의 것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열나는 환자. .. 의학적 이유도 잘알고 해결 길도 대처했지만

그래도 늘 100%의 안전감을 원하옵는 저에게

부담이 생기려 하오니

그것마져 주님의 해결을 기대합니다.

주님.

전적인 주님의 도우심으로 쓴 '논문'이

'연구'라는 부분에서 종무식에서 상을 받을 심사의 과정에 있습니다.

주님 이름을 높이고

그 안에서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 안에 서 있음을

듣고 바라보는 자들에게 '소리'내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이게 제 욕심이면 그냥 가라앉히고 받아들이는 결과를

아니시면 제게 혜택을 주소서.

주님.

제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그로인한 평생의 지고가는 문제들..

그게 어쩌면 주님 허락하심 가운데의 흐름일 수도 있음을 알지만

언제까지 , 어떻게.. 가 제 안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주여.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은 더 뚜렷이 할 지혜를 주소서.

할렐루야 .. 내 주님.

오직 내 기댈 내 의지처 내 하나님.

저를 위로하소서.

기대고 싶은 저 주하인을 위로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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