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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임하시면[계21:9-21] 본문

구약 QT

성령님 임하시면[계21:9-21]

주하인 2012. 12. 24. 11:22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마지막 대접재앙을 내릴 '천사'가 뭐라하자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성령께서 임하셔서 '데리고 가셔서'

보이신다.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 하나님의 영광' 으로

사도 요한의 영혼이 감동했을 것이다.

 

 

 오늘 구절을 읽으면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하여

몇가지 드는 의문들이 있다.

 

일단 '천사'와 성령님과의 관계다.

구약에서는 천사가 많이 도 나오더니 신약에서는 거의.. 성령님.. 이외에는 없다 .

그러다가 여기에서

천사는 뚜렷한 형체로 나타나 보이는 듯하나

성령께서는 .. 조금 그런 느낌이다.

 

성령님의 존재 역할 형상.. 등 무엇하나 정확히 정의하기 힘들지만

오늘 사도 요한이 하는 몇가지 일을 통하여

성령님,

특별히 오늘 '주하인'에게 주시길 원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보여 주시려 함을 추론해 보려한다.

 

일단은 천사처럼 뚜렷이 '비서'같은 역할을 하는 형체는 아닐 수 있다.

성령님은 '마치 그럴 것 같다'라는 느낌으로

세미하게 오셨지만

성령충만하게 된 자 , 누구도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음을 부인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 천사가 보일 것임을 얘기하자

성령이 순종하는 듯한 뉘앙스가 아니라

하나님의 원리 가운데 전혀 다른 역사로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란 것이다.

 

일단 그 분이 오시자 마자

'하나님의 영광'이 눈치 채였다.

그래서 온 예루살렘 성이 반짝이게 보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감동'이 달라진다.

말씀이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은

말씀이 '교훈서' 정도로만 이해되는 상황에서는 아니다.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 임하면

우리의 영에는 감동이 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주위의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색이 더욱 뚜렷이 보이게 되고

그들 움직임의 미세함을 통하여

우주에 흐르는 하나님의 역동이 감지되어

그 순간 영혼에서는 전기 맞은 듯

찬양으로 '시로'.. 일상의 달란트에 맞는 가장 큰 표현으로 나오게 되어지는 것이다.

착한 마음이 소록 소록 돋아나고

쓸 생각도 못하던 어렵던 '논문'이 의무가 아님에도 씌여지고

누구든 용서할 수 있게 될 것만 같은 착한 마음이

눈물과 함께 용솟음칠 듯하게 되는 것이다.ㅎ

 

또.. 지혜가 늘어난다.

사도 요한께서 계속..무슨 문에는 무슨 보석.. 수치가 어떻고... 색깔이 어떻고......

마치 사진을 들여다 보며 쓰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계시록을 쓰게 된 것은

환상을 보고나서 일상으로 돌아와 기억을 더듬어 썼을 것인데

만일 그것이 자신의 기억에 의존한다면

이러한 정밀한 묘사가 가능한 것은

그의 기억력의 비상함 탓일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역이 너무 축소되는 것은 아니던가?

나...

10여년의 믿음 생활 기간을 통하여

나름의 아주 적은 세미한 영적 경험을 통해서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지혜'가 늘어남을 안다.

 주위의 거의 모든 의사가 인정하듯이

산부인과 의사가 40대 넘어 새로운 기술을 자연스럽게 임상에서 사용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한다.

더구나, 유학가고 재산을 탕진하며 배운 것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나..아니다.

지금 복강경 기법이 앞서가고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안다.

무협지만 읽은 실력으로 편지하나 제대로 쓰지 못해

일년가야 편지 한통을 써보지 못했던 자가

'묵상 시'로서 '사진'에 올려서

하나의 작품을 나오게 한데는

'하나님의 영'이 하신 것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다.

 

아침에 '수술'한 보호자이신 '중국선교사'님이

진찰실에 내려와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너무 감동적으로 쓴 시라면서

한참을 내 시화에 대하여 듣고 나누고 가셨다.

가실때 그 분께서 그리도 감동하시던 시화 액자 하나를 꺼내어

작가로서 '싸인'을 해드려 보내드리니

너무도 좋아하신다.

 

이것들..........

성령이 하신 일이라 생각한다.

나.

요한님의 그 정확한 기억력은

나에게는 허락하여 주시지는 않으신 듯하다.

하지만, 참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깨어서 갈구하는 자 만이 알수 있는

말씀대로의 역사를 허락하신다.

 

 그 성령께서 임하시면 '감동'이 전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오늘 나에게 주시려는 '레마'를 짐작하게 한다.

얼마전 부터 ' 영적' 존재에 대한 대항기도를 조금씩 시작하면서

참으로 잘 눌려가던 저항이 느껴지며

옛 감정들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당황하고 있다.

메마름.

말씀으로 이기고는 있지만

메마르려 할 때는 흔들린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기'임을 안다.

무엇하나 주님이 허락지 않으신 것 없고

무엇하나 하나님이 모르실 것 없음을 인정하고 나면

그러한 흔들림, 그러한 영적인 노력이 허튼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쌓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난 또 이겨내고 승리하는

또다른 체험을 허락받은 것인 줄 안다.

그 영적인 들어 맞음이 어제 '레미제라블'에 대한 감상평과 더불은

묵상과 설교와 내 상태의 절묘한 일치를 경험함으로

다시한번 끄덕이게 하지 않으셨던가?

 

오늘은 '성령'을 묵상하게 하신다.

성령님.

그 분의 존재가 어떠하게 생기셨던

천사와의 관계가 어떻든

그 분이 임하시면 감동으로

영이 경계가 넓어지고

마음이 풀어지고 자유로와 지며

괜한 무거움의 사슬은 끊어져 버릴 것이다.

감동이다.

내가 죽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의 감동이시다.

그 분이 임하시면

어느새 문제는 작아지고

나의 기쁨은 커지고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언제나 해결되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믿는다.

오늘도 성령을 사모하며.. .

 

 

 

주님.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제 인생과정을 다 아시는 내 주님.

성경의 말씀처럼 백발에도 노년에도 날 승리로 이끄심을 믿사오니

저의 감동을 더 늘여 주소서..

삶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세상에 외쳐대는 제가 되도록 더욱 감동을 늘이소서.

제 안의

오래된

마치 제 생각인양 웅크려왔던

영적 사슬들,

암흑의 기운들 .. 주님이여 끊어주소서.

성령으로 그리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그 자리 채우소서.

영혼의 지성소가 주님의 영광으로 그득 빛나게 하소서.

그래서 일상에서 무조건 용서하게 도우소서.

무조건 사랑하게 하시고

주님의 긍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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