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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와 어린 양[고전4:6-21] 본문

신약 QT

노예와 어린 양[고전4:6-21]

주하인 2015. 11. 7. 10:59

 

 

 

10 우리는 그리스도의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나는 언제나

'나는 어리석으나 당신들은 지혜로우십니다.

나는 약하나 당신은 강하세요.

나는 비천하나 당신들은 존귀하십니다.'

 이럴수 있을까?

 

어찌보면 아예 자기라는 존재 개념이 없는 바보 같고

너무 천민티가 많이 나는 노예 근성이 있어보여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마디로 '거지근성'이 아닐런가?

 

그런데 이게 '십자가의 근본 정신' 아닌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의 종인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생육신 하셔서

양처럼 모든핍박을 다 받으시면서

그대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

 그 모습을 어찌 현대에 살아가며

깨끗한 옷을 입고 멋진 선그라스를 끼고

클래식 음악 고요하게 나오는 카페에 앉아서

11월 청명한 바람이 불고 잡티 하나없는 가을 햇살 속에

거리를 지나다니는 환상의 남녀들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며

한손에 묵직한 머그잔에 담긴 커피에서 흘러나오는

커피향을 음미하며

그잠시의 순간에

이렇듯 남과 다른 여유를 즐기는 자아에 대하여

비밀스러운 만족감을 만끽하는 자에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그 순간 말이다..

만일 그분위기를 깨는 몰상식한^^;; 이웃이 곁에 있으면

욱하고 무에라도 한마디 하고 싶어하는

이 강한 자아를 가진 교만의 주모에게는

위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기억이나지 않고

울컥하는 무엇인가 일어날 듯하다.ㅜ.ㅜ;;

 

 이 말씀.

 

자아가 죽어야 한다.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혀야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죽을 자아로 인하여 내속에 드는

심한 반발의 정체는 무엇인가?

'내가 영구인가?

 내가 노예인가?

 나를 바보로 알아?.....'

아마 사실이지 않을까?

만약 내 현재의 직장을 알고 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노예와같이 행동하는 나를 보면 어찌 대할까?

 

이 노예의 느낌이 아닌

정말 십자가 예수의 자기 부인의 진리에 달하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되는가?

 

우선

자아 부인(自我否認)이 되려면

자아의 충분한 성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늑대 속에서자라면 늑대소년이 되고

어려서 부터 종으로 자라면 노예나 종이 당연하게 생각이 들지만

충분한 성장을 한 사람이 저러한 마음으로 남을대하면

"겸손' 이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밀림을 받아

'말씀대로 좇으려 하는' 자를

제대로 자아 부인,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자가 되려한다고 한다/.

 

모르는 자들은 자존심도 없다고 비아냥대거나

싸이코 패스 성향이 있는 현대인들 중의 어떤 자들에게

왕따의 대상이 될 개연성이 없지 않아 있고

세상적으로 이용만 당하는 손해의 가능성이 있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자신은 성장하며

오래 지켜본 의식있는 자들에게는

겸손하다 존경을 받을 개연성이 많게 된다.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말씀대로 자신을 남보다 낮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자아를 부인하는성장된 자들은

이렇듯 행동하게 된다.

 

친히 손으로 일을 하고

모욕 받는 자에게 축복을 하고

박해를 받아도 참고

비방을 받게 되면 권면하게 되니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으니 남는 것은 십자가요

그 빈자리를채우심은 성령이시기 때문이기에

그들에게는 세상은 더러운 찌거기요....더 이상 그를 유혹할 세상의 어떤 물질도 없기에 그렇다.

 

그러한 자에게는 늘 평강이 넘치고

하나님의 평안이 그의 영을 그득채우고

성령이 폭포수처럼 그의 영을 일주하시기에

걸림이 없고 행복해지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태도가

타인이 나보다 존귀하고 나는 천하며

그들이 나보다 지혜롭고 나는 둔하고 ...다'

그러나 자신은 하나님의 영이 늘 함께 하시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이러니....무에 걸릴것이고

어떤 문제가 그를 잡을 것인가?

 

그리그리 하다가

하나님의 향기를 드러내게 되고

그 진리의 근원을 깨달은 누구인가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며

마침내 그의 인생의 종착점에 도달해

주님 예수께서 두팔 벌려 마중 나오실때

소롯이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 놓고

영원 속에서 주의 곁에

그 천국의 평강으로 에너지 삼아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나.

어떠한가?

아직 멀었다.

내거....내거..내거가 우선이다.

내 그러하지 못했음이 아직도 날 붙든다.

단... 눈치는 채었다.

말씀이 언어의 유희가 아니고 기도 제목이 되어간다.

점점더 그래져가고

아주 희박한 빈도지만 삶속에서 조금이나마 말씀으로 인해 인내가 되어간다.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말씀은

이제 내가 매우 좋아하는 구절이지만

여기에 달할 때마다 늘 죄송스럽고

절대로 내 자아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던 좌절의 구절이었지만

새삼 이 구절이 다시 들어옴은

이제는 조금씩 그러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뜻이심을 깨닫는다.

 

 

주여.

제게는

강한 자아의식이 있습니다.

너무 강하여 세상에 강퍅으로 표현되어지는...

그 이유를저는 잘압니다.

그래서......그렇습니다...

주님은 잘아시지요?

그러셔서 이 모진인간, 아직까지 당신의 아들이라 붙드시고

떠나지 않으신 줄 믿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능자이신 하나님,

그 다 아심에도 불구하고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

그 이유가 내 결국의 승리, 자아의 십자가 부인을 보고 계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전능자 엘샤다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러신줄

믿고 기대하고 감사드립니다.

 

주여.

아시오매 , 제 안에서 습관처럼올라오는

자아의 몸부림이 있습니다.

말씀을 주셨사오니

이제 말씀대로 축복하고 권면하고 인내하는자 되게 하소서.

내 주여.

반응하지 않고

행동하게하소서.

 

내 가슴이 터질듯한 저항을

주님의 십자가로 자르소서..

보혈로 씻으소서.

성령으로 태우소서.

 

없는 믿음마져 도우시라던 백부장의 고백을 위안삼아

이처럼 기도합니다.

성령이여... 없는 제 의지, 제 믿음마져 도우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거룩하신 이름받들어

감사하면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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