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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될 것(고전15:1-11)

주하인 2006. 4. 15. 12:01

(고린도전서15:1-15:11)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

  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 한점 티끌 크기도 되지 않는 우리가 왜 이리 태산 보다 큰 콧대를 가지고 사는지.. )

 

 

 사도 바울 선생님은 겸손한 분이시다.

자신을 얼마나 낮추시는 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라는 표현을 쓰신다.

 

글자라는 것은 그냥 뜻을 알고 지나가면 죽은 사어가 되지만 나처럼 산부인과 의사에게 의미하는 만삭되지 못한 '미숙아'의 표현은 정말 뚜렷하게 다가온다.

미숙아는 예정일 보다 3주이상 일찍 태어난 상태.

그래서 체중이 미달이 되고

정신적

육체적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신생아이다.

 

그래..

바울 선생께서는 이렇게 자신을 낮춘다.

아니..

어찌 보면 자책하는 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간단히 미숙아란 간단한 표현도 아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는 식으로 풀어서 표현함은 그 심정이 구구절절이 회개로 끓음을 의미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죄에 대하여 무릎을 치고 절절히 없었으면 하는 마음...

그러면서 그 안에는 어딘가 모르는 '휴우~'하는 심사.

즉  '십자가에서 녹여 나다니...이 미숙아 같은 어리석은 자가 감당키나 하겠는가.. 예수시여.. '

하는...

 그래서 되뇌이고 되뇌이는 말투.

 

 '겸손과 감사와 회개'가 깊이 녹아들어가 있는 표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

 

 

'내게도'

 

아..

감히 나 같은 자에게도 ..

 

그러면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자신을 낮추신다.

 

 

오늘 묵상에서

이리도 그 분 사도 바울님의 감정이 구구절절히 스며 나오도록 느끼게 하시는 이유는 이것인것 같다.

 

'주님의 3일 침묵'동안에 자성하라.

 

생각하라.

기뻐하라.

음미하라.

반성하라.

기도하라.

묵상하라.

 

 

 

 

 

 

 

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는 주님에 가까운 ..)

 

'I am what I am'

현재의 내가 나다.

 

 현재는 어떤가?

사도 바울 선생께서는 확고부동한 자기 인식이 있다.

자기 정체성이 너무 뚜렷하다.

그래서 그는 가진 것 없지만 행복하다.

 

두렵고 비교되고 바람 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낮은 중량감의 인격 소유자라서 주위의 소리에도 자주 깜짝놀라고 어디 아파트 값만 올라갔다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아이들의 공부 성적에 따라 혈압이 오르내리며 그 아이들이 웃고 울음에 감정도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하는 낮은 정체감의 소유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복감의 소유자.

 

언젠가 우리 지수가

난 행복하지 않은 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으며

사도 바울처럼

주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가진 자들은 행복할 수 밖에 없다.

 

나의 나 된 것

 그분은 과거엔 그랬지만 지금은 이렇다.

 

바로 몇줄 아래의 글이지만 이리 다르다.

 

무엇이 그를 이리 다르게 했는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가정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현상.

 

그래..

나도 그랬다.

비록 사도 바울의 영적 성장과는 다른 환경이라서 상급 부분에서는 떨어지지만 분명코 나는 예수님 처음 영접하고 '나의 나것 '에 대하여 너무 감동하며 기뻐한 적이 있다.

 

첫사랑

 

주님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당신의 은혜를 보여 주심으로 저 천국에서 영원히 맛볼 그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시고 이 일상의 삶에서 누구도 알지못하는 비밀한 통로로 개인적 은혜를 허락하신다.

 

이 은혜로..

우리는 주님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은혜와

중생의 감사가

남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헌신과 봉사와 구제와 몸 바쳐 연단을 거쳐나가는 자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믿고서 너무 너무 감동스러운 것은

어제 돌아가신 십자가의 그 사랑과

3일 간의 깊은 묵상의 기회와

또한 오직 나와 함께 하셔서 늘 동행하며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부어주시고 닦여주시고 받쳐주시고 얘기하여 주시는 그 성령님의 보혜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어느 신이 이런가?

다들 조건부적 신이다.

 

받치면 준다.

안받치면 안준다.

 

 

그러나.

정말 신이신

전능의 그 분께서는

감히 상상 못할 사랑과 세심함으로 우릴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이 아니 감사하지 한가?

그러니...

바울 께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의 나 된 것....

하며 감동하지 않으시는가?

 

아..................

 

우리는 이제 곧 다시 부활하실 주님 예수님을 알고 있다.

더구나........

 

 

 

 

적용

 

1. 나는 누구인가?

 

2.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3. 나는 어디로 가는가?

 

4. 나는 진심으로 주님을 원하는가?

 

5. 나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가?

     

6. 나는 진심으로 날 사랑하는가?

 

7. 썩어져갈 것을 버리고라도 주님을 바꾸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8. 난.. 내 과거에 대하여 어찌 생각하는가?

 

9. 과거가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것을 기뻐하는가?

 

10. 모든 것이 주님의 이유임을 알고 있는가?

 

11. 진심으로 하나님이 감사한가?

 

12. 절절한가?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냥 감사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죄송했습니다.

죄송했어요.

 

주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주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주님

지금의 나를 사랑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의 존재가 하나님을 끊임없이 보여 주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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