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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마대 주하인 (마가복음15:33-15:47)

주하인 2006. 4. 14. 12:43

(마가복음15:33-15:47)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몇가지 의문 점이 있다.

(세포가 탈수되면 저리 쪼글 거려집니다. )

 

1) 몸에 탈수가 되어 죽을 지경에 있으신 분이 어떻게 힘이 나셔서 소리를 지를 수가 있었는가?

; 사람으로서 피동적으로 당한 일이라면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급작스럽게 생긴 위급한 일이라면 가능하지만 6시간에 걸친 탈수로 불가능하다.

 통증으로 인하여 쇼크에 빠진 분이시기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님은 인간이지만 신이시다.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한 의도적 고함으로 밖에 볼 수 없다.

 

 

2) 무얼 의도하셨을까?

; 관심 집중

 

3) 무엇에 대한 관심 집중인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소리인데 왜 굳이 의도적인 이목집중을

 하시도록 하셨을까?

; 귀있는 자는 깨닫도록 하시는 마지막 주님의 교훈

 

; 진실을 알리시려는 의도

 

 

5) 누가 귀 있는 자들인가?

; 늘 묵상하는 자들.

 늘 깨어 있으려 몸부림 치는 자들.

 

 

6) 단지 인간적인 몸부림 처럼 보이는 고함을 하신 뜻은?

   그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은?

 

; 구약시대의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단 한번의 속죄제에 비하면 그것은 모형적 행위이고, 초등학교 몽학선생의 지도를 받는 속죄행위이다.

그렇다면,

그 행위를 돌아보아야 짐작이 가능하다.

 

 주님은 '흠없는 어린양'으로 표현된다.

 

구약 속죄제에 흠없는 수염소와 양이 제물로 쓰인다.

 

수염소는 한마리가 아니다.

두마리다.

 

한마리는 안수하여 아사셀에 대한 제물로 쓰인다.

이 아사셀에 인간들의 죄를 전가하여 광야에 가져다 버리는...

 

 또 한마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속죄소에 뿌리는 피의 용도로 사용된다.

이 아사셀에 대한 제물 역할로서 보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

거창한 논리를 떠나서 '연약한 인간'의 죄악성을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에 담아서 버리신 것이시다.

 

그 끔찍한 고통을 통해

내 육신 속에 스물스물 거리고 있는

순간 만 되면 아직도 타고 나오려는

이 엄청난 악감들을 '저 귀하신 입술'을 통하여

내어 뱉으신 것이시다.

 

한톨 힘도 없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고는 왜 그러셨겠는가?

 

 

 

 7) 난 어찌 느껴야 하는가?

 

; 너무도 감사하지 않은가?

 

; 너무도 죄송하지 않은가?

 

; 내 속의 마귀적 속성, 원죄에 의한 자범죄 들이 주님의 저 쥐어짜는 소리에 같이 뛰쳐 나가버리는 것 같다.

 

 "꺄~~~~악"

 

시원하다.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아..

얼마나 당신의 인간 삶이 힘드셨었을까?

큰 소리를 지르고 가시다니..

 

아~~~~~~~~~~~~~~~~~~~~~~~~~~~

 

아마도 길게 이어지면서 이게 듣는 사람들 머리 정수리에서 마치 징을 치는 충격과 더불어 점차로 그 여진이 커지면서 온 몸에 가만히 있어도 떨리는 전율의 소리였을 것이다.

 

점차로 증폭되는 중저음의 강력한........

 

 주님 하나님의 뜻이시니

일언반구 하지 않고

따르시기는 하지만...

성육신 하신 인간이신 지라 그 분의 십자가 고통의 운명을 알고 생활하시는 이땅의 유배지 같은 공포의 생활은 늘 그 분에게 고통이셨으리라.

더구나 끝이 없는 능력의 하나님이 좁은 인간의 육체에 갖혀 있으니 얼마나..

 

이제 그 분은 긴 한숨을 쉬시는 것이다.

 

 

이랬으리라.

 

 

휴...........

이제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주님이 돌아가신 것은 구약 대 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소 위에 한 번, 속죄소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렸던 그 사실을 실제적으로 나타내신 것이시다.

 

 속죄소라는 것은 '천국'의 상징적 구조물'이다.

성경에 곳곳에 대 제사장 예수님이란 표현이 이래서 나온 것이다.

 

그 분은 대제사장의 신분으로 '천국'에 들어가신 것이시다.

우리를 깨끗게 하시려고 하나님 앞에...

 

성소 휘장이 찢어진 사실은 천국이 그 분 예수님 십자가 때문에 우리 앞에 확~ 열렸음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

 

얼마나 감사하고 소름끼치도록 기쁜일인가?

 

예수가 아니셨더라면...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 늘 기다립니다.)

 

 

 요셉은 마태복음에는 아리마대 '부자' 라고 되어있다.

마가 복음에는 '존경받는 공회원'

 

약간의 표현은 차이가 있어도 그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다.

 

아.

 

나도 이러고 싶다.

나에게 스스로 여러번 반문 해 보았다 .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 이다.

자유롭고 거침이 없는 나라.

세상의 삶은 그 나라를 가기 위한 거침 돌이다.

이 삶을 가능하면 - 실은 자꾸만 잊고 지니깐..ㅎㅎ - 열렬히 주님 위해 살다가 그 나라에서 예수님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싶은 바램만( ^^;;;;) 있다.

 

 오늘 세상 살이가 나처럼 버거워서 도피성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가 아니고 진심으로 주님나라 사모하는 자를 발견하게 되어서 기쁘다.

 

주님이 오늘 그 인물을 내 앞에 이리 툭 던져 놓고 가신 이유가 내 삶이 이리 되길 바라셔서 그런 것 같다.

 

 

그는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다.

그가 하는 행동은 진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사람들의 힘있는 삶을 보여준다.

 

우선, 당돌하다

  영어로는 담대하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하여는 거침이 없다.

 비록 그 행동이 윗 사람들의 미움을 사서 현실에 마이너스적 요소가 있더라도...

 빌라도가 꺄웃하지 않던가?

 

이게 그에게는 나름대로의 최선의 십자가였다.

 

 

2)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준비성이 철저하다.

 새 무덤을 팠다.

 세마포를 싸고

 굴을 큰 바위로 막았다.

 

3) 최선을 다한다.

 '새로' 바위속에 판 무덤 이라고 마태복음엔 기술 되어 있다.

 새것으로 주님께..

 

4) 비록 부활은 모르고 있었지만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체라도 모시려는 올바른 지혜가 있었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주님이 의미'가 되고 '주님 나라가 목적'이 되면 단순해진다.

모든게 힘있고 자연스러워진다.

행불행이 의미가 없다.

항상 주님으로 행복하니까..

 

천금을 주고 도 못바꾸는 것이 이 땅위에서의 행복이요.

저 세상에서의 주님 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아리마대 주하인이 되고 싶다.

 

 

 

 

 

 적용

 

1. 주님의 십자가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보자

 

2. 늘 주님의 나라 사모하는 자가 되자.

 

3. 인내한다.

 

 

 

 

기도

 

주님..

오늘 아침 부터 바빴습니다.

 

요사이

예수님께 집중하고

주님의 그 고통을

같이 묵상하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마음이 분산되게 하는 것들이 있어

제대로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지 못했었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시고

주여

당신의 은혜로

깊은 사랑을 알게하소서.

 

아리마대 요셉의 모습처럼

단순하고

힘있는

주님의 나라 백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열정적이고

희생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당신의 모범적인 성도가 되기를 원하오니

주여

붙들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는 자다.

 -십자가의 성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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