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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백(스 5:6-17 )

주하인 2009. 11. 18. 09:07

제 5 장 ( Chapter 5, Ezra )

 

 

늦은 퇴근 시간

터벅터벅 걸어서 수영장으로 향하던 중

한전의 전기탑에 걸려 있는 달이 보인다.

낙엽이 스산히 뒹굴고

달은 전기 탑 안에 갇혀 있는 듯 하다.

 

죄에 갇혀 있을 때는

저런 모양은 답답히만 보일 것을

주께 가까이 있으려 노력하는 동안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이제

내 속의 어두움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청명한 저 달을

더욱 더 뚜렷이 바라볼 수 있는

그 때가 어서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6.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 강 서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이

     이러하니라 
11.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12.  우리 열조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를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이 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사단의 세력으로 상징되는 이방 땅 방해자 들이

직접적인 논리의 부재로 다른 방해 공작을 편다.

 다리오왕에게 직접 조서를 올린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 더 악하게 거짓을 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쓴것은

웬지 생각해야할 일이다 - 아뢴다.

거기에는 '천지의 하나님 ',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 '하늘에 계신 하나님' ... 등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말을

하나도 가감없이 그대로 옮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실함'과 '하나님 역사'의 대단함이 얼마나 강하였던 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일인 듯 싶다.

그러면서 그들의 고백'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 한 죄

느브갓네살의 손에 의하여 전이 헐리고

백성들이 모두 바벨론에 잡혀 갔었음을 절실히 후회함을

있는 그대로 일러바친다.

말 그대로 일러 바치는 것이다.

 

 오늘 묵상에서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우선 ' 회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앞에서 있는 그대로 자신들의 심사를 이야기 하지 않았더라면

저들이 조서에서 저렇듯 정밀하게 그들 마음을 묘사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들 조서의 목적은 틀림없이 이러한 그들의 단합된 모습을 통하여

바사왕국에 불이익을 초래할 상황임을 묘사하기 위하여

쓴 글이겠지만 그 어투가 심히 하나님 앞에 경건함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절절하고 열정적인 고백을 하였던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한 열심과 결심은

우선은 사단 마져 경외하여 4~5 번 이상이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쓸 이유가 없는 격렬한 하나님께 대한 존칭을 언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의 경건함'과 '그들의 하나님께 사로잡힘'이

반대 세력들의 있을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다.

그 고백이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이다.

' 하늘에 계신' 이란 말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가까이서 체험하는 가 알 수 있다.

'격노케'라는 단어에서 과거의 그들의 죄악,

현재의 하나님의 임재의 이 놀라운 천국적 평안에 비교하여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천국의 감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

그들 스스로의 어리석음이 땅을 치도록 후회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처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임재와

그 사실이 더욱 가까이 느껴지도록 만드는 회개의 분위기가

얼마나 절절했던지

어제의 묵상에서 '하나님'으로 인한 '유다 장로'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더 이상 이방 민족들이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이

다리오 왕의 칙서를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으며

오늘 묵상의 조서의 내용이 처절히도 하나님의 경외로 가득차있다.

 그렇다.

주님 앞에서의 회개야 말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부분이다.

회개는 '완전히 자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 한다.

오늘 처절히 회개하는 고백처럼...

 

 그런데 '회개'.... 하면 늘 걸리는 부분이 있다.

 '역시 나는... '이다.

무겁다.

그렇기에 회개의 당위성은 알면서도

가끔은 절절히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너무도 통쾌함을 경험하기는 하지만

회개에 그리 친하지 못하여 왔다 ㅜ.ㅜ;;

 왜 였을까?

이 귀중한, 주님께 더 다가가기 위한 필연적 요소인 '회개'가

나에게는 왜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까?

나름대로는 '사단이 날 겁을 내서 방해하는 구나..'라는 자위는 하고 있지만 .ㅎㅎ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회개가 필요함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어제는 3가지 무거운 일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니다.

하나 더 늘었다.

4가지다.

3가지 무거운 일은 늘 그렇듯 얼른 재빨리 ,스쳐 지나가듯

주님께 내려 놓는 회개의 기도는 했지만

역시 무거운 마음을 완전히 놓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 저녁에 '성장반' 공부가 있어서

퇴근 시간 후 느즈막히 교회로 향했다.

이제 몇주 되다 보니 분위기도 화기 애애하다.

인도하시는 목사님은 N목사님으로

여려 보이시며, 한편으로 눈이 깊으시고

찬양인도를 잘하셔서 '교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으신

젊은 목사님이시다.

 찬양 좋아하시는 목사님 답게 감성있고 깊이 있는

성장반 인도가 마음이 편하고 사랑스럽다.

열정이 많으셔서 무엇인가 가르치시려는 의욕도 많으신 ..

감동적인 분이시다.

 여러번 말했지만 믿음의 연륜이 천차만별이신 성장반의 특성상

가능하면 말을 자제 해왔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니 친해진 것도 있고

지난 이 주 동안 '응급수술'과 '토요일 공동체 훈련'의 요량으로

양평의 양노원 방문에 근무 여건상 갈 수가 없어서 빠지면서

공백이 생긴 탓인가?

나도 모르게 해이해진 것이 맞다.

목사님의 설명에 '아는 체 ㅜ.ㅜ;; ' 로 화답을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설명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잠시지만 분위기가 머쓱해졌었다.

얼른 분위기 돌이켜 공부로 유도를 했고 다행이도 문제는 없었지만

난 연신 미안했다.

목사님도 힘들어 하심이 분명하다.

 용서를 구하고 나오긴 하고 화살 기도의 회개를 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계속 실패다.

4번째.

머리가 복닥복닥 요동을 친다.

정리하고 회개하려 하지만 나를 붙드는 생각들이 곤죽이다.

그러면서 강한 생각이 든다.

'왜 나는 늘 이렇듯 ..'

' 또 실패다.   왜 나는.. '

' 회개해도 왜 이렇듯...'이다.

그러다 깨달았다.

잘못은 잘못이다.

그러나 자책한다.

자책은 '나'를 책망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십자가 ,

나를 사랑하셔서 행하신 그 놀라운 희생의 이유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그 사실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이다.

회개와 자책...

그 사이에 무엇이 잘못인가?

 

 그러다 깨달았다.

'회개'는 '나'를 질타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행실을 질타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행실을 유발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내 속의 죄'다.

내 속이라면 나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자극의 요인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약한 부분'을 자극하고 지나는 '사단'의 존재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롬 7:23-24)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 지체, 즉 내 속에

내가 바라고 나가고자 하는 '마음의 법' 하나와

'죄의 법'이 따로 있다지 않는가?

그러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라고 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 에서 건져낼 것인가 탄식했다.

이것은 '대 사도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불신자의 고백이 아니다.

즉, 주님을 영접하고 완전 성화되기 까지는 씻어내야할

원죄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고

그 것은 기독교인들도 

아니, 기독교인 들은...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이 사망의 몸,

내가 원하지 않는대로 죄의 방향으로 끌어대는

육신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고

결국은 성화의 길로 갈 수 있다.

그 증거가 오늘 묵상의 절절히 끓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고

그들을 송사하는 사단의 입에서 나오는 경외의 소리다.

 

 그렇다면

회개의 대상은 뚜렷해진다.

내가 아니다.

내 속의 '죄성'으로 인한 '행동 '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나를 정죄함과 자책함'은 

'하나님의 법' 사모하는 나까지 무시한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그처럼 사랑하시는 나를 무시하는 이야기다.

죄다.

 

그렇다.

난 어제 연달아 실패한 내 행동이 잘못이다.

그런 어리석음을 유발할 내 의지 부족함은 잘못이다.

주님께 도와달라고 회개할 작정이다.

하지만 , 하나님은 날 사랑하신다.

난 괜찮은 사람이다.

 

조금은 편하다.

 

 아침에 묵상이 저렇다.

늘 그렇듯

그 전날 주신 깨달음을 말씀으로 정리하시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회개에 대한

나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게 하시고

자책이나 무거움 보다는

발전적인 성화의 길을 한걸음 더 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

어제 3건의 잘못과 성장반의 목사님에 대하여

잘못은 하였으되 깊이 회개를 하고 변화하자.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잘못이었으면 적절한 용서의 행동을 하자.

 

 

적용

 

1. 난 사랑받을 자다.

 주님이 날 사랑하시어 십자가 에 못박히셨다.

 내안의 죄성은 강하나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실 것이다.

 주님께 고착되어 있는 한 난 성장하고 성화할 것이다.

 깨끗해질 것이다.

 그런 나는 사랑받을 자다.

 

2. 회개하자.

 회개는 내 행실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다.

 주님의 힘으로 그러는 것이다.

 사실을 가지고 주님 십자가 앞으로 가자. 

 마음이 편해질 것은 주님이 알아서하실 것이다.

 

3. 주님의 축복을 기대하자.

  정욕적이 아닌 바램이면 반드시 들어주신다.

 주님의 원리다.

 

4. 기다리자.

  회개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주님의 때는 주님이 결정하신다.

 성화되어야 축복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 노력하면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

 내 속상함의 원인은 주님이 다 아신다.

 그 바램이 어리석은 바램이 아닌 이상 반드시 주님이 인도하실 것이다.

 내려놓고 기다리자.

 걱정할 이유도 , 비교할 이유도 , 창피할 이유도 없다.

 

5. 아들 둘.

 천군천사 호위시키시고

 성령으로 강하게 잡으시길 기도한다.

 

6. 큰 아들 생일이다.

 어제 나름대로 편지 썼다.

 용돈 집어 넣었다.

 주님이 그 아이 마음 풀어주시길 기도하자.

  식사할 것이다.

 은혜 가운데 잡으시길 기도한다.

 

7.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주님은 주님이 몸소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며

사랑하신 ,

사랑하여 주신

제가

절 미워하길 원치 않고 계십니다.

회개를 하되 나를 미워하고 낮추기 보다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죄성을 ,

그 마음을 행실로 나타내도록 방치한

내 연약함을 내려 놓는 것이지

날 무시하고 천박히 대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사도 바울님의 고백처럼

내 속의 죄는 미워하되

스스로는 예수님의 강력한 임재로 인해 '사도'로 부름 받은

자랑스러운 자로 스스로 인식하게 하소서.

주여.

이것의 구분을 잘 하게 하소서.

 너무 날 사랑하여 뚫을 데 없는 교만한 자로 서지 않게 하시고

또한 자기 비하를 겸손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주여.

주님이 날 사랑하는 귀중한 자이되

주님을 위하여 날 낮추는 겸손한 자 되게 하시사

그러기 위해 내 속의 더러움은 '행실'은 미워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행실을 철저히 회개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철저히 곤고하게 하는 자로 미워하게 하소서.

사단의 계략을 눈치채고 내려 놓게 하소서.

예수님.

통합된 마음이 필요하여이다.

중심잡힌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율법과 은혜 사이의 균형을 허락하소서.

지혜를 허락하소서.

예수의 생명으로 날 채우소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날 이끄소서.

주님 만이 내 기쁨이고

내 소망이고

내 자랑이고

내 사랑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내 자식들 기억하시고

아빠가 체험하고 느끼는 그 사랑의 하나님

살아계신 주님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소서.

제 큰 아들 생일입니다.

그 아이 위로하게 하시고

둘째 아들.

군대에서 고생하는 그 아이 위로하소서.

잡아주소서.

저희 부부

기다리게 하소서.

온 가정이 오늘 보이는

저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속히요.

그 때까지 기다리게 하소서.

기쁨과 흔들리지 않는 인내로 기다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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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 박종호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 갈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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