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2012년과 대 반전( 스 6:1-12 ) 본문
제 6 장 ( Chapter 6, Ezra )
(펌)
2012년 이란 영화속의 존 쿠삭, 이 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무엇으로 인하여 그랬을까?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늘 놀라우신 인도를 받는 나.
상황에 상관없이
결과를 두렴없이
끝까지 기다리길 결심한다.
대 반전의
떨리는 승리를 기대한다.
1.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이에'
그들의 고발에..
'확인' 작업들어가는 형국.
우리를 방해하는 자들이 계속 압박해 들어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그들의 압력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달아가는 것으로
당하는 자들의 고통이 어쩌면 극에 달해
심장이 최고로 빨리 뛸 상황.
방해하는 자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고..
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전의 고는 육십 규빗으로, 광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9. 또 그 수용물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소청대로 영락 없이 날마다 주어
진실은 이방나라 수장의 곳간에서도 들어난다.
그 진실은 얼마나 뚜렷한 지
도저히 '고레스' 왕, 바사 나라... 세상 세력의 대표 나라의 수장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결과가 벌어진다.
'대반전'
고레스왕의 입에서 '선지자'나 할 법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방주' 만드실 때도 그러셨고
신명기에서도 그러셨고...늘..
정확히..
이때 고발한 반대자들의 얼굴이 어땟을까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참 재미있는 것이 '날마다' 필요한 것을 채워주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도 주신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
주기도문에서 나오는 그 기도구절이 여기서 보인다. *^^*
엊저녁에 예배를 드린 후 '2012'년 영화를 보러갔다.
물론, 영의 맑음 후 다시 흐려지게 하는 것은 죄송했지만
날씨가 너무 추우니 이럴 때 따뜻한 곳에서 영화보는 맛의 재미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영적으로 어리고.ㅎㅎ.
2012년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
교회와 지척에 있는 '롯데 백화점' 영화관을 여지없이 찾아 들어갔다.
재밌었다.
'종말 재난 영화' 답게 스케일이 어마어마한데다가
스토리가 오락영화의 모든 것을 담은 터
쉴사이 없이 몰아가는 비주얼은 정말 압권인데다가
'존쿠삭'과 대통령으로 나오는 '대니글로버' 이외의
제법 얼굴이 알려진 '우디헤럴슨'의 선지자 방송인 역할 등의 연기가 볼 만했다.
스토리는 이랬다.
2009년 인도의 과학자에 의하여 발견된
태양의 유래없이 강력한 대 폭팔로
'전자렌지' 처럼 지구의 내부가 끓어올라가는 현상을
미국 지질학자에 의하여 미국 대통령까지 보고되고
결국 수년내 종말이 올 상황이 너무나 뚜렷함을 깨달은
각국 대통령은 비밀리에 특별 '우주선'을 제작하고
전세계에 명망가와 부호들을 대상으로
1인당 10억 유로 정도의 돈을 받고( 우주선 제작비 충당위해..)
인류 보전 명목하에 우주선에 탈 자들을 선별하는 한편
중국의 '초밍계곡' 깊은 곳에서 우주선 제작에 들어간다.
시간은 지나간다.
그 사이에 지구에는 지진 등 재앙이 자꾸만 빈발한다.
장면은 바뀌어
인기는 없었지만 실력은 있었던 이혼한 가난한 무명 작가(존 쿠삭)가
이혼한 아내에게 맡겨진 '노아'라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아르바이트로 종사하는 러시아 대 부호의 자가용을 몰고
옐로 스톤 국립공원으로 아내와 데이트 하던 호수로 가다가
거기에서 철망으로 막힌 제한 구역화된 곳을 넘어가서 보니
호수가 다 말라 버리고 뜨거운 물만 용솟음 치는 것을 보고
망연 자실하다가 감시하는 군부대에 의하여 잡혀가
우주선 프로젝트의 수장격이 된 '지질학자'와 만나게 된다.
지질학자는 그의 책을 감동적으로 읽고 그와 교분을 나눈 후 헤어진
저녁 , 캠핑 중 작가는 미친 사람 같은 ( 선지자 역할하는 )
사설 라디오 방송인을 만난다.
그는 수년간 비밀리에 진행되면서 이루어진 일들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고
뒤이어 벌어지는 동시다발적 대 재난을 피하여
가족이 도피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그를 통하여 '초밍 계곡'으로 도착한 '전 부인 부부'와 아이들과 '작가'는
- 이 과정의 비주얼이 너무도 흥미 진진하다. - 러시아 대부호의 비열한 배반을 맛보고도
두당 10억 유로의 티켓이 없으면서도 무작정 지도를 들고 향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티벳'인 들과의 교류로 목적지에 도착 ,우주선을 보게 된다.
그제야 거기서 우주선이 아니고 '배'임을 영화에서는 밝힌다.
어쨋든 그들이 몇 대의 배중 하나를 선택하여 티벳 인부의 도움으로 비상구로 들어가며
그 과정에서 출입문에 고장을 유발하게 된다 .
한편 배 (노아가 타니 '노아의 방주'다) 고장으로 타지 못한 사람들은
미리 배정된 다른 배에 탄 사람들에 의하여 버려질 것인지
격론이 벌어지던 중 ( 전 지구적 쓰나미가 초밍계곡 까지 몇 분후면 몰려들 상황 )에 결국은
'인류애'를 선택한 지도자들에 의하여
초밍계곡의 인부를 포함한 모든 사람 들이 승선한 순간
쓰나미가 그 높은 초밍계곡까지 덮어씌우며 밀려드는데
고장난 문이 닫히지 않는 주인공 들이 탄 배는 무동력 상태에서
에베레스트 산에 부딪힐 위기에 처한다.
'작가'의 살신성인으로 가까스로 문은 닫히고 배는 무사히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1년 2개월 여 후 방주의 문은 열리고
세상이 바뀌었음을 보고 놀란다.
대 지각 변동으로 아프리카 대륙은 위로 솟아 오르고
지구에는 그 대륙하나 만 존재하고
지축도 바뀌어 미국 캘리포니아가 남극으로 바뀌어 있으며
살아 남은 세대의 방주가 모이면서 fade out되며 끝난다.
참 재미있는 영화였다.
재난 영화 중에서 가장 스케일이 크고
쉴 틈없는 위기 상황
명우들의 연기,
컴퓨터 그래픽의 거의 사실 적 묘사
인류애
사랑
갈등
미국과 이태리 대통령이 몸소 보여주는
희생의 리더쉽( 미국 대통령은 기독교, 이태리 수상은 천주교다.
두 분 모두 예수님을 모시는 분이시다 ^^;)
종말이 오면 저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상상을 비주얼로 거의 들어맞게 보인점.
무엇보다도
최근에 읽은 ' 노아 방주 컨서트'라는 '이재만 교수'의 책에서
노아의 방주 시대에 대하여 지질학자로서 써 놓은
'창조과학자'의 눈으로 써 놓은 글을 본 적이 있다.
거기 보면 '땅에서 샘이 솟아'라는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지구 지질 학자로서 과학적 분석을 한 것인데
읽으면서 그렇구나 한적이 있다.
비가 내려서만으로는
온 지구를 덮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거기엔 ' 지구 핵의 액체화'와 '쓰나미'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강타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래서 지구 대륙의 형체가 변하고 순간적으로 인류가 멸망한 것이란 것이다.
어제 본 영화는 이름은 '2012'년 이었지만
'노아'가 나오는 '노아의 방주 II'가 맞다.
너무 절묘하다.
이 영화의 우수한 점이 '과학적'논거를 정확히 갖춘 영화라는 것이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진 점이다.
또하나 , 인도와 중국이라는 신흥 강국의 입맛을 교묘히 맞추었다는 것도
재미가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비빔밥처럼 섞여서도
2시간30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표현해 냈다는 것이
감독의 역량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기독교 인'의 입장이다.
대통령의 위기 시에 흔들리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
마지막 담화를 하는 장면에서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 하며
대형전광판이 꺼지는 모습
예수님을 믿는 대통령 둘만 '국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
중국 초밍계곡에 작가 가족들이 불시착한 후
얼마 안있어 ' 코끼리 ' '기린' 등의 동물들을
헬기로 실어 방주에 실어나르는 장면,
우상으로서의 브라질의 거대 예수님의 무너짐,
우주선으로 설정했다가 마지막에 '배'임을 밝힘으로
그것이 작가의 아들이름인 '노아'와 매칭되게 함으로
영화의 제목을 '노아의 방주'라 붙이고 싶은
감독 및 제작자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입장을 그대로 읽을 수 있게 하였던 점...
모든 게 부담과 반발을 덜어가며
가장 자제하며
과학적인 논거를 확실히 하며
메시지를 강하게 뇌리에 박히도록 하는
신실한 기독교인 감독 - 확신한다 !- 의 의도인 듯 싶어 영화가 사랑스럽다.
저들 어리석은 불신자 관객 들,
종말이란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구름 잡는 망상 적으로 생각하던
조금은 비 신앙적인 기독교 관객들에게
정말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징죄가 시작이 되면
어떠할 것이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절대로 어이없는 과장이 아닐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 후 '종말'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성경에는 분명히 노아의 방주 이후의 '종말'은
다시는 '물'로 일으키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럼에도 미래의 노아의 방주를 설정함은
성경적인 것은 아닌 듯싶다.
그냥 재미와 기독교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를 줄 정도의 의미를 두면 될 것 같다.
한편 영화의 줄거리를 끊임없이 이어가게 하는 에너지는
'작가'의 지치지 않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종말이란 거대한 두려움에도 끝까지 도전하고 기다리는 인내에
' 지질학자' 의 균형잡힌 인류애와 사랑
그것을 마침 도장처럼 굳게 하는 '대통령'의 올바른 신앙을 상징으로 하는
옳은 신앙인들의 모습이다.
'대 반전'
오늘 묵상에서 주시는 묵상 포인트다.
이 대반전이 일어날 동안
유다백성들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기다릴 수 밖에 ..
불신자 이방인들은 고발을 한 후 다리오 왕의 적극적 협조에
의기 양양 하면서 그들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을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나를 저기에 대입하여 본다.
이전 같았으면 늘 가장 악한 상황, 실패를 점치고
거기에 하나하나 오늘의 상황을 맞추어 가며
속상해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던가?
그들도 강건너 서편 이방인들이 방해할 것은 알고 있다.
과거에 수년동안 그러지 않았던가?
두려움은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엊그제 묵상 구절에 하나님이 미시는 유다장로들을 어찌할 수 없어서...투서를 한 것으로 나온다.
악한 것들이 어찌해도 상대하지 않고
주님 하나님이 미시는 대로 열성을 다해 하던 일을 하는 것...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이니
가장 선할 것임을 믿는 것.
불안해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오늘의 대 반전을 보게 하는 원동력이다.
어제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나같으면 진즉에 손발에 힘을 풀고 땅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작가는 죽도록 열심으로 최선을 다한다.
결코 죽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 사람처럼...
그리고는 상황은 누가보아도 죽을 상황으로 치달아 간다.
하지만 그들은 이루어 냈다.
'대 반전'
그들의 대 반전은 '천년왕국'으로 상징될 듯한 새로운 지구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나.
계속 고백했지만 불안한 삶을 살아 왔다.
늘 실패의 두려움이 날 사로잡았었고
두려움이 큰....
이제 상황은 옛날 머리로 판단하면 그리 나아진 것 없다.
오히려 나이는 더 들어 가지
자식들은..... 남자 산부인과 의사지..
사단의 송사대로라면,
세상의 합리적 판단대로라면
'강서편 이방인에게 고발당하고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인' 비슷할 까?
불안하여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안절부절 못하고
이것저것 정보찾고 도울 사람 찾고 .......
하지만 실제 성전건축 중인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도움아래
제 이차 성전 건축에 총력을 다하고
묵묵히 일하고 있는 것 처럼
많이 담담해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데도 기쁘다.
차분하다.
그렇다.
주님은 주님의 펴신 손 안에 있는 한
절대적으로 보호하신다.
상황이 급박히 돌아가고 나쁠 확률이 많은 쪽으로 돌아가는 듯 해도
결과를 돌아보면 '선'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측을 넘어서서 축복하신다.
오늘 저 이방인들이 벌인 일로 인하여
대반전이 일어나 오히려 더욱 든든한 지원자 다리오왕을 얻지 않았던가?
불신자들의 손을 통하여 '일용할 양식'을 얻게 되지 않았던가?
참 재미있고 놀랍다.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은 '늘 평강'이다.
귀하신 주님 안에 있게 됨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나의 하나님
나만의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게 됨이 놀랍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뒤에는 '대 반전'이 '선'으로 있을 것임을 알기에 행복하다.
적용
1. 기다리자.
믿고 기다리자.
주님은 선이시다.
2. 당황하지 말자.
모든 게 선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3. 성경 일곱장 읽겠다.
4. 당직이다.
힘들 때 쉽게 좌절의 생각이 다가온다.
그럴 때 기뻐하는 것이 주의 뜻이시다.
오늘 묵상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 반전이 주님의 뜻이다.
5. 기도하자.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영화 이야기로 주님의 묵상을 가볍게 만든 것은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내용을 잘 버무린 영화로
무엇보다 기독교적 메시지를 덜 튀게 하여
사람들이 주님이 경외의 분이심을 조금은 깨닫게 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그 안에 그 절박하고 끝모르게 달려가는 그 무서움 속에서
끝까지 견디다가 살아나는가족을 보았습니다.
주님.
오늘 묵상의 내용이
입장을 바꾸어 들여다 보면
어쩌면 저리 무서울 결과를 기다리는
무명작가의 입장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며
그 끝이 결국은 선함을 보이는 두 공통점을 보며
주님 안에서는 결국 모든 것이 선임을 다시한번 깨닫고
또 다시 내 속의 불안의 찌꺼기를
들판에서 괜한 걱정, 불안이라는 이름의 민들레 홀씨를 부는 바람 등지고
공중에 날리는 그런 마음으로 날려 보내어 봅니다.
주님.
주님이 알아서 하소서.
전 끝까지 주님 만 붙들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금의 현상을 흔들리지 않도록 하소서.
제 아이들.
제 환경.
우리 나라 환경
지구적 환경.
그냥 다 맡깁니다.
주님이 알아서 대 반전 시키실 줄 믿습니다.
지금껏 그리하려 노력해왔고
또 그러합니다.
주님 조금 더 날려 버리소서.
제 안의 믿지 못함을
제안의 조급함을
제 안의 불안을 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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