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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창33:1-20] 본문

구약 QT

나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창33:1-20]

주하인 2020. 2. 24. 08:34


1.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하나님과 씨름하던, 기도하던 야곱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놀랄 만한 광경., .다리가 후둘 거리는 장면이 눈에 뜨인다.


 대비다.

하나님 앞에 절절히 기도하는 수 밖에 없던 상황과

그 절절함의 이유를 보여주듯이

400명의 아주 많은 장정 (장정이라함은 힘쓰는 남자들 .. 이다... 군대 ! )을 거느리고

에서가 나타나고 있다


 왜 일까?

에서는

어쩌면 여차하면 야곱을 죽이려는 생각,

최소한 그에게 겁을 주려는 생각으로 그리했을 것이다.

정말

아래에서 나오듯

서로 울며 껴안을 만큼 동생을 마음 가득히 용서하였다면

홀로 나왔거나

악대......등 영접하는 인사들을 데리고 나왔을 것을

분명코 저 모습은 환대는 아니다.


 난..

내가 야곱의 저 입장이었다면

20년동안 양만 키우지 않고

자기 사람들을 키웠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보라.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정착하기 전까지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지만

그 수 하에 용사 318명으로 타국 왕을 겁박하게 할 정도로

사람 모으지 않았던가? 

이삭도 그랬고...

그러기에  그 시절에

에서를 두려워 해 미리 군대를 조직하기 위하여

장정을 모으려 했다면 얼마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게

당연한 추론일 듯 싶었다 .

그렇다면 어찌 되었을까?


장정 400명이란 숫자를 보는 순간

만일 에서와 당당하길 원했더라면

누가 이기든 아마 큰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고

이기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둘 모두 아주 심한 타격을 입어

야곱이 한쪽 엉덩이 (아마도 왼쪽..오른 손으로 쳤을 것이니..) 환두골 골절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 맞으며

성경의 내용으로 보아

그가 절둑거리기는 해도

걷거나 일하는데 지장이 있어서

오랫동안 누어 있을 만큼 아파야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손님접대 하듯

나가서 에서를 맞이 했음은

전쟁으로 아무리 이겼어도 겪을 통증이란 차원에서도

너무도 다행임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다.



3.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그렇다면

'약함'이 강함이란 것이

금방 나온다.


 보라.

야곱이 그리도 절절히 고개를 숙이고

선물을 안기었고

가족들을 순서대로 다 인사 시켰으며

또한

그의 다리저는 모습이

에서로 하여금

400명 끌고 오게한 오래된 '미움', 저주 원망을 가라앉힌 것이고

형제간의 피바람,

심한 육신적 고통

...........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곤란으로 부터 벗어나게 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왜 야곱의 환도 뼈를 부러 뜨리셨는가가

이제 더 명확해지는 순간이며

그러함은

아직 남아 있는

에서와 야곱 사이의 갈등(400명이 그 증거 아닌가)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가라앉히시는 증거시며

약함이 강함임을

낮아짐이 강함임을

겸손이 무엇보다 훌륭한 무기임을

이 미련하고 아직도 '자아'가 기세 등등한

'주 모'등에게 알릴 이유이심이

확~실히 느껴진다.

 감사하다.


주여.


오랫동안

모든 약함이 강함이며

약함을 기뻐함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함이

강함이 되는 길임을

말씀을 통해 깨닫고는

그리도 노력을 했으나

아직도 약해지는 것을 참으로 두려워하고

조금이라도 그런 상황에 빠지려 하면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저.........입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을 통해

다시한번 확실히 깨닫습니다.

주여.

약해짐으로 인하여 에서의 화를 누그러 뜨리게 하고

절룩거리는 약함으로 인하여

그의 가슴에 화대신 '슬픔'과 긍휼의 눈물로 바꾸어 지게 하는 것을 요.


주여.

오늘의 이벤트를 곁에서 보는 듯합니다.

저 일을 통하여

정말 기뻐하시는 게

우리의 약함을

하나님의 이유로

자연스레이 받아 들인다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여.

저도

주님이 그게 기쁘시면

주께서 제 약함을 기뻐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면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제 약함을 기뻐하길 선택함을 보시고 기뻐하신다면

저..

그리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약함을 기뻐하길 선택합니다.


 쓸데없는 자존심.

자아의 질긴 버팅김을 내려 놓으려 합니다.

주여.

십자가에 다시한번 못 박을 수 있길 원하오니

도와 주소서.

 나 자신을 위하여 그리되길 원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그리되길 원합니다.

내 주여.


 말씀으로 지도하셨으니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은혜로 누그러 뜨리소서.

내 주여.

거룩하신 내 주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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