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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드향기 날리며(막14:1~11) 본문

신약 QT

나드향기 날리며(막14:1~11)

주하인 2007. 3. 29. 08:29

2007-03-29 마가복음 (Mark) 14:1~14:11

 
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문둥이가 사는 집이라...

어둡기가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였을 것이다.

냄새도 많이 나고

전체적으로 집 속은 눅눅하고 어두웠을 것이며 

문둥병 걸릴 두려움이 그 음산함을 더더욱 부채질했을 것이다.

거기에 문둥병 환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그 집안 분위기를 더더욱 눅눅하게 만들어서

사람이 들어와서 식사할 분위기는 최소한 아니었고

누구도 초대할 생각조차 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 갑자기

누구도 생각 못한 일이 이 문둥이 집 안에 생기기 시작했다.

예수님이란 분이 12제자와 함께 다른 이들이 한꺼번에 이 집에 몰아닥친 것이다.

 

 더럽기가 말도 못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못하는 것이지만

가장 빈한하고 더러운 삶을 사는 이가 내놓을 음식이란게 있을 것인가?

있다해도 그들이 그걸 달가이 먹을 것인가?

주인이 참으로 죄스럽고 오히려 안달 복달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의 병으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아

삶 자체가 늘 불안과 분노와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남 한테 스스로를 노출 시키는 것 자체가 끔찍한 두려움이고

스스로도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고역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니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리고 뒷골이 땡기고 다리가 후둘거리며 심장이 벌렁거리고 등골에는 식은 땀이 주르르 나며 얼굴은 온통 붉어지고 긴장이 될 일이다.

 그 주인은 손님이 오신 것이 놀랍고 감사하지만 이런 두려움과 긴장이 그를 참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며 상반된 두 감정의 소용돌이는 손님들이 들어온 순간 부터 그의 심장을 옥죄기 시작하여 조금도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얼음 판 위에 서 있는 듯한 긴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드디어 어떻게 마련하였든

그 문둥이의 집에 식탁같은 형태의 식사하는 장소가 마련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 저곳 너부러져 있는 오물같은 것을 급히 치웠을 것이고

비좁은 장소를 넓히기 위하여 잡동사니를 마구 밀어 져쳤을 것이며

적당한 돌이나 나무 덩어리를 가져다가 식탁을 마련했을 수도 있고

그 동네 문둥이들 식탁을 다 모여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는 가장 깨끗하다고 생각되는 천을 그 위에 덮어 급조한 식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되었든 간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식탁에 모여 앉았고

식사기도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문둥이 주인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벌써 기술했던 그 두가지 마음의 갈등 속에 정신이 빙빙 도는 상황에서

감히 사람취급도 안하던 사회 환경 속에서

가장 사람답고 성스러운 행사가

눈앞에서 그것도 자기 집 안에서 이루어 지고 있으며

그것도 예수님 같은 엄청난 분이 아주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앉아 있음은

이것이 꿈이 아닌가 하는 멍한 상황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그는 꿈에서 깨기 위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행위인

볼을 꼬집지만 문둥병환자의 특징이 통증을 못느끼는 병으로 인하여 그것도 힘들었을 것이고..

 그러면서 그의 집안에서 거하시는 예수님의 계심이 그로하여금 서서히 마음의 평강과 평안을 가져오게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특징이시자 장점이시니까..

은혜라고 불리는 그 평강의 하나님의 축복이 이 엉터리 같은 문둥이 집에 임하셨다.

그러자, 문둥이의 그 회오리치는 좌절과 혼란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잠시의 소란스런 대화의 시간이 지나다가 갑자기 좌중이 조용해진다.

한 여자가 들어와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기 때문이다.

나드.

향유의 냄새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 문둥이의 집에서 퍼져나간다.

그리고 잠시 후 더 시끄러운 소리들이 난다.

'아니, 그정도 돈이면...'

' 무슨 의도야?'

' 아니 제가 자격이 있는가?'............................

 

머리속 마귀들의 송사도 이 보다 덜 시끄러울 것 같다.

문둥이 집이 오늘 참으로 희한한 일로 뒤죽 박죽이다.

이전에 살아오던 삶의 패턴으로는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났던 그 주인의 머리로도 예측을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은 향기가 감돈다.

나드의 향기가 ....

 

사람사는 소리가 들린다.

 

( 인격의 고아한 향기가 ....)

 

보고 있는 문둥이 주인의 눈에서

한방울 눈물이 흐른다.

그 속은 더 이상의 갈등이 멈추었다.

그냥 호수가 되어 버린 것만 같다.

그 호수의 물방울 하나가 눈으로 튀어나와 눈물이 되어 흐른다.

잠시 그는 그가 문둥이 임을 잊었다. 

눈물이 흘러 내려

땅바닥에 닿을 즈음,

나드의 그것보다 더욱 향기롭고

사람들의 소리보다 훨씬 또렷하게 들리는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은혜로운 음성이 그 집을 채운다.

 

 

 

6.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아..

세상의 원리를 뚫는 진리의 말씀.

모든 혼란을 잠재우는 은혜의 말씀.

간단하지만 더이상의 반론을 허락지 않을 지혜의 말씀.

그 말씀이 문둥이와 창녀와 어부와 따르는 모든 가난하고 피곤하고 상처입은 자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채우며 주 예수의 입에서 발해지고 있다.

 

이 귀한 말씀이 바로 이 순간 문둥이 집에서 벌어지고 있다.

 


 

10.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이런 하나님의 원리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많이 배우고 지혜가 있다는 유다가 세상을 좇고 있다.

그는 세상이 기뻐하는 쪽을 택하였다.

세상이 주는 돈을 받는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팔았다.

유다는 영원히 죽는다.

 

 

 

 예수님 모를 때는 난 내 자신이 혼란스러웠다.

잘생긴 거 같기도 하고 천하에 추하게 생겨 보이기도하고

머리도 좋은 것 같았다가 어느 때는 가장 멍청한 것 같기도 하고

웅변을 정말 잘하는 것 같다가 가장 못하는 자이기도 하고

노래를 잘하다가 음치로 느껴지기도...

 이게 내 self image 였었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내 정체에 대하여 잘모르고 있어다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불안정을 의미하였고

분노와 불안과 두려움이 상당히 많은 부분 그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것이었다.

그 상태를 탈피하기 위하여 나는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정직하여서 칭찬 받으려고 노력하였었고

열심히 노력하여 성적을 올리려고 하였으며

남에게 부드러워 보이려고 애쓰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 뜻과는 다르고 나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뛰어난 자들이 많아서 그런 외부적인 노력이 흔들릴 때는 쉽게 실망을 하고 그런 경우 일어나기 힘들어 하기도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의 불안은 영적 문둥병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당혹스러운 면이 많았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내 속에 오셔서 내안에서 같이 먹기 시작하신 그날,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난 많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냥 멍하니 있었지만 그 분의 내 속에 임재하심은 날 굉장히 평화롭게 했습니다.

그걸 나중에 평강이라 부르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단위 인파의 초대는 있지 않았던지라

내 속의 팡파레와 긍정적 변화의 조짐은 참으로 버거운 행사임이 틀림이 없었습니다.

가끔은 이곳 저곳이 요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나 산다는게 이리도 즐거운 일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이곳 저곳에서 송사가 있는 날이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혼란 스러웠던 생각들이 또다시 날 엄습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것은 죽기싫을 만큼 적막하고

가끔은 썩은 냄새가 나는 듯 우울한 분위기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었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내 속에서 향내가 나기 시작함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귀한 가드의 향내가 나기 시작하는 시점은

제 삶에서 가장 어려운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 때에 시작하게된 아침 큐티 묵상이 아닌가 합니다.

제 속의 오래된 부정적 생각들이 날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네가 가당키나 해?

 남들이 네가 그걸... ...........'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제 속은 향기로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받아들이고

그분이 소리가 점점 또렷이 들림에 따라

분노나 부정적인 언사가 줄어들고 얼굴은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주님 일행이 떠나신 후에도 문둥병 주인은 많은 부분에서 달라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희망이 생겼을 것이고

은혜에 따른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고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훨씬 삶이 편안해졌으리라 예상이 됩니다.

 

주님은 그렇습니다.

늘 은혜가운데 살지는 못합니다.

은혜가 좀 적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바로 얼마 전의 기억으로

우리의 노력과 정성을 바쳐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양심은 아버지의 그림자라 합니다.

혼나고 자란 사람의 양심은 늘 두려워서 도덕을 지키지만 언제나 불행 뿐이게 됩니다.

율법이 되지요.

사랑으로 큰 사람은 부모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기쁨으로 지킨답니다.

그게 복음이지요.

 

 난 주님이 내 속에서 식사를 하시고

내 안에 내가 가녀린 손을 들어 깨뜨린 아주 적은 - 마리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 양이지만

향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송사는 줄어들고

주님의 목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내 안의 향내는 도저히 갇혀 있지 못하고 내 육신을 넘어 외부로 펼쳐지고 있는 듯합니다.

 

 참으로 귀하신 주님은 이런 깨달음을 대비시키시느라

세상의 기쁨에 충실히 적응하는 유다를 보이시고 계십니다.

 

나는 싫습니다.

천금을 주고

이 땅의 삶을 천년 보장하며 울타리를 제공한다고 해도

주님이 전제가 되지 않은 그러한 타협은 정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난 비록 문둥이였지만

내 속에는

주님이 앉아서 식사하시던 그 흔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분의 온기가 내 속에는 뚜렷하며

그 분의 은혜가 날마다 새롭고

그 분을 통하여 발하여진 나드의 향기가 서서히 확산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 예수님의 진리를 알게된게 너무나도 기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의 진리를 자꾸만 크게 느끼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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