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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 주님과 쪼그려 앉은 후(막13:9~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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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 주님과 쪼그려 앉은 후(막13:9~23)

주하인 2007. 3. 27. 08:48

2007-03-27 마가복음 (Mark) 13:9~13:23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11.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공회에 날 넘겨 주는 데, 사람 많은 회당에서 매질 해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인데도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신다.

 나중에까지 견디라고 하신다.

 

( 이구 .. 아주 친숙한 얼굴이네...)

 

 날 싫어하는 눈치를 조금 만 줘도 쉽게 스트레스 먹고 짜증을 내는 난 저런 상상만 하는 것만으로도 혈압이 오르려 한다.

사람들이 날 잡아서 마음대로 한다.

얼마전 밴댕이 소깔딱지라는 글을 쓰며 보았는데

그것들이 잡아서 올리는 순간에 제 화를 못이겨 죽는다더니

아마도 나도 그러지 않을까 염려되는 바

거기에다 사람들 많은 데까지 잡아 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지려 한다.

매질까지 ..

상상을 하기 조차 싫고

난 불가능한데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이라는 구절에서 한 줄기 가능성이 보이기는 했다.

 

어제 묵상 구절에 감람산에 데리고 올라가 성전을 마주 앉은 제자는 겨우 넷이시다.

그 넷에 하시는 말씀이다.

예전같으면

아니 실제로 예전에는 이런 구절에 오면 그냥 생각도 하기 싫어서 확 하고 지나가 버렸던 구절들이다.

그럼에도

오늘 말씀하시는 것이 반드시 현재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시며

이제 향후 있을 개선된 인격체의 주하인에게 하시는 말씀이시라는 생각이 들자

그것은 오히려 현재의 밴댕이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운명적 울화통 소유자로서 체념하고 있었던 나에게 실은 희망의 서곡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버스 안에서 10분 이내에 이해가 되는...

 

 어제 그 선택된 12 제자 중에서도 4명의 사이에 잠시 들어 가 앉아 있던 나 -^^~*-는 

 월요일 저녁, 그 피곤한 몸을- 정말 요새는 피곤을 많이 느낀다. - 이끌고 어제의 큐티 적용 부분을 완성하느랴 아버지 학교 스텝모임에 나갔다.

가면서 들고 다니는 수첩에 간간히 적어 두었던 여러가지 생각들을 다시 한번 들춰 보았다.

거기에 얼마전 포도원 세를 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끄적거림을 그 안에 적어 넣었었다.

잊고 있다가 다시 그 다짐을 보자 가슴이 뜨거워 짐을 느꼈다.

 이처럼 은혜가 없이 이론적으로 보면 '포도원의 세' 라든가 '하나님의 일' 등 표현이 너무 거창하고 나한테는 맞지 않는 듯하며 생경하고 쑥스럽게 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 유치한 듯한 글이 은혜로운 때가 있다.

피곤이 물러간다.

그러면서 많은 선한 생각 들이 기쁨 가운데 나를 몰아간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10분가까이 걸어가며 입으로 기도를 하며 걸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맑고 기쁘다.

 아버지 학교 스텝.

혼자 버티기 힘에 겨워 지인의 강권으로 내가 다니지도 않던 교회의 아버지 학교에 등록하여

나름대로 선한 느낌을 받으며 수료한 후 하나님의 엮으심- 우리 조 모두가 스텝으로 등록했고 그 때 내가 지은 이름이 '11조'여서 중의적 의미의 '십일조'로 지은 후 지금까지 스텝으로 봉사한다.- 후 거의 끌려나가다 시피 하면서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과 아버지학교 열리는 5주간 토요일 마다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난 아무런 봉사에 대한 의욕도 없었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응답도 없어서 나가는게 힘이 들면서도 거의 일년 간을 열심히 나가게 되었다.

갈 때마다 가기 전에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얼마 전 부터 '중보'에 대한 나름대로의 응답과 그로 인한 사랑의 회복이란 기도 제목을 받으면서

월요일 마다 강제적으로 날 중보시키는 주님의 손길이 크게 느껴졌다.

'아~ 이래서 날 여기에...'

그러면서 비단 아버지 학교 뿐 아니라 삶의 여러가지 부분에 난 하나님의 원하시는 듯한 일에 조금씩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 보아도 그것은 어느 분들처럼 '인생 후반전'의 거창한 비젼을 주님으로 부터 받은 응답이 아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내면의 변화와 더불어 주님이 허락하신 느낌과 환경의 변화이었다.

 

많은 이유가 은혜 가운데 걸어가는 그 발걸음의 기도 중에 느끼게 해 주셨다.

'사랑의 회복

 긍정적 시선의 자리 잡음

 상급 쌓은 중보를 강제적으로 인도하심.

 포도원 임대세 버는 행위.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훈련.

 선진 프로그램 .

 찬양을 펼칠 무대.

 의미있는 인생 후반전을 인도해나가심의 관찰............'

 

 도착하여 교제를 좀 나눈 후 찬양 후 장로님의 설교 잠깐.

그 설교가 '포도원 품삯'이다.

주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한데나리온의 품삯.

묘한 응답이시다.

 

그걸 들으면서 난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윙크를 느꼈다.

그것은

아직은 내 속에서 오늘 같은 상황에서 절대로 참지 못할 덜 성숙한 인격이고

상처 투성이 자갈 밭이지만

지금과 같이 서서히 주님을 묵상함을 놓치지 않고 동행하는 그 분을 걸어가는 도중이라도 느끼려 노력하는 시간이 지나면

감람산에 쪼그려 앉은 네 제자와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가능성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되었다.

요 몇년 훈련  내내 주님은  맡기는 연습을 시키셨다.

그리고 그 분의 세미한 소리를 듣는 감성 훈련도 시키신 듯하다.

약간의 감동에도 눈물이 나오려 하고

아이들의 눈이 참으로 이쁘고

그들의 조그만 얼굴에서 지어지는 근육의 움직임이 만들어 내는 온갖 표정을 보며

기쁘기가 한량없는 사랑스러움을 느낌이 회복됨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가능성에 대한 열어놓음은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라는 이 말씀을 '그럴수도 있다'라는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데에 있으며 그것은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는 성경의 표현이 신앙 연수가 지나면서 체험되어지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직은 물론 강력함은 아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으면서 정말 좋은 것은

모든 걸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 의지 박약자 주하인에게 너무도 맞는 분이시라는 것이고

그것은 내려 놓고 손잡기만 하면 성경대로 되기에 걱정할 것 하나도 없음을 아는 눈치 빠삭한 나라 그렇다.ㅎ  

 

 그러나 현실에 돌아와 내 두려워 하는 상황을 연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림을 지금도 느낀다.

날 미워하는 자들 앞에서 난 꼼짝없이 굳어 버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심장의 박동수를 분당 100회 이상 올리고

혈압을 150/100 이상 올리며

등골에 약간의 전율성 긴장을 하고

이마에 식은 땀을 흘리며

동공의 크기를 한껏 줄인 후

목소리 갈라 뜨릴 만큼 톤을 약간 높이며

안그런 척 하느라 얼굴의 근육을 온통 강제 이완방향으로 긴장시키고 있다가는

견디지 못할 즈음에 가서는 분노를 터뜨리는 게 다 일 듯 싶은...

그래서 예수님의 향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동을 할 듯한 두려움이 날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예전과는 다른 내 삶을 보는 시각의 변화와

내려놓는 훈련 덕에 생긴 여유는 나중까지 견디는 자의 가능성을 약간은 열어 놓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견디는 일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좋아하시는 일임을 화내려 할 때 조차도 기억하게 됨을 알고 있다.

화 날 때는 내가 참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말씀처럼 내가 참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렇다라는 것의 증거가 되는 것임을 알리는 것이기에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ㅎㅎ

 

그래서...

오늘 묵상을 예전과는 다르게 받는다.

 

주님.

난 안됩니다.

절대로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마음이 분노하거나 속이 상할 때

불안할 때 특별히 내 혼자서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지고 세상이 더욱 어지러워 질 수록

주님의 이름을 행하는 자들에게

주님을 기뻐하려는 자들에게

많은 질타와 송사가 있을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손해가 있을 걸 예상이 됩니다.

그럴 때 마다 이 마음으로 어찌 하나님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이루어낼까 염려되는 바 많습니다.

주님이 오늘 말씀하신 것 처럼

마음 만은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향기를 드러내어 그들에게 주님의 자녀로서의 증거를 보이고 싶음에도 그러지 못함이 그동안은 답답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마져도 주님 앞에 내려 놓으려 합니다.

그동안 인도해오신 것 같이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기길 원합니다.

주님을 기뻐함을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기쁨이 놓침이 두렵고 주님의 사랑에 배신함이 두려워 주님을 좇을 수 밖에 없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나한테는 멀기만 했던 성경의 요구로 느껴졌었지만

이제는 가능한 일로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히 주님의 성전을 내려다 보며

감람산에서 쪼그려 앉은 주님의 제자의 그 귀한 감동을 잠시나마 묵상해 본 이후로는 더욱 그러합니다.

포도원 세를 열심히 내게 해주실 주님의 응답을 느낀 듯 한 그 이후에 더욱 그러하나이다.

주여 이 감사함이 더욱더 증폭되고

주님 만날 그 날 까지 늦추어 주지 않도록 도우소서.

선줄 알고 있사오니 쓰러지지 않도록 도우소서.

특별히 잠시후 모임에 갑니다.

주여 늘 지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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