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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랬으면(눅7: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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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랬으면(눅7:1-17)

주하인 2012. 2. 7. 13:55

(눅7:1-17)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

내 눈 항상

하늘 만 향했으면 좋겠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영혼은 늘 투명했으면 좋겠고

내 마음은 쉼없이

좋은 생각으로만 환기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

하나님과 늘

하나로 통했으면 좋겠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 말씀이 쉼없이

내 영혼의 지성소를 거쳐

내 마음의 뜰에

내려 앉았으면 좋겠다

 

내 사는 하루는

긍휼의 따스함이

늘 잔잔했으면 좋겠고

 

내 거하는 곳은

나로 인하여

주님의 향기로 가득차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모든 아는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행복해 했으면 좋겠고

 

그들 모두 나로 인해

주님의 향기를

맡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

 

예상되는 모든 힘듦과 갈등에도

오직 예수님의

그 긍휼이 여기심과

나를 보며 놀라시는

그 사랑으로 족하길 원한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나도 이랬으면..

타 민족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넘쳤으면.......

 

 동료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손윗분들이기 때문에 공경하고

...........

사랑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옷입는 게' - 시편에 나오는 묘사 !- 주님의 뜻이기에

나도 그렇게 되어 버렸으면..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이랬으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가까이 하지만

아직도 기적이 벌어지길 바라는 마음 만 있다.

 

 주님의 말씀이

곧 약속이고

그 매일의 약속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 약속은 이루어짐을

이 분처럼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씀 만 하시면

다되어 버릴 것이 믿어지고

그래서 그대로 될 수만 있다면 .....

 

그리되길 바란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he was amazed at him)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

   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놀랍게 여겨..라는 표현은 오히려 부족하다.

주님은 그의 그런 '말씀'에 대한 믿음을 보시고

amaze  , 즉 경악하셨다 하셨다.

 

13.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하셨다.

긍휼히 보심이시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그런 분이 '경악'을 하심은 그 사람의 믿음을 모르셨단 말이던가?

주님이 모르시는 일도 있으신가?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다.

주님은 너무나도 긍휼하신 분이시다.

과부 만 그런 상황이기에 불쌍히 여기시는가?

주님의 사랑은 제한적이신가?

 

아니다.

아님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그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 'amazing'하시는 이유는

기도와 믿음과 .....모든 주님과 통하는

절절한 우리, 믿는 자의 '노력'과 '선택'을 보시고

반응하시려 자제하시는 것이실 수 있다.

 '세상에 베풀어지는 모든 일', 심지어는 고난 마져도

주님은 그것을 통하여 '소통'하려 하심이다.

'기도' 받기 위함이시다.

주님은 우리가 기도하길 기다리신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겪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베풀어졌다고 누군가 말했다.

 맞다.

주님은 세상에 가장 적은 간섭 만을 하신다.

나머지는 '자유의지'에 맡기셨다.

그리고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앎'을 절제하고 계실 지 모른다.

 

 

 

 날씨가 하루 이틀 따사롭더니

오늘 부터 다시 추워졌다.

밖에 날은 화사하더니 나가니 코가 얼얼할 정도로 기온이 차다.

 오전이 마무리 되어갈 즈음

진료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는 환우 한분.

먼 곳으로 이사간 분인데 진료를 위해 찾아오셨다.

멋진 뉴질랜드 남편과 이쁜 아들을 낳아 잘 살고 있다.

조금 만 위로를 해주면

큰 눈에 눈물이 방울 방울 맺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

마음이 여린 분이신데

신뢰를 보이고 수년간 찾아오시는 그 마음이 귀해

마치 '동생' 같은 심사로 보고 있는 분이시다.

 이사는 멀리 - 고속도로타고 2시간이 넘는 거리 - 갔지만

또 아침에 진료를 받으러 왔음이 고마와서

이 얘기 저얘기 하다가

'위로'의 말 몇마디 건네니

예의 그 큰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무리 오래된 환우라 해도 의사에게 터 놓치 못할 깊은 속내가 있나보다.

하여튼 진료를 하여 보내고 나니 마음이 '쨘~' 하다.

시집보낸 동생이 찾아왔다 가는 심사같기만 하다.

 

 화요 점심모임에 약속장소로 가면서

불현듯 '이 방 민족'에 대하여 베푸는 '백부장의 사랑'이

가슴에 밀려온다.

'아~ 타인이지만 이런 긍휼한 마음이 지속되는 자였겠구나.

그런데 난  나에게 정성을 보이고 신뢰를 보이는 분에게만

저런 마음의 긍휼지심을 가지고 있지만

저 분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꾸준히 대상의 선악이나 나의 이해여부와 상관없이 지속된다면

그게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실 마음이시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

 

오늘 주님이 그 환우를 내게 보내셔서

말씀 중의 그 긍휼하심까지 회복하기를

나에게 바라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나의 묵상이 말의 유희에 끝나지 않고

적용에 더욱 현실감이 있게 되겠고

다시 말하면 주님은 나에게 살아계셔서 모델을 보이신 것이다.

 

그렇다.

그러면 오늘은 그 긍휼한 마음,

타인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확장시키길 기도하면 되겠고

오늘 말씀에서 '말씀하사'란 말씀처럼 ^^*

그런 말씀이 있으시기에

나의 긍휼함은 확장 될 것이고

또 그렇다면..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놀라시고'  불쌍히 여기심이 있으실 것이란 이야기다.

그게 말씀으로 있으시기에

오늘 난 믿는다.

 

 

적용

 

1. 기도한다.

 긍휼한 마음 넓혀주시길

 

2. 감사한다.

 . 긍휼한 마음을 적재 적소에 체험시키고 깨닫게 만드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감사한다.

. 말씀으로 '놀라시고'  '불쌍히 여기사' 라 하시니

  그 말씀을 믿고 감사한다.

  주님은 날 그리 여기신다.

 

3. 성경 세장 읽겠다.

 

4.  주님이 원하시니 난 무조건 한다. ... 라 되길 원한다.

  내 머리속, 마음 속에 ' ~해서' 라는 조건이 많이 없어지길 원한다.

  주님이 원하시니.. 라는 전제만 필요하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날 인도하시고

말씀하사.. 라는 말씀대로

믿을 믿음이 늘어나게 해주실 것임을 믿기에 감사합니다.

긍휼한 마음 커지고 늘어나게 해주실  것을 감사합니다.

살아게신 하나님이 매일 매일  제 인식에 체크가 되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를 좋아하는 자만을 긍휼히 여기지 않게 하시고

형으로서

아버지로서

동생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는 자로서

무조건 긍휼의 마음을 가질 준비를 하게 하소서.

주여.

오늘 하루

그리하길 원합니다.

모두 이해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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