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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의 눈물(눅7:36-50)

주하인 2012. 2. 9. 12:06

(눅7:36-50)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꼭 바리새인이라고 예수님을 존경하지 말라는 법 있던가?

오히려 '바리새파적' 성격을 지닌 기독교인,

어쩌면 예수님의 '생명', 성령충만을 경험하지 못한

성령체험을 했더라도 다시 삶속에서 딱딱히 굳어가는

아주 많은 현대 기독교인의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아니, 고생을 경험해 보지 못한

온실 속의 기독교인은 또 아닐런가?

내 모습은 저런 부분은 없던가?

성공하고 잘나가는 것 만 같은 때,

큰 영적 고민 없이 예수님을 '축복'의 조건으로만,

아니면 관심이나 자신의 부족한 갈증을 채울 상대로만 여기는 ...

 

 어찌되었든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청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바리새인보다는 뛰어난 부분은 맞긴하다.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그러나, 주님이 진정 귀히 여기시는 사람은

'눈물로 회개'하는 자다.

'아픔' 이 있는 자다.

아픔을 주님께 들고 오는 자다.

며칠 전 묵상에서 산상수훈 말씀에 이러지 않으셨던가?

'지금 ~!!  우는 자에게는 복이 있느니........'

 우는 게 왜 복이 있는가?

울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는

그 절절함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깊이 사모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고통이나 고난이 그리 달갑지는 못하지만

고통이나 고난이 꼭 필요함은

그 마음에 '갈급'함을 가져오고

주님 앞에 낮아지는 영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 책을 며칠 째 읽고 있는데

어젠 이런 '우화'가 나온다.

옛날 땅에 '신'이 살 때..

농부가 그에게 와서 간청하며 날씨를 조절할 기회를 주면

땅을 온통 부유케 만들 자신이 있다하여 허락하니

철마다 적당한 비와 해를 뜨게 하니 '곡물'이 잘 익었다한다.

그래서 자신을 얻은 농부가 다시 간청하길

10년만 자신에게 그런 능력을 지속시켜주면

온땅을 다 부유케 만들 자신이 있다하여 허락한바

수확철이 되어 열매를 거두어 보니

온통 껍질 뿐인 소출이었다는 것이다.

 

 고난이 필요한 이유다.

그 고난을 가지고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숙성시키신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앞에 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진정한 회개'

그것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덕목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녀의 과감한 헌물은 기뻐하셨지만

진정 그 하나님이 이 땅의 썩을 것을 기뻐하셨겠는가?

그의 회개와 더불은 '마음'의 풍성함을 기뻐하셨겠지.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우리의 마음이다.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평안히 가라 신다.

'평안.'

세상의 어떤 것도 주님의 평안에 따를까?

 

평안을 잠시 묵상해 보았다.

평안이 심리적 평화만 말할까?

 

  요 며칠 그리도 바빳던 수술 일정이 '갑자기 ' 뜸..해진다.

이전에는 그랬다.

' 산부인과 의사는 역전 지게꾼 같다고.. '

가만히 있다가 손님 오면 우루루.......

없으면 공치고 ,

나이들면 눈치 보이고.ㅎ

나이 들면 자신이 떨어지고 불안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러기에 기도하면 반드시 수술예약이 넘치는 매일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기도'와 말씀 사모와 성령 충만함이 '삶'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미하게나마 느끼게 되는 도구가 되었고

그러한 사실은 '나'에게 많은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이 사실이다.

 

 평안.

사람에 따라,

정말 영적으로 성장한 큰 나무가 되어야 할 분이시면

청빈의 삶 , 순교자의 삶을 원하시며

더욱 큰 영적 충만함으로 끄실 것이고

아니시면 세상적인 축복도 동반된.......

나같은 순한 모습으로 세상의 복도 동반하실 것 같다.

그 모든 것은 주님의 판단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니던가?

구분하고 나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듯..

 

 

 그렇다.

오늘 주님은 나에게 그러신다.

''고통' 고난 번민.. 모두 주님 앞에 다가가는 기회다.

 내 돌아볼 회개의 문제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

 주님 앞에서 눈물로 다가와야 한다.

 그리하면 그 분이 평안을 허락하실 것이다.

 날 기뻐하심을 내 영혼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세상의 것도 주님이 가장 선한 분량으로

 나에게 주시기도 안주시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어찌되었든 나에게 평안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게 바로 축복이다. '

 

 

 

적용

1.  난 무엇을 고민하던가?

 내 가슴을 짓치는 문제들을 '깊이' 주님 앞에 가지고 가자.

 회개하자.

 간구하자.

 깊이 기도하자.

 

2. 주님 만이 날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다.

 주님은 내 구원자시다.

 내 모든 것을 아시고 내 모든 것을 해결하실 분이다.

 기도하자.

 

3. 성경 세장 읽자.

 

4. 당직이다.

 주님을 위하여 더욱 기쁘고 착하게 근무하자.

 

 

 

 

기도

 

 주님.

참... 힘이 드는 삶이 저 입니다.

객관적인 자극보다 훨씬 더 주관적인 고통이 큽니다.

주여.

저 여인 같은 깊은 회개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주님 좋아하실

그래서 제가 더 좋을 그런 깊은 회개 말입니다.

성령으로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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