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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예레미야님처럼( 렘 8:18-9: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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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예레미야님처럼( 렘 8:18-9:2 )

주하인 2009. 9. 21. 09:50

제 8 장 ( Chapter 8, Jeremiah )

 

주님

 

저도요

예레미야님처럼요

타는 가슴으로

남을 위해 울 수 있는

그런 눈물을 좀 주세요

 

그 분처럼

주님의 마음 그대로

세상을 향해

진홍빛 눈물을 쏟아낼 수 있는

그런 사람

되게 해 주세요

 

주님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내 속상함 때문에 우는 것은

울고나서도 상당히 찝찝하지만

나에겐 아주 가끔이지만 ^^;  주님이 허락하신 중보의 눈물은

마치 더러운 찌끼가 눈물을 통해서 빠져나간 듯

통쾌한 느낌으로 내 영혼을 정화시킨 확신이 들게 하신 것을 경험해왔다.

 

 예레미야님.

눈물이 많으신 눈물의 선지자.

그 분은 그런 느낌을 따지실 여유조차 없이

그 분의 영혼이 '중보의 눈물'로 가득차 있으시지만

억울한 , 속상한 자신 만을 위한 눈물이었다면

아마도 우울증으로 중증 무력증에 시달렸거나

정신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남을 위한 선한 눈물이고

그것은 그가 그리도 울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기도하고 부르짖지만

그들은 그들의 중심에

성전인 그들의 영혼에서 진실로 주님을 예배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줄 알고 있지만

우상에 대하여 예배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그 어리석은 예루살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친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없나?

 그곳에는 의사가 없느냐?

 어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느냐?

 그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주시는 말씀의 주제는 두가지다.

' 남을 위한 공감'과

' 순전하고 올바른 믿음'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라서인지

한번씩 '통쾌'한 답을 줄 때가 있다.

한동안 습관적으로 살면서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를

마치 오늘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벨론에 잡혀가서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줄 착각하지만

어느새인가 매너리즘에 빠져

주님이 원하시는 남을 위한 긍휼함과 중보를 잊고 있었음을

알고는진 날 보고

' 여보 아침에 30분 일찍 나가서 병원을 위해 기도해요.

 날 위해 기도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라 한다.

 전에도 들은 적이 있지만

그냥 혼자서라도 중보하면 되지 나 같은 자가 감히 병원을 위해....라는 생각이 있어서 안했었다.

거기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부담감도 없지 않았지만

기도하는 모습이 들키는 게 웬지 창피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위에 얘기하는 나 자신을 낮게 보는 - 주님이 구원하신 나를 -  낮은 자존감도 이유가 있을 지 모르고

또한 중보기도의 위력을 체험하지 못한

어제 썼던 것 같은 '믿음'의 부족한 나 탓일 수 있다.

이것은 오늘 묵상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주님은 응답을 하시지 않느냐고 외치면서도

내 속은 엉터리로 되어 있는 그런 엉터리 믿음 같다.

 하여튼 어제 저녁 기도하고 잔 탓인가?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얼른 병원에 나왔다.

방석을 바닥에 깔고 무릎을 꿇었다.

직장인 병원을 위해서만 중보했다.

소리를 내어 중얼 거렸다.

처음엔 이런 소리내어하는 중보의 기도에 익숙지 않은 내 모습이 쑥스럽더니만

점차로 깊어진다.

 묵상의 예레미야님의 마음이 점차로 느껴진다.

나보다는 다 뛰어난 리더 분들을 포함하여

중보의 대상을 향해 어찌 기도해야 하나 하는 막연한 걱정도

봄눈이 녹듯 녹아들어 갔다.

예레미야님의 중보의 눈물.

그 눈물을 배우고 싶다는 바램이 깊이는 아니지만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 한구석이 따스해진다.

날 은혜의 감각,

은혜라는 정의를 붙히게 만드는 증상 중의 하나.

따스해지며 마음이 녹아드는 듯한...

 날 스스로 당황시키던 생각 중의 하나.

' 그처럼 아련하던 우리 병원에 대한 애정'이 식고

자꾸만 환우 분들에 대하여 짜증이 올라온다..는 생각이 줄어든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소록소록 올라오고

내 직장이 마지막 날, 주님의 허락하신 대환란의 시기에

세상을 향하여 크게 쓰임 받을 도구로 서기가 기도된다.

 우리 리더들께서

본질이신 예수님을 위하여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비 본질인 축복을 잠시 누를 용기와 결단을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된다.

 경영하는 자로서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빠질 수 밖에 없는 예루살렘인들의 착각이 들지 않도록

이 병원을 보호하시고

오직 치료와 발전은 '길르앗'에서 찾듯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을 받은 후에 축복으로 누릴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진다.

 나에게는 '옛적 곧 선한 길'이란  믿음 회복의 기회를 주실 듯한 느낌이 든다.

예레미야님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런 마음을 주실 듯한 마음이 든다.

감사한 아침이다.

 

 

적용

 

1. 지속적으로 아침 기도를 하게 해주세요...

   기도하고 잔다.

  평생을 아침이 늦은 나다.

  열심이 있을 때는 조금 그러다가

 조금만 게을러지면... 여지없이..

  주님은 나에게 아침 기도를 원하신다.

 

2. 예레미야님의 눈물을 배우길 원한다.

 남을 위한 공감의 눈물.

 남을 위해 울수 있는 자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의 아직도 믿지 못하는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다.

 기도 밖에 없다.

 

3. 기도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소리내어 중보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소리내어 회개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소리내어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소리내어 기도하는 태도였다.

 

4. 본질을 보기위해 늘 깨어 있기를 원한다.

 길르앗의 의사와 향유를 보길 원한다.

 내 믿음 생활 속의 우상을 제거하길 원한다.

 

5.  주님을 위해 손해볼 마음을 가지겠다.

  손해가 나도 주님을 위해서라면 ...

 주님을 위하는 게 어떤 것인지.. 그역시 깨어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늘 말씀 가운데 주님의 뜻을 발견하려 애쓰는 하루가 되겠다.

 

 

6. 성경 일곱장 읽겠다.

 

7. 아버지 학교 간다.

 이것도 중보의 마음을 기르는 훈련이다.

 내가 열심을 보여서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은 안다.

 하지만 참가 자체가 중요하다.

 

 

기도

주님.

아침을 무릎꿇는 짧은 기도로 시작하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마침 예레미야님의 중보의 눈물 시간에 그리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저에게 그리 인도하시는 길인지 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여.

갑자기 아침 일찍 나오게 하시고

말씀에서 중보의 눈물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고

그 며칠 전 부터 내 비틀렸던 무미건조했던 삶을 깨닫게 하시고

그것이 예루살렘 백성들의 왜곡된 신앙과 원망과 닮은 것이엇음을 알게 하시고

중심을 찾을 기회를 주시는게

주님의 손길이심을 깨닫습니다.

 주여.

지나온 시간동안

하루하루 인도하셔서 내 생활의 완벽한 변화를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이제 또 어찌 절 인도하실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제 바랄 것은

제 마음 깊숙히 긍휼의 마음으로 넘치길 소원합니다.

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내가 아프지 않을 제한 선을 두고

적당한 정도의 하나님 말씀 준행을 실행하고

그것을 이해하실 것이라는 사랑의 하나님을 핑계대며 살아왔던 것이

이제는 긍휼함 회복과 중보자로서의

내 삶이 바뀌어야 함을 절감하고 있을 때에

주님은 말씀으로 살아계심으로 이리 절 만지시기 시작함을 보고 있습니다.

주여.

바랄 것은

전 쉽게 좌절함을 아시오니

그리하지 않게 하시고

내 두려워 하는 부분,

절 강하게 만지시사 뛰어넘게 하소서.

주여...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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