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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죄( 렘 9:3-16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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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죄( 렘 9:3-16 )

주하인 2009. 9. 22. 10:13

제 9 장 ( Chapter 9, Jeremiah )

 

 

내 죄를

십자가 앞에만

가져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말씀으로

말씀으로 

균형잡으소서

 

주여

 

 

 
4.  너희는 각기 이웃을 삼가며 아무 형제든지 믿지 말라 형제마다 온전히 속이며 이웃마다 다니며 비방

    함이니라 

 세상은 속이길 잘하면 능력있다 하는 것 같다. ㅜ.ㅜ;;     
 

 비방.

입으로는 않으나 나에겐 비판은 많다.

비방과 비판의 차이는 종이한장 차이다.

주의하자.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억지로 녹여지려면 얼마나 힘들까?

딱딱하게 굳은 살 벗겨내려면 얼마나 불편할까?

그래도 아픔은 사랑이시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의 거친 자아를 녹여서

정금같이 만드시기 위한 연단이시다.

제련의 과정이시다.

 우리의 죄와 상관없는 연단도 힘이 들고 아프건만

이처럼 진득한 죄를 벗겨 내는 연단은 얼마나 더 아플까?

죄를 짓지 말자.

달콤하게 시작하지만 무섭고 아프게 끝난다.

 


 
8.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

     도다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죄.

죄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결론적으로 나오는 현상이 '범죄'이지만

어쩔 수없이 순간적으로 돌발적으로

혹은 상처에 의해 제어할 수 없이 짓는 '죄'는 그나마  덜하다.

아니, '도피 성' 제도 처럼 오히려 주님의 안타까움과 보듬어 주심을 알 수 있을 수 있다.

 

 주님이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죄는

겉으로 평화를 말하면서도 중심에 해를 도모하는 그런 종류의 죄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의도적으로 , 의지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짓는 죄이다.

의지를 가지고 불가항력적이 아닌 상태에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선택적'으로 짓는 죄를 말한다.

  또한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짓는 죄다.

주님의 말씀을 모르고 짓는 죄는 덜하다.

율법을 앎으로 죄가 들어왔다는 로마서의 표현이 정확하다.

 알면서 짓는 죄.

회개하지 않는 죄.

주님의 명령에 반하여 짓는 죄.

그게 진짜 죄다.

한 두번은 실수 일 수 있다.

하지만 자꾸 알면서도 의지적으로 되풀이 하는 죄는 '진짜 죄'다.

주님은 그런 죄를 짓지 말라 하신다.

 

 

 사는 것이 어찌 그리 쉽지 않는가?

잠깐 머리를 들어 상대방을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고 이해도 될 것 같지만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속이 상할 때가 많다.

더구나 가까운 자들이 의도적 불순종을 하면 더욱 그렇다.

혼내고 다구치면 어렸을 적은 말을 듣지만

나이가 들어 머리가 커지면 반항이다.

아들 들 말이다.

보기에 그 길은 틀림없이 옳지 않은데,

저것은 아닌데..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왜 이유가 없겠는가?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 나름대로 속상한 면이 많을 것이다.

 어찌 하겠는가?

 선택은 둘이다.

 하나는 내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내 경험을 위주로 , 내 감성이 가는 대로

강제적으로 다시 그 아이들을 지도하고 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내려 놓는 것이다.

이제는 어찌할 수 없으니 그냥 모르는 척 눈감고 기도만 하는 것이다.

 첫번째는 일시적으로는 어쩌면 그 아이들이 내 선택에 따르는 듯 보여

감정적으로 안정감과 더불어 가장으로서의 권위가 산다는 뿌듯함은 있을 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속은 더 탈 것이고 사랑의 율법을 아는 나로서도 심사가 그리 편치 않을 것 만 같다.

 두번째로 내려놓는다는 것.

 판단자의 위치를 주님께 돌려드리고

기도로서 간구하고 주님이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

맞고 알고 그게 시간은 걸리지만 더욱 좋을 것을 알지만

순간순간 포기한다는 것과 차이를 구분하기 힘든게 어렵다.

 '아니.. 난 뭐야..

 내가 아버지 맞아..?

 내가 가장 맞아?

 아니... 저... 저.. '

이런 소리들이 들리는 것 만 같아

그리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의 힘듦은 '소외감'이 커진다는 것이기에

더더욱 내려 놓는다는 것은 '통제' 즉, 실권을 놓친다는 의미고

그것은 큰 상실감을 초래하는 현상이 된다.

 

 최근에 돌아온 탕자가 눈에 띈다.

그 아버지의 입장이 내 눈에 각인이 된다.

그 아버지는 무조건 감싸 안았다.

아무 질타의 소리 안했다.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돌아온 아들의 위상을 높여 주었다.

......

의도적으로 찾아서 묵상하지 않았지만

며칠전 갑자기 눈에 들어와 아버지의 그 심사를 묵상하게 하시던게

아이들에 대한 내 아버지로서의 입장을 정리하라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여

'내려놓고 아무 소리 안하기'로 마음 먹은 나였었다.

 그러다가 엊저녁 아내와의 대화 중

아들 들의 부족함 , 그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생각나자

갑자기 속이 끓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내 규칙을 이야기 하고 싶은 욕구가 불타오른다.

급한 성격을 아는 아내는 긴장을 하고........

 잠시 방에 혼자 있으며 생각을 잡았다.

' 주님이 특별히 말씀하시는 '탕자 아버지'의 입장을 묵상하게 하심은

 주님이 나에게 바라시고 하시는 말씀이신 것이다.

 그것을 놓치면 '죄'다.' 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가라 앉는다.

 

 남들은 어떻게 사는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리 배워온 다혈질 집안의 상처투성이 환경에서 자라서인지.ㅎㅎ ^^;;;

정의로운 내 판단 대로 해야 할 것 만 같고

그렇지 않으면 안될 것 만 같은 그런 묘한 생각으로 가정을 이끌어 오게 되었었다.

통제를 잃으면 권위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그것은 남자의 나약함과 허탈함...

참..그게 진실은 아니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더 내려놓음'이고

그로 부터 주님이 운행하시는 가정의 화평을 경험하는 것이

또 그래서 그 가정으로 부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초가 되길 바라시는 것이

주님의 뜻일 듯 싶은데도

어쩌면 이렇게도 강하게 옛 성품은 날 사로 잡는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묵상의 주제는 '죄', 그것도 진짜 '죄'에 대한 내용인 듯 싶으시다.

일상의 소소하게 보이고

어쩌면 많은 한국 가정에서 당연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권위있는 남편과 갈등......정도의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주님의 율법과 율례를 아는

그 분의 사랑을 체험한 자들에게는

주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죄'임을 알게 하시고

그것이 진짜로 주님이 말도 하지 못하게 막으시는

'진짜 죄'가 되는 것은

이처럼 말씀으로 은혜로 깨닫게 하시는 데도

의도적으로 피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권위나 다양한 이익을 위해

오히려 한발 더 넘어서는 죄를 범하는 경우라는 것이다.

 

 아직 나는 죄가 크지 않다.

아직은 난 선택의 기로에 있다.

그러나 만일 탕자의 아버지와 같은 무조건 감싸 안는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면

난 죄를 선택하는게 되는 것이다.

혹시 나도 모르는 속상함에 의하여 그러지 못하는 죄를 지었더라도

주님께 대한 부담감과 회개를 하는 마음이 있다면

주님의 이해를 받을 여지가 있지만,

오히려 통제를 시작하는 그런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노력이나  마음의 부담보다는

더욱 의도적으로 교묘한 제재를 가한다면

오늘의 말씀과 같은 진짜 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다시한번 고개를 들어

오늘날의 세태에 저 상태를 대입해 본다.

역시 있을 수 있는 가정의 현상일 뿐이고,

그게 무슨 죄인가?

남을 죽여도 할 말있는 세상에 ..

막걸리에 청산가리나 타고 친족간에 근친상간이나 해야 조금 죄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

성공하기 위해서는 능력이다.. .라 하는 세상이다.

그게 무슨 죄인가?

 

하지만,

주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고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죄다.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분의 평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죄'다.

큰 죄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꼭 회개가 필요하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성령으로 깨끗해지는

정화의 능력이 필요하다.

 

  '구원에 대하여'라는 책을 보고 있다.

구원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원이 있다한다.

벌써 구원을 받은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닮기 위한 성화의 과정을 살아가야할 '현재의 구원' 받은 자로서의 윤리가 있다한다.

이제 곧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다.

그때의 온전한 구원, 즉 구원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죄'와 멀리해야 한다.

 

난,

아들들에게 탕자의 아버지의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

무조건 사랑을 해야 한다.

그리고는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들의 온전한 성장을 위해

난 남들에게 그들의 건재함을 알려야 한다.

아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리라.

사랑하리라.

 

주여.

 

 

적용

 

1.  비판을 금한다.

 

2. 회개한다.

 알면서 짓는 죄는 더 무섭다.

 얼른 얼른 회개한다.

 

3. 이해하고 가만히 있겠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아들 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나는 어렸을 적 어떠했던가 생각해 본다.

 

4. 성경 일곱 장 읽으리라.

 

5. 탕자의 아버지 입장을 묵상한다. 

 아들은 탕자는 아니다.

 더구나 그렇다면 쉽다.

 

 

 

 

 

 

기도

 

주님.

산다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요.

주님

죄는 어찌 이리 강하게 달라 붙는지요.

주여.

당신의 명령을 안다는 입장이 어찌 이리 무거운지요.

몰랐다면 고민조차 없고 죄가 덜 죄가 될 것을...

 주님.

눈을 뜨고 쳐다보면

왜이리 보이는 죄들이 많은지요.

주여.

내 속을 돌아보면 왜 난 내 죄는 안보이는지요?

주여

늘 주님의 뜻대로 살길 소원합니다.

주여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모두를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여

당신의 뜻에 어긋난 것은 생각도 하지 않게 하소서.

주여.

죄가 달콤히 속삭이고

죄가 날 흔들어도

주님

주님 뜻대로 날 잡으소서.

말씀이 힘이되고

성령이 운행하셔서

절 죄로부터 잡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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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방황할 때)

 

 

주여 이 죄인이 - 신상옥 

1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2
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 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의지할 것 없는 이 몸 위로 받기 원합니다


3
이 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 들으셨네
못자국난 사랑의 손 나를 어루만지셨네
예수여 이 죄인이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 내주여  나 이제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4
내 모든 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오
내 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해 바칩니다.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주님것을 내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금은보화 자녀들 까지 주님것을 내것이라
아버지여 철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사명 맡긴재물 주를 위해 쓰렵니다 
 천한이몸 내것이라고 주의 일을 멀리 했네
 주신이도 주님이시오 쓰신이도 주님이라
 아버지여 불충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유혹 다멀리하고 주의 일만 하렵니다


주님사랑 받기만 하고 감사할줄 몰랐었네
주님말씀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못했었네
아버지여 연약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명령 순종하면서 주를 위해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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