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는 진정[살전2:1-12] 본문
2.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하나님을 힘입어'
그렇다 .
오직 하나님의 힘 밖에 없다.
갖은 노력을 해보았으나 내 힘으로는 승리 불가다.
전혀...
그런데 전제가 있다.
'복음'을 전함...이 전제가 됨이 결국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나.
내 부족한 부분을
주님의 형상대로 완성시키려
그게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많이힘써 왔다 .
정말이다.
내 .. 급한 분(그것 뿐이랴...ㅠ.ㅠ;).. 등으로는
전혀 허락되어진 그 어떤 것도 누릴 만한 ,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르기에는 역부족으로 생각하고
그리해왔다.
하지만.. 그 결국의 그것 조차도
내 허락되어진 주님 안에서의 경험을
그들에게 나누어줌이 포함되어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내 부족함을 나누는..
그래서 난... 이 블로그의 목적이
내 매일의 신앙의 결단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어느 누구는 주님의 살아계심을 같이 느끼어
그 안에 복음이 들어가고
더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계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이 일상에서
오늘은 조금 더 '복음'을 전함에 대하여
신경 써야할 듯 하다.
전도.. 말이다.
4.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그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로 인하여
8.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내 삶이
더 '기뻐함'되기를 원한다 .
오늘 그렇다 .
세상에
가장 기쁜게 '복음' 전하는 일이고
그러함으로 내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임재감으로 인한 기쁨.. 이다.
그게 행복이고
그게 인생의 목표가 됨..
그게.. 진정 잘 사는 길이다.
나..
오늘
진정
주님을 증거하는 자 되길 원한다.
주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바빠서도
내 속의 부대낌으로도
다른 재미로도
주님을 전함,
주님의 살아계심
주님을 기뻐하시게 함
그러함으로 내가 더 기뻐짐의
당연하지만 반드시해야할 일을 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여.
이제..
조금 더 ..
어제보다는 더 주님을 기뻐하게 하시게 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개중의 일부라도 주님 영접할 계기가 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여.
막아서는 여러 저항들.. 없애소서.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묵상#1 (2011.06.09)
매일 이렇게
주여
매일의 삶이
찬양의 삶이 되게 하소서
매일 매일이
주의 바라보심을 느끼며 사는
그런 삶 되게 하소서
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내가 어떻게 해서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어차피 인생의 의미는
아무리 세상을 돌아보고 아무리 물어보고 아무리 책을 보아도
정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삶이 그리 재미가 없었다.
어려서 부터 그랬다.
그리 흥미 있는 것이 없었다.
또래 친구들이 하는 것.. 다 유치해 보였고
경쟁을 위해 허걱허걱 하는 사람들이 다 유치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내 육신의 젊음은 '호승심'이 있고
특별히도 아버지대로 부터 물려 받은 육신적 본능의 세기는 강하여 ㅜ.ㅜ;;
그 재미없는 일에 한편으로는 끌려 들어가는 그 갈등 사이에서
난 젊음이 혼란스러웠다.
세상에 그리 흥미없어 하는 성향은 지금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으나
육신이 이제는 젊음의 끓는 피가 줄어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단순한 ' 말초적 재미'에만 눈이 갈수 밖에 없었지만
도덕적인 한계는 날 매사에 힘이 들게 했었다.
쉽게 말해 내 삶은 ' 갈등덩어리', '재미없는 삶'의 패턴이었다.
솔직히.......ㅜ.ㅜ;
그러던 어느 순간,
마치 번개가 번쩍이며 세상이 밝아지듯이
예수님은 첫사랑으로 다가오셨고
하나님은 나의 어떤 면을 기뻐 보셨던지
'말씀'이 하나님이신 ,
그 하나님의 평강으로 날 채우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인생의 목표가 점차로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대단한 지적능력의 소유자들이나
나름 건강한 교육을 받은 매력적인 인물들이
'도'라고 생각되는 '지적인 깨달음'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에게는..
난.. 여러 생각들이 많이 충돌하는 말 그대로 복잡한 사람이었고
그러한 다양한 좋은 생각과 더불어 다양한 생각의 교차는
나로 하여금 순간적인 'insight'로 지적 깨달음을 가졌을 지라도
그것을 유지하기에는 영적인 에너지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나에게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의 누리는 평강',
성령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교통되어지는 은혜,
말씀 순종할 때 다가오는
그 영적 지평의 순간적 넓어짐..
그로 인한 내 상식의 이해를 넘어서는
감정적인 평안함의 되풀이..
이러한 체험이 쌓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난 확실한 인생의 목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그 목표는 내 의지가 아니고 내 노력이 아니라
철저히도 '피동적이고' '타력적인 ' 결과라는 것이다.
깨달은 것이 아니고
깨달아 진 것이다.
그것은 진리이고 진실일 것이라는 확신.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란 것이다.
그 기쁘게 하시는 일을 내 일상의 모든 것을 통하여
찬양드리듯 몸으로 노래로 묵상으로 기도로 삶으로 드리는 것이다.
'아멘'
'아멘이지 않는가?'
오늘 '사도 바울 ' 께서 이리 선언하신다.
' 이와 같이 말함은 ~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
그렇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고 말함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 한다.
오늘 내가 할 일이다.
한 마디라도 주님을 전하자 .
복음을 전하자 .
그리 함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그런데 마음에 부담이 있다.
아침에 바빳다.
수술을 마치고 월요 모임의 찬양 악보를 준비하고 나니 지금 이 시간이다.
이제 묵상을 다시 잡아 드니 시간이 다섯시 다 되어 간다.
하루가 마무리 되어가는 이 시간에 새삼 복음.. ?
누구에게..
내 인생의 목적을 매일매일 이루어 드려 감이 방법에 있어서 참 쉽다.
이전처럼 괜히 흔들흔들... 신기루처럼 헷갈릴 일이 없다.
말씀을 좇으면 된다.
발에 비추시는 등을 보고..
그러기에 남은 시간 전도를 하는 노력을 하면된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라신다.
아침에 이 구절이 좋았다.
내 속을 한번 들여다 보았다.
죄가 많은 자다. .
맞다.
고치지 못하는..
그런데 깨달아 지는 바가 있다.
' 행동'은 회개하면 된다.
' 어쩌지 못하는 내 깊은 속의 순간적 죄성'은 꼭 내가 아닐 수있다는 점이다
그것..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다 아신다.
그러기에 난 내 어리석은 죄에 대하여
'그 죄적인 행동은 회개하되 나 자신은 사랑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
어차피 내 죄를 생산해내는 내 속의 문제는
주님이 다 감찰하고 계실 것을..
이런 나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은 어찌되었든
예수님이 날 그토록 사랑하심임을..
나를 무시하고 나의 죄를 빌어 나에게 혐오함은
주님의 뜻이 아니심을 안다.
이제 오늘 하루 이래야 한다.
'날 사랑한다.
'나의 죄는 그 행실을 미워하고 주님께 내려 놓는다.
' 전도'의 말을 한다.
매사에 주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면
세상... 이 허무한 그림자의 세상에서 모두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찌 살았을까.. 참으로 감사한 하루다.
적용
1. 성경 세장 읽는다.
2. 당직이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준비하겠다.
3. 복음을 전하자.
예수님은 생명이다.
주님은 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다.
그 분을 아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다.
남들에게도 전하자.
4. 기뻐하자.
주님이 늘 나를 보고 계신다.
날 다아신다.
나에겐 '선' 만이 존재한다.
주님이 다 아시지 않던가?
기도
주님
놀라우신 내 하나님.
내 마음을 다 아시는 하나님.
평생을 겪어오는 내 어려움을 아시는 주님.
희망없고 소망없던 세상의 삶에 소망과 진리로 다가오신 주님.
내 생명의 원리이신 주님.
날 이끄시고 붙드시고 매일을 끌어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내 마음을 주님 앞에 다시 내려놓습니다.
주여 .
인도하시옵소서.
오늘 하루 몇시간 남지 않은 늦은 시간이지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일말의 노력이라도 하게 하소서.
감찰하시는 내 하나님.
내 부모님.
내 아내.
내 자식들...
내 아는 모든 분들.. 그들에게도 그런 의미가 되소서.
인생의 의미를 그들이 주안에서
뚜렷이 불을 보듯
저처럼 알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께 영광드리는 매일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 묵상 #2 (2011.06.16)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
고난의 시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렇지만
힘듦 중에도
아름다움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소서
순백의 꽃을 피워 냈기에
그리 되었음도
이해하게하소서
고난 가운데 어우러진
청초함 임도
기억하게 하소서
이 모든 것
주님의 뜻이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는 것.
무엇이 있을까?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 주님이 나에게 말하신 것'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이 또 무엇일까?
기도원에 가끔은 갔어도 예배는 참석하지 않은 게 대 부분이다.
어제는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예배에 참석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강하게 들어
운동하는 거 포기하는 대신 억지로 일찍 가서 자리에 앉았다.
J목사님의 설교는 처음부터 나를 위해 하시는 거 같이
강과 약을 반복하면서
리드믹하게 그 분 특유의 시적인 어휘구사로
내 영혼을 마구 파고 들어오셨다.
할렐루야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의 설교는 '순종'에 대한 것으로
열왕기하의 5장 '나아만' 장군에 대한 것으로
그 분이 엘리사의 내다보지도 않는 조금은 세상적으로 무시당한 것 같은,
그러면서 너무도 평이한 강에 몸을 일곱번 씻음을 요구함에
거부반응을 보이려 하자
하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치유를 받는 예화다.
너무도 평이한 이야기에
순종을 명쾌하게 정의하신다.
'순종'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되는 것은
그 때의 방법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순종한다는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것 아니던가?
그러나 일상에서 적용을 할 때 우리는 어떻던가?
예수님이 진흙을 침에 으깨어 소경의 눈에 바른 후 실로암 연못에 씻으라 할 때
씻은 후 나으니 실로암 연못에 씻으면 다 낫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나아만의 목욕처럼 그 강가에 목욕하는 방법 만을 보게 되는 것 아니던가?
그런데 그게 진실이던가?
'순종'하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순종으로 인하여 기적들이 일상처럼 일어났던 일들이 왜 잊혀졌던가?
목사님은 명쾌하게 정리하신다.
' 남의 눈을 의식함'이란 것이다.
예를 드셨다.
'의사 부부'가 쌍둥이 임신 후 조산하고
두 아이가 각각 눈과 귀가 멀 위험에 쳐하자 기도원에 올라왔지만
고백하는 말 중에
'솔직히 수치를 보고 따지는 제 직업 상 믿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 했단다 .
맞지 않는가?
어느새 내 직업이 , 내 위상이 ,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로...보아
순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믿음은 벌써 바닥에 쳐 박혀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순수한 순종으로 인하여 얻어진
그 놀라운 기적의 간증들은 잊혀져 버리고 만 것이다.
오늘..
전혀 말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기억하지 못하느냐"는 말씀 만 눈에 들어온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순종'하지 못하는 매일로 바뀐 것은 무엇인가?
신앙인의 형태는 띄고 있지만 신앙인의 모습은 하나도 유지하지 못하게 할
위험성이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이던가?
보혈 찬송을 불러 본다.
괜한 답답함만 있다.
그 곡조의 옛스럼이 아무 감흥이 없다.
괜히 부딪겨 오는 게 있다.
그래서 힘없이 찬양을 하고 멈추었다.
'십자가' 사건은 벌써 내 속에서는 잊혀진 오래된 옛날 이야기로 분류되어 버리지는 않았던가?
그렇다면 잊혀진 것은 '예수님의 그 사랑' 아니던가?
간증을 기억하는가?
옛날 뜨거울 때 그랬었어.. 하는 이야기 수준인가?
남들에게 전도하려 할 때 내 잘난 이야기 속의 흐름의 스토리에 지나진 않던가?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낸 그 수많은 살아있는 증거는 또 어떤가?
어려운 결단을 통하여
말씀이 살아 있는 듯 역사하고
내 속은 놀라운 '평강'으로 차여지고
내 주위가 이전의 어두움과는 상관없이
갑자기 영화 속의 '회색톤'의 어두움에서 갑자기 '칼라'로 변하듯
희망과 소망과 기쁨으로 들어차던
얼마 지나지 않았던 그 기억들이 벌써 잊혀져 버리지 않았던가?
오늘..
그렇다면 기억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혼자서 되지 않는다면 '성령'께 간구해서라도
기억해내고 돌려 놓아야 할 기억들은 무엇인가?
우선 '십자가 사랑' , '구원의 예수님' 의 살아계심에 대한 것을 기억해 내야 한다.
내 아버지 하나님,
내 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기억해내야 한다.
둘째, 간증으로 임하셨던 나의 하나님을 기억해 내야 한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셋째, 말씀 가운데 이끌어 주시는 '내 평생의 목표'를 기억해내야 한다.
넷째, 오늘 내 주위에 펼쳐야할 내 소명인
주위를 사랑하고 이해해야 하는 내 삶의 목표를
다시한번 기억해내야 한다.
다섯째.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베푼 선,
작은 호의,
그들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있지 못할 그런 당연한 도움........
주여
도우소서.
저 그리하게 도우소서..
저에게 그리도 가까이 해주시고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그 섬세함을 기억해내게 그리하소서.
날 위해 죽음과 그 수치와 고난을 감내하신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예수님이 날 위해 그리도 주시려 하시는
구원의 본질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고
나에게 주어진 이 인생의 소명을 기억하게 하소서.
왜 이 엉터리 같은 자를 구원하여 주셨는 지 잊지 말게 하소서.
날 통하여 주님 받으실 영광을 기억하게 하시사
절 순종하는 자로 바꾸소서.
주님..
간증거리를 기억하게 하소서.
그 시기에 함께 하셨던 성령의 운행을 기억하게 하소서.
기억하게 하셔서
다시한번 승리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과거묵상#3 (2014.07.02)
오직 우리 하나님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내 전부를
우리 하나님께 힘입어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나 서 있을지라도
내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이제
믿어 의심치 않으려 합니다
또 이제 어떻게 되더라도
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임을
기뻐 고백합니다
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내가 오직 하나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 오고 또 살아 갑니다
비록 내 삶에, 내 걸어온 족적에
그리 순탄치는 않았으나
그래도 돌아보니
모두 주의 은혜를 힘입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지금까지 제게 주신 많은 은혜와 사랑 가운데
제가 스스로 가장 대견한 것은
고난과 능욕
많은 싸움의 싸움도
모두 주님의 뜻 가운데 였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참..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합니다.
4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주여.
이제 더욱 바라옵기는
오직 내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
나를 옳게 여기시는 하나님이 계심 만이
내 모든 관심의 촛점이 되길 바랍니다.
더욱 바라옵기는
이제 그 관심의 영역이
내 안, 내 속에서만 벗어나
내 주위와
더 넓게
균형잡힌 믿음과 인격과 성화된 영혼의 모습으로
진정한 복음의 참의미를
세상에 전파하는
그런 자되길 바라나이다.
오직 내 관심
오직 내 살아가는 이유
그 의미의 진정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림임을
내 영혼 깊숙이 인정하게 하소서.
그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 만 불러도
내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
성령의 온전한 전율로 채우심으로
그리 되게 하소서.
하나님 영의 근처에만 가도
하나님 이름만 불러도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는
그런 '진정한 ' 진리의 현상들을
이 일상에서 체험되고 채워지게 하소서.
내 주 예수여.
아직도 부족한
내 안의 버거운 오동작들.
주여
이제 조금의 기다려 주심으로
바뀌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주님을 힘입어
주님의 옳게 여기심으로
오직 주님 만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오직 하나님으로만 기쁜
주하인을 기대하고
내 자식, 내 식구, 내 주변을 기대합니다.
오직 우주의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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