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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나는 이렇게(애2:10-17)

주하인 2006. 3. 14. 11:16

(예레미야 애가2:10-2:17)  
 

 

10 처녀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

   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좀더 어르신께서는 엄숙해 보이지요? ㅎㅎ)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엄숙하게 회개의 모습을 취하고는 있지만 냉랭하다.  

 

 

 

 

11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어린 아이들은 천사같다.

 

 가끔 엄마 따라온 어린 아이들이 귀여워서 안아주면 내 볼에 뽀뽀를 쪽하고 가슴에 두손을 모으고 큰소리로 '안냐세요~'하고 뒤도 안돌아 보고 진료실 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럴 때 난 넋을 잃고 웃는다.

 

 저런 모습이 모여서 천국을 이룰 것이다..라는 생각이 미치면 가히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이 내면의 경직됨을 버려야 할까 생각하는 생각에 잠시 잠기기도 한다.

 이런 천사같은 아이들이  길거리에 어지러워 쓰러져 있다니 이런 비참한 비유가 어디있는가?

 

그럼에도 느끼지 못하고 외형만 추구하는 오래 믿고 습관화되어 있으며 정형화된, 믿는 듯한 모습만 취하고 있는 우리들이여...

 

 

 

 

1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안타까움은 절절하다.

안절 부절 못하며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며 혼자 소리소리 지르고 땅을 쳐다보고 위를 쳐다보고 뒷짐지고 빙빙돌며 절규하는 사람 같은 모습이다.

 

 얼마나 절절한 안타까움 인지.... 

 

 이리 되어야 한다.

남들의 아픔에 이렇게 안타까울 마음이 생겨야 한다.

내 지체의 고통에 같이 울어야 한다.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

   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이 모든 것이 '어리석은 묵시' 탓이란다.

깨어 있지 못하고 백성들의 입에 달고, 귀에 듣기만 그럴 듯한 소리만 하여서 '죄악'을 회개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로잡힌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하게 함이다.

 

 입에 쓴약이 보약이란 옛말이 새삼스럽다.

 

편하고 좋은 것만 찾다가 오는 결과가 어떤가?

 

 

15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패망이다.

손가락질이다.

비웃음이다.

......

 

 

 

 

 

 

 이주 째, 본원에서 아침 큐티를 하고 있다.

여성병원과는 달리 이쪽은 '성서 유니온'의 " 매일 성경"으로 큐티를 하고 있다.

 오늘은 마태복음  20:29~34 의 '두 소경거지'가 큰 무리와 더불어 지나가는 예수님을 소리소리 질러 불러 예수님께 은혜를 받은 후 눈을 뜨고 주님을 쫓아가는 장면이 었다.

 

 얼마나 깨어 있었길래 그 큰무리의 눈부라림을 물리치고 예수님께 처절히 매달렸던가, 그리고 그 들의 강압이 현실적으로 버텨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눈뜨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 그 Want 를 끝까지 밝혔던 용기가 가슴에 밀려 들어왔다. 

 

 반면에 우리는 얼마나 호강을 하고 있는가?

멋진 장소, 좋은 음악 , 부드러운 음성의 말씀전달...

또한,  대형교회, 극장식 의자,  재미있고 휘항 찬란한 프로그램,  TV, 인터넷....

얼마든지 장소 구해없이 가장 편한 시간 대에 마음대로 복음을 접할 수있다.

 

 그러나,

그 복음이 과연 모두 올바른 메시지일까?

아니 메시지를 쫓아 그 많은 무리 들이 실제적인 예수님을 좇아 다녔어도 모두가 주님의 바라시는 바 구원을 얻고 기적을 행함 받았던가?

 

감각에 만족하는 소리.

조금이라도 육신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소리.

 

그런 소리만 받지 않던가?

 

굳이 금욕을 지향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할 필요는 있다.

비록 그 소리가 큰 무리의 횡포처럼 들려도

눈 앞이 보이지 않고 오직 귀에 의존하면서 사는 장님들을 방해하는 혼란이 있을지라도

그 속에 파묻혀 미세하게 들리는 예수님의 소리의 방향을 찾아 귀를 쫑긋거리는 그 장님들의 절실함이 필요하다.

 

 이제 일생에 한번 찾아오기 힘들지도 모를

헤어지면 다시는 그들 앞에 나타나실지도 모를

예수님의 행운을 놓치기 두려워하며 절절하게 외쳐대는 그들 두 장님 처럼

세속의 모든 현란한 유혹과

눈을 휘황하게 하고

귀를 가리는 육신의 정욕적 소리를 헤치고

진심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가끔 무섭고 두렵고 외롭고 힘들어도 그것이 진리이면 외쳐야 한다.

 

그래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거짓 경고와 미혹"이란 주님의 질책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아침 큐티를 하고

날마다 주님 말씀을 사모할 감성을 허락받고

한번이라도 더 세상 재미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기뻐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경계시키시는 말씀이다.

 

 

 

 

 적용

 

1. 주님 앞에 옳은 일이라 생각되면 주위의 손가락질이나 비웃음에도 증거하여야 한다.

2. 이 나라와 내 이웃의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

 

3. 횡행하는 세속문화에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한다.

 

4. 회개한다.

 

 

 

 

기도

 

주님.

오늘은 특별히 저희의 모습을 돌아다 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겉으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는 있으나

이웃을 위하여 풍성한 눈물을 가지지 못하고

매일 같이 돌아보지 못한 저속한 영혼의 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비록

남들에게 생경하게 보일 수 있고

손가락질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어도

그게 진실이고

그게 주님이 좋아하셔서

우리의 가슴에

따사로운 기쁨이 도는 일이라면

지체치 않고 행할 수 있게 하소서.

 

그래서

곧 오실 주님이

네가 거짓 메시지와 헛된 말 장난을 하였구나라고

질책하실 때

얼굴 붉히지 않도록 하여 주소서.

 

늘 회개하는 삶을 허락하소서.

늘 남을 돌아보는 마음을 주소서.

늘 죄를 미워하는 기본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과 똑같이 사탄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F.F.브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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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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