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는 바라보고 주님은 들으시고[미7:1-13] 본문
7.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오직.
오직.. 이 단어가 참 좋다.
계속 시편 이후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 어려운 세상, 가치가 혼돈이 심한 이 세상에서 '오~~직 ~~!!' 주님 만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당연히도...
그 당연히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오직' 주님만 바라는 것은
믿음이 깊어지려는 모든 자들의 '로망'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택받은 소수.
그들에게도 수없이 많은 매일의 '영적 전쟁'을 통하여 쌓아진
승리의 업적이 굳어져
그의 영혼의 성장이 이루어질 때야 가능한 것이다.
난.. 오직 '여호와를 우러러 본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우러러 볼 분'이 당연하시다.
눈을 감고 내 영혼 속의 주님, 내 앞에 계시고 내 우편에 계신 주님을 만나 지만
내 영혼의 눈은 늘 그 분을 우러러 보는 것이 맞다.
우러러 본다..는 표현이 진실하게 실제의 느낌으로 다가옴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깨달음이다.
문자적이해에서 넘어서 큰 글자로 보이는 감동은
말씀이 하나님으로 임하시는 현상이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바라본다'
당연히도 그 하나님이 실제하여 다가오실 때,
그 분 하나님께 나도 모르게 온 마음으로 수그리고 존경의 감동으로 바라볼 때
그 분은 나를 구원하신다.
구원은 십자가 구원의 그것을 넘어서는 매일의 구원을 의미한다.
주님을 믿는 다면서도 다가오는 이 자괴감,
어이없는 실망감,
변치않는 환경에 대하여 힘있지 못하는 삶의 현상에 대한 좌절감... 등으로 부터
구원하시어 매일 심령천국의 삶.. 평강이 늘 자신을 사로잡도록 회복시키는,
매일 부활시키시는 그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구원의 하나님 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게 오늘 내가 할 일이고
그렇게 결심하고 선택할때 위의 구원을 주신다는 이야기시다.
예언이시고 확증이시다.
난.. 말씀 묵상과 기도와 삶의 적용 가운데
아주 자주 그런 체험을 실제화 시키고 있다.
8.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사순절.
괜한 걱정, 괜한 외로움.... 이 스친다.
스친다는 표현이 맞다.
이전에 많은 시간을 잡혀 있던 것이 이제는 그나마 스친다는 표현으로 줄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 속에서
심령 천국의 흔적 가운데 지내는 시간이 아주 많이 있어 졌다는 이야기다.
이 괜한 옛 구습의 흔적들이 그러는 듯하다.
'그것 봐라... 네가.. '
그것을주님이 이리 읽어주신다.
내 감정을 읽어주신다.
공감하시는 것이시다.
'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라'
나의 대적은 누구인가?
사단이 아닐것이던가?
옛 상처를 건드리는 기억을 가장한..
나로 하여금 푹 ~ 가라앉게 만들려는 ..
하지만 주님은 단언하시고 호통치신다.
'기뻐하지 말라.
너희의 오산이다. '
'나는 엎드러질 지라도 일어날 것이다'
때로 그 어려움에 푹 빠지면 홀로 '외톨이'된 듯하기도
혼자만 '패배자' 된 듯도
세상의 모든 흐름으로 부터 도태된 듯 하기도 하게 착각시키려 한다.
엎드러진 것 같아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엎어진 것 같아도 일어날 것이다. ..라신다.
그것은 그들에게도 꾸짖는 말씀이기도 하시지만
나에게는 일으켜 세우시는 위로의 표현이시기도 하다.
'어두운데 앉을 지라도 '
앉을지라도 라신다.
어두운데 있는 듯한 감정이,
아니 어쩌면 삶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것이 실제일 지라도...
내 상황을 아시는 주님이시라신다.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어두운데서 빛이 더 밝게 느껴진다.
주님은 나의 빛이시다.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렇다.
힘이 들때 힘이 든것에 집중하면 한없는 나락에 빠진다.
그렇지만 눈을 들어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면 다른 것이 보인다.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면 오히려 힘이 생기고 행복해진다.
그 어려움 뒤에 임하시는 하나님이 날 귀 기울이시고 계심을 알수 있기에 그렇다.
그 분의 그 어려움을 허락하신 뜻이 알아지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위하여 성도로 선택받았다고 까지 성경에 나오지 않던가?
어려움은 필수고 필연이다.
그를 통하여 더 큰 은혜를 허락받아
연단과정을 통하여 인격의 불순물, 영혼의 찌기가 제거되고
겸허하게 될 때 마침내 주실 복을 허락 받기 위함이다.
비단,, 그 뿐이런가?
그 마침내를 위하여 무조건 참게 하신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힘을 주시고 빛을 주시어
엎드러질 것 같은데서도 손내밀어 일어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곤란이 넘치는 곳에 위로가 더 크게 넘친다'셨다.
그 분의 위로로
이 버거운 인생을 소망있게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
매일이 '행복'해진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그리된다.
감사하다.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매일이 '소망'이다.
매일이 부활이다.
그게 감사하고 힘이 솟게 한다.
주님.
자꾸만 원치 않는 가슴의 아픔이 밀고 오려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 구멍이 커지려 하고 넓어지려는 요동을 느낍니다.
주님.
참으로 다행인 것은
제가 주님을 몰랐을 때라면 그 구멍의 큼과 허전함에 허우적 거리다가
육신의 어느 부분은 고장이 났을 지 모르고
마음이 깊은 나락 속에 있을 거를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
빛이신 주님이 매일 말씀으로 저를 붙드시고
성령으로 제 가슴에 소망을 불어 넣어 주셔서
오히려 행복하고 감사함으로 바꾸어지게 함을 느끼며 삽니다.
감사하신 주님.
제가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붙들고
눈을 감고 성전의 하나님을 향하여 머리를 우러르고 마음을 높이려 할 때
주님을 깊이 바라보려 할 때
내 곁에서 내 안에서 내 위에서 나를 귀기울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느끼기에 그렇습니다 .
그 주님은 다양하게 저로 느끼게 하십니다.
때로는 강력한 깨달음으로
때로는 아랫배와 가슴부위에 꺼지지 않는 따사로운 느낌으로
눈 주위에 어리는 물기로 그리 느끼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 영혼에 소망이 소록소록 차오르게 하십니다.
그러면 어두운데 있는 것 같던 제 마음이 빛으로 가득찹니다.
엎어져 힘이 없이 쓰러져 있는 것 같던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으로 넘치려던 제 마음이
어느새 행복함으로 소록소록 넘치려 합니다.
이 놀라운 경험들.
도저히 제 작은 머리로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지만
제 마음 깊숙이 부터
삶의 실제적 현상들까지 변화가 되어가는 것을
저는 예수님 영접한 십수년 전부터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별로 걱정이 없어집니다.
주님...
사순절이라서인지 오래된 걱정들이 크기를 불리며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시는 주님이 이렇게 말씀으로 깨우치십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냅니다.
미래를 맡깁니다.
현실을 의지합니다.
과거를 지웁니다.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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