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나는 매일 죽노라(고전15:20-34) 본문
(고전15:20-34)
이들이
아름다운것은
자신의 이유 만이 아니다
이슬과 어우러진
흰백의
겸손 탓이다
지난밤
그 차거운 고통을
견디어 낸 결과다
아
내가 죽어
주님의 영광 만
온전히
내 몸 통해
드러날 수 만 있다면
나 얼마나 좋을까
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어제..
식사 후 지인들과 담소를 마치고
손에 냉 카모마일 한잔을 들고 진료실로 향하는 순간,
응급실 앞에 아는 장로님이 안절 부절 못하고 계시다가
나를 보는 순간 반기신다.
담임 목사님 모친께서 위독하셔서 급히 병원에 모셔오셨단다.
'담임목사님'은 마침 M 교회에 예배인도로 나가셨고..
응급실에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진료를 부탁하는데
아는 분의 이름이 보인다.
그 밑에 MI ... 라 적혀 있다.
설마 아니겠지 하고 돌아온 후
오늘 아침에 출근하니 '그 분이 그 분'이 맞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인상 서글거리시는 그 분.
MI라면 Myocardial infarction으로 심근 경색.
중환자실에 전화를 해보니 '무사히 위기'는 지났지만
아직 두군데 혈관이 더 막혀있고
어제 시술중 한번 심정지가 왔었다 한다.
이구.........
죽었다 사신 분이시다.
회진하며 중환자실 들렀다.
멀쩡한 얼굴...
조금은 부은 듯하지만 성경도 읽구....
세월이 좋은 영향은 받았다.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려니
마음 한구석에서 짠~한 슬픔이 몰려오려 한다.
하나님의 마음이심을 알겠다.
내 마음도 그렇다.
우리 연배에 '죽음'은 그리 멀지 않음을 공감하나부다....
죽음.
그것 ....무섭고 두렵지만..
그래서 생각지 않고 싶지만
이렇게 '가까이 ' 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오늘 묵상이 '죽노라'다.
날마다 죽노라.. 다.
매일 매시 죽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자아의 죽음...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음이다.
'내 자존심'
'내 흔들리는 자아의 고통'을 맛봄이 죽음이다.
그렇게나 많이 내 일상에 펼쳐져 있는 '자존감의 상할 상황'..
자존감이 죽음은 참으로 아프다.
그러고 싶지 않다.
나.. 의 자존심이 무너짐은 온 우주가 무너지는 고통과 비슷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남의 위에 서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이다.
특별히 많이 가진 사람.. 일 수록 더하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일 수록 더하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역치가 낮아져 같은 자극에도 더 아프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가지려 하고 경쟁에 이기려 한다.
그러기에 비교할 것은 점점 더 늘어나고
늘어나는 비교에 따라서
자존감이 죽기에 아픔은 더욱 늘어나고 커진다.
그러기에 자아가 죽는 것은 진짜 죽는 것 만큼이나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나.
자존심 하나로 버틴 사람.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댓가라도 불사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던........ㅜ.ㅜ;
자존심을 넘어서는 일이 벌어지면 급박히....
그러던 내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자존심의 굴레가 다 내 아픔 탓이었고
그것을 유지하려 몸부림 치는 것은
진정으로 강한 것이 아닌 약하지 않아 보이려는 몸부림이었음을
십자가에 달리시기 까지
침뱉으심도 , 머리를 갈기는 로마병정의 손길도,
자신을 받들던 군중의 표변함도.......인내하시면서
자신을 포기하시기 까지 내려 놓으신 것을 보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자존심을 못박는 것임과 비슷한 일임을 알아갔다.
그리고 말씀에서 약함이 강함이다.
매일 죽노라...........이러한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자존심.......
즉......자아를 존중하려는 마음.......을 죽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인생에 대한,
특별히 나에 대한 뜻이시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 ......내........가 약하여 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하나님 만의 뜻이
성령으로 내 안에서 운행하시어
단 하나도 주님의 뜻이
이 삶속에서 나를 통해 펼쳐지는데 지장이 없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인생을 살아가는 온전한 목표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런 앎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지 못했다.
대부분 표면 아래에서이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성질은 불뚝......하고 올라오고
비교에 의하여 내리 눌리는 어둠의 무게는 존재하고
내 자식들이 엄친아의 근처에도 가지 못함에 속상해 하는 등........
정말......내려 놓기 힘든 아픔들이 아직도 상존해 있음을 안다.
속상하다.
앎과 현실과의 괴리.
그 죽지 못하는 자아의
죽어야 하는 당위성을 알고도
삶속에 휘둘려 그러지 못함.........
죽어야 함......죽음.....은
실제로 너무도 당연하고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그러지 못했다.
그러는 나는....... 의도적으로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죽어야 하는 당위성을 안다.
그것........불가피 한것이다.
누구나 실제 죽듯이
누구도 자아의 죽음을 이루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볼 수 없다.
그러함은 주님 나라에 합당하지 못한 자다.
그런........인격적 결함.......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운행하지 못할 자가
어찌 천국을 향유하려 하던가?
예수십자가로 구원을 받았음은
자아의 죽음으로 천국을 향유할 자격만 부여 받았음일지도 모른다.
주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이상,
천국은 기정사실이되
이 땅에서 천국시민의 품성을 획득해 가야 하고
혹여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소천시
주님의 뜻가운데서
주님이 계획하신 대로의 어떠한 과정이 있지 않을까.......막연히 생각된다.
그 뜻대로는 주님의 가련해 하시는 안타까움에 의한 완전한 해결이시던가
일정기간의 숙려 기간은 필요치 않을까??...
상상이나 생각은 어떻든
이땅에 사는 동안 '온전한 자기 부인',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 예수님의 길을 따름..
'매일 자아가 죽어가는 ' 과정을 거침은 필수이다.
그게 인생의 온전한 이유이다.
어떤 환경.........높은 자리........낮은 자리.. 돈 많은 자.....없는 자....
선교의 선봉......선교의 자리에 있어보지 않음.........
의사........간호사........
그 어떤 자리라도 그 자리에서 삶속에서 '자아의 죽음'을 이루어야 한다.
매일 죽노라.
죽음은 너무 어려운 이름이다.
자아의 죽음이 그러할 수 있다.
다행이도..............!!
나...................
자존감이 감하다........
그 자존감이 강한 만큼 .........죽음을 경험함은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러기에 ........................
나...................................
더욱 ............................
주님께 의지해야 한다.
말씀을 더욱 붙들어야 한다.
고난은 유익이다.
약함이 강함이다.
주님.......의지할 때 그렇다.
오늘.......
내 자아의 죽음을 기뻐해 보리라.
적용
1. 어떤 죽음을 경험할까?
. 빠른 분노..... 인내하자.
. 급한 판단.........
. 좌절......
. 모든 아픔........................은 죽어야할 내 자아의 용틀임이다.
2. 매일 죽노라를 묵상하자.
죽음은 두려움이다.
죽음은 아픔이다.
죽음은 분리이기에 , 단절이기에 절망이다.
그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주님이 원하시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
성숙이 되기에 그렇다.
성령으로 도우시기에 믿고 그렇게 해야한다.
; 성질 나는 것......있어도 웃겠다.
; 속상해도 참겠다.
; 기뻐하겠다.
; 운전하면서 무조건 양보하겠다.
3. 내 죽음은 불신자 때와는 다르다.
주님이 계시다. (성령님)
주님의 명령이시다. ( 하나님)
주님이 모범을 보이셨다. (예수님 )
말씀에서 그리하시었다.
4. 말씀 세장 읽겠다.
기도
주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아가 자꾸 강해져 가는 기회를 느낍니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괜히 서운해지려는 것이
자아가 낮아지는 것을 싫어하려합니다.
그게 아마도 물리적 심리적 흐름일 듯 싶습니다.
저는 .. 주님도 아시듯이
자존심이 강합니다.
괜한..
그러기에 더욱 자존심이 깍이는 일이 아픕니다.
자아가 죽노라는 단어가 죽음 만큼이나 싫습니다.
주님.
그러나 주님 앞에 가기 위해서
인생을 마감하고 영원의 영생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이 명하시는 일을 기뻐하는 것 이외의
그 어떤 것도 필요없기에
그러한 상태가 은혜의 상태임을 알기에
자아가 죽는 명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제 자아는 매일 살아납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자꾸 강해지려 합니다.
주여.
제 서운함과
제 급한 분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으려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가 매일 죽노라.
그것이 내 자랑이노라..하시는 사도 바울님의 고백을
제가 취하길 바라시는 듯하니 그렇습니다.
주님.
절 도우소서.
성령으로 도우소서.
그게 제 자랑이 되게 하소서..
제가 죽어가고 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제 기쁨이 되게 하소서.
주여.
아오니... 받아 들이게 하소서.
주여.
십자가를 지셨으니 저도 같이 지는 당연한 마음의 강박을 허락하소서.
그게 제 간절한 바램이 되게 하소서.
아프나 기쁘게 하소서.
죽음이 두렵지 않게 하소서.
오히려 죽을 순간순간이 남들보다 더욱 많은 것을
기회로 기뻐하게 하소서.
제 주여.
저의 생각을 온전히 바꾸소서.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 자아가 죽음을 목도킬 원합니다.
주님..........
제 방향을 인도하소서.
어찌할줄 모르는 이 어이없는 자의 자아를 겸손으로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올 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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