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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향한 시선 몇가지 (막11:1-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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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향한 시선 몇가지 (막11:1-11)

주하인 2011. 4. 6. 09:44

제 11 장 ( Chapter 11, Mark )

 

  
 
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1) 나귀에 대한 일반적 시선

  나귀는 '고집이 세고 초췌하다. '

그러나 힘이 세고 서민적이다.

 나귀새끼.

더 작고 힘이 없고 볼품 없는..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

 나귀가 사고를 치거나 힘이 없어 위엄성과 위험성이 높은 상태 .

 

2) 나귀새끼의 시선

.  '나 같은 것을.. 이 고집불통이며 힘도 없는 ..나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 결론적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태우고 갔다.

 아마도 힘이 넘쳤을 것이다.

 예수님의 하반신이 그의 허리와 맞닿았을 때

 엄청난 에너지가 몰려옴을 느꼈을 것이다.

  상황과 아무 상관없는 경이로운 체험.

. 그의 낮은 자존감은 '할 수 있음'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할 수있는 '태울 일'에 대하여 완전한 검증을 거치게 되었다.

 하나님을 태움으로 가능한 일.

 시선의 변화.

 더구나 축제의 중심에 서 있게 되지 않았던가?

 예수님을 등에 실고...

 보배 담은 토기처럼.. ?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3) 제자들의 시선.

. 어이없으신 주님 예수님의 주문.

 자신들이 바라는 메시야는 '백마탄 왕자' 같은 모습이어야 하시는데...

. 그러함에도 나름 훈련이 되어 왔다.

 '주가 쓰시겠다'시니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주님의 뜻은 반드시 이유가 있으시다.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나귀새끼를 보았지만 '하나님 뜻 안에서의 나귀새끼'를 보았다.

 

  
 
6.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4) 주인의 시선

. 나귀는 재산이다.

  그러함에도 '주께서 쓰신다'니 드렸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 왜 하필이면 내것인가?

  왜 하필이면 보기 싫은 나귀새끼일까?

 그러한 물음도 '주께서 쓰신다'에 이유가 있으심으로 믿고

 허락을 해드렸다.

 .. 나귀, 더구나 새끼도 주님이 쓰실 때가 있으면 드려야지..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3-2) 제자들의 시선

비록 맘에 들지는 않지만 정성을 다해 주님께 올려 드려야지.

주님의 일에는 '내 생각'과 '내 감정'은 내려 놓아야 한다.

주님 일에는 '순종'과 '최선'을 다하는 기쁨의 봉사만 필요하다.

 

 주님의 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으시다.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6) 군중의 시선

초라한 예수님의 행색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호산나' 탄성을 받으실 만한 예수님 만이 보였다.

 

 . 군중의 심리에 긍정적 편승할 수 있는 상황이다.

  외적인 꾸밈은 그리 큰 영향을 안미치기도 한다.

  그 대상이 너무나 큰 '전설' 같은 존재일 시는..

 

군중은 '보길 원하는 것만 본다' .

군중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권위, 카리스마만 본다.

그들은 노새를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함은 미련한 일이다.

겸손과 겸허가 인격에 겸비되면 '감동'을 준다.

거기에 노새는 존재도 없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7) 예수님의 시선

. 겸손을 보이길 원하신다.

. 나귀 중에서도  새끼, 검증되지 않고 휘청거릴 그를 타심은

 약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이다.

. 아마 하나도 부끄러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 구약에 나타난- 을 수행함은 어떤 부끄러울 상황도 의미가 없다.

. 하나님은 '가난하고 약한 자'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가냘픈 다리에 힘을 주시는 자이시다.

 그들을 탔어도 그들은 그들의 힘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성령의 힘으로 움직인다.

 놀라운 에너지가 전신에 쏟아진다.

 거기에는 순종하고 믿는 것만 필요하다.

 

 

 나귀를 중심으로 한

여러 입장의 시선으로 묵상을 잠시 진행 해 보았다.

다르지만 공통 된 것.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시는 분' 이다.

너무 당연하지만 살면서 내 의지와 생각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되고 안되고를 판단하고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안되는 것은 ' 포기'하고 주님을 생각지도 않으려는

이 이중적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던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다.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가끔은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 선교사님들 처럼...

완전히 인생을 뒤집어 다 털고 나가는

그런 것 만을 '믿음'의 정형으로 생각하기에

어쩌면 '믿음' 소리에 더 주눅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처럼 일상에서 자식들과 아내와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어 있어 그러지 못하는 자들은

'믿음'이 없어서 방치되어 그럭저럭 구원이나 받고 살아가는

이류 인생이라 자조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힘없는 믿음이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럭저럭 ,

가끔 빌어도 될 만한 건수를 잡아서

그냥 '주여... 주시옵소서.'나

'주여... 용서핫소서.' 나 외치는...

 

 오늘 '나귀', 그것도 '새끼'와 그에 연루된

수많은 입장에서 묵상을 진행해 보았다.

나귀는 보기싫고

나귀 새끼는 더 힘이 없는

'백마'에 비하여 훨씬 폼이 덜나는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신다함을 본다.

하나님 안에서 '의미가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낀다.

갈렙 같은 용사도 중요하지만

나귀와 같은 자도 사용하신다.

 제자들의 시선도 느껴본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고

자신들의 바램과는 어쩌면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신

나귀를 선택함에도

하나님이시면 뜻이 있으시겠지.. 하며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여 마음을 올리는 모습을 본다.

 내 사상과 생각에 맞지 않는 상황이라도

'주님의 뜻'을 생각함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다.

 

 예수님을 만나면 힘이 돋는다.

예수님을 엎으면 보배로운 존재가 된다.

예수님을 실고 걷는 길은 '환호'의 길이 된다.

예수님을 위해 한걸음 내딛는 길은 '성령의 인도하시는' 길이 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 존재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의 일부분이 된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평강으로 채워진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삶이 변한다.

 

 그렇다.

온전히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러면 그곳이 어디든

어떤 삶을 살아도

어떤 상황이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주시는 사랑으로 인하여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다.

 

 

기도

 

주님.

귀하신 하나님.

놀라우신 주님.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낮고 적은 내 자존감은

때로는 날 ,

내 자식들을 ...

새끼 나귀처럼 적은 존재로

그리 생각하며 체념의 삶을 무기력하게 살아오게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만나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제 거기까지 이해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어떠한 부조리나 불합리한 상황도 쓰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부르시면

어떤 것도 순종할 마음이 조금은 더 생겼습니다.

주님. .. 그게 감사합니다.

그래도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겨갑니다.

주님..

그게 감사합니다.

더욱 깊은 믿음을 허락하소서.

아예.. 말씀이시면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기대를 허락하소서.

그래서 환호하는 '호산나' 소리 듣게 하소서.

 

주님.

이제 힘을 주실 줄 강력히 기대합니다.

연약한 다리지만 주님 앉으시면

강한 다리로 바뀔 줄 믿습니다.

주님 허락하시는 그 무궁한 에너지로

제 삶과 제 자식들의 삶

믿는 모든 자들의 삶을 채우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더 깊은 영감을 주소서.

주님 말씀 하시는 것을 더욱 잘 알아듣는 민감성 허락하소서.

주님 .

더욱 주님 말씀대로 준행하면 찾아올 평강의 놀라운 에너지를 기대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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