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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믿습니다(막10:23-31) 본문

신약 QT

그것도 믿습니다(막10:23-31)

주하인 2011. 4. 3. 09:03

제 10 장 ( Chapter 10, Mark )

 

 

 내 힘으로 안되는 일..

  하나님의 은혜로만 ~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느니라
  내 힘으로 안되는 것.

참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거치고 또 거친후

드디어 손 든후에야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어느새인가 다시 내 힘으로 무엇을 하려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랜다.

그 발견 조차 , 오랫동안 어딘지 모를 불편함에

마음이 무거워져 있음을 겨우 인식하고 깨닫게 된다.

어찌 이런가?

무엇이 문제이던가?

내 삶과

내 문제와

내 장래와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 놓지 못하고 있던가?

무엇이 두려워 그리도 무거운 짐을 다시 지고 있던가?

주님이 '다 ' 하실 수 있는데............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 하나님을 믿지 못함'은 혹 아니던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은근히 부정하고 있음은 아니던가?

아니.. 살아계심은 알아도 그 분이 날 사랑하심을 믿지 못함은 아니던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필요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던가?

그게 어찌 되었던 간에

모든 그러한 생각은 '불신'임에 다름없다.

이 어리석은..

 
 베드로는 분명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다.

그는 분명 예수님을 믿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예수님을 옳게 믿음은 아닌 듯 싶다.

그 분의 능력을 본것이지

그 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봄은 아닌 듯 싶다.

말은 그리하지만 그 깊은 마음에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내 구주로 보지 못함이 맞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미래의 영달의 도구로만 막연히 인식하고 있었다.

 

 '예수님을 좇되, 좇는 것이 아니었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면 난, 무엇을 믿는가?

'주님'을 믿는가?

주님이 주신 '복음'을 믿는가?

복음이란 무엇인가?

주님이 '나 만을 위하여', 오직 나의 죄를 위하여

하필이면 그 무궁한 우주의 이 지구에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못박아 구원하시려 내려오신

그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의 무거움을 위하여

'성령'을 주셔서

이 무거운 인생의 짐을 나눠지고 같이 가시려 하시는

이 온전한 '복음'을 위하여

세상에 오심을 믿던가?

그리하여 내 인생의 목표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위하고

그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살도록 하게 하심을 믿던가?

 또한, 그러함을 위한

나와 내 가진 모든 것을 버림이 내 의무이자 권리임을 믿던가?

 버림이 꼭 '희생 ' 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님을 믿던가?

백배나 더 이 땅에서 받을 수 있음을 믿던가?

그리고, 백배나 더 받기 위해 정말 믿음이 필요함을 믿던가?

반드시 주실 것임에도 

그것을 온전히 '믿는 믿음'이 부족해서 받지 못함을 믿던가?

'핍박을 겸하여'라는 말씀을 믿던가?

내 지금 힘든 것이 어쩌면 당연한 핍박임을 믿던가?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부족해서 임을 믿던가?

주님이 나를 위해서 그리 하심을 믿지 못함은 아니던가?

 영생을 주심을 믿던가?

 

 이 아침.

정말 '믿음'에 대하여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모든 것의 기본인 믿음.

그 믿음에서 나는 정말 부족함을 다시한 번 느낀다.

난, 말씀을 믿는다.

그러나, 깊숙한 곳에서는 아직 조금은 덜 .. 인듯싶다.

난 나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깊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난, 내가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야하는 존재임을 믿는다.

그럼에도 온전히 믿지 못한다.

난, 복음을 위하여 살아갈 존재임도 믿는다.

그러나, 종종 잊는다.

 백배 이땅에서 보응 받을 것을 믿지 못했다.

영생을 믿는다.

그러나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내 이런 고백이 혹여

많은 믿음이 뛰어난 분들에게 손가락질 위험이 있을 지 모르는 것을 감수하며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누구하나 매사 모든 일에 100% 온전히 믿는 자 있을까 생각하며

솔직히 들여다 보고 말한다.

100% 의 순도 있는 옳은 믿음.

단지 '기적'이나 은사나 이 땅에서 일부분의 축복을 믿는 믿음 말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믿음.

 지금 보이는 '베드로'의 저 수준을 넘어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후의 믿음.

그 믿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 걸릴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핍박이 옴이 너무도 당연함을 당연히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영생의 확신이 내 삶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고

그 영생의 에너지, 하나님의 보좌로 부터 흘러나오는

그 생명의 에너지가 내 영혼에 흐른다면

얼마나 생기가 용솟음칠까?

얼마나 평강의 기쁨이 폭죽 터지듯할까?

 

 

 현실을 돌아보면

난, 아직도 적은 자극에 흔들린다.

지난 월요일 부터 계속이다.

적은 자극 처럼 느껴지는 그리 적지 않은 자극이다.

실은..

그만해도 많은 발전임이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하지만

어쨋든 그 만성적인 자극은 나로 하여금 한번씩 와그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세상의 핍박이 ..당연함을 머리속으로 깨닫지만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 때는 당연하고는 너무 멀리 , 신음 소리가 나오려 한다.

이것... 믿음이 부족함이 아니던가?

내가 누구고..

내가 무엇을 바라고......살던가 돌아보니

난 어느새 세상에 관심이 깊이 가있고

나의 정체는 어느새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찾아보아도 뿌연 안개에 가린듯하다.

내가 '주 예수'를 믿고

주 예수의 복음을 위해 보내진 자이며

내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 임을 과연 믿던가?

정말 믿던가?

 갑자기 아들이 제대하고 나온 후에 대하여 걱정이 나오려 한다.

난 ,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던가?

어찌 하나님께 다 내려 놓지 못하고

아직도 그럴듯한 세상의 원리에 맞추어 걱정하고 고민하던가?

왜 그런가?

그러면서도 내가 주님을 믿는다 할 수 있던가?

 

 주님을 믿는 다면 그러면 어찌해야 하던가?

이처럼 단순한 사실에서도

일상에 맞추어 하나님의 원리대로 믿고 살려면

많은 적용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머리가 복작거리고

믿음은 어느새 멀리 사라지고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나오는 하나님이고

삶은 삶대로 따로따로 구분하여 사는

세상의 대부분의 ' 이분론적' 믿음을 가지고 사는

그런 자가 되어 버리지 않던가?
베드로가 주님을 위하여 가정과 모든 것을 버렸지만

실은 이 땅에서 자신의 영달을 위함 인

이 이분론적 믿음과 똑같지 않던가?

 

 우선 '성령'의 임재하여 주심을 믿어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여 주심을 다시 한번 믿어야 한다.

그러기에 말씀의 묵상과 기도를 더욱 배가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인도하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자꾸 물어야 한다.

묻는 기도를 더 해야 한다.

그리고는 믿음 달라고 기도해야한다.

성령께서 그리하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내려놓고 포기한 만큼

백배는 더 주실 것임도 믿어야 한다.

그런 선택된 믿음의 삶은

세상의 멸시를 받을 것이 당연함을 인정해야 한다.

내 멸시 받을 수 있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옴을 믿어 야 한다.

그 멸시의 손가락질도 아픔 보다는 당연한 믿음의 결과임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내 인생이 자유로와 질 것임을 믿어야 한다.

기도하고 받는 '곧 받게 될' 영생의 에너지,

그 충만한 성령의 생수, 생기가

내 삶을 이끌어갈 에너지가 됨을 믿어야 한다.

 

참 어렵지만 믿음을 선택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선택한다 선언해야 한다.

 

오늘 주일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날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기뻐하게 될 것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날 사랑하시어 이땅에 오시어

날 사랑하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을 믿습니다.

당신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전 구원을 받고

영생의 에너지와 이땅의 백배의 축복까지

다 예정되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주님.

저 주님이 그처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전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앞으로 더욱 더 열심히 살게 될 것임도 믿습니다.

믿음을 노력하오니

성령으로 도우실 것도 믿습니다.

제 삶이 영생으로 ,

축복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유로와 질 것임도 믿습니다.

제 자식들.

제 가족.

저에게 주신 제 짐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세상의 어두운 소리 보다는

희망과 소망과 주님께 맡김으로 따라가려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강력히 믿습니다.

그리 선언하나이다.

주님 절 도우소서.

오늘, 주님의 날

주님께 영광 올립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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