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끝까지 바라보실 내 성벽[사49:14-50:3] 본문
가끔
이전처럼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성벽이 나를 가로막는 것같이
그런 답답함과 외로움이
날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이 그러십니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모여 다 네게로 올 것이다
그리고 보니
성벽 위에도
생기가 있었습니다
높은 하늘이 있었습니다
온 우주를 넘실대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고
주님 안에 있으니
어느 것도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16.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주님은 '나를' 잊지 않겠다 하신다.
절대로 잊지 않고 항상 나를 기억하신단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점차로 '외로워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 생각이다.
세상은 소통을 주장하고 그 통로는 많지만,
그럴수록 점차 세대간의 벽은 높아지고
빠른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갈 수 없는 자들은 소외되며
따라갈 수 있는 자들도 '소수'의 변화의 리더들이 주장하는 소리에
무비판적으로 끌려들어가다 보면
자아의 혼란을 유발하여 자기 내부에 '큰 철옹성'을 쌓게 되어
결국 군중 속의 소외감을 지니고 살게 된다.
그 반증이 '힐링' , '쉼', '슬로우시티' .. 의 유행이다.
그 와중에 나이들어가는 자들은 더욱 그렇다.
하나님이 오늘 말씀하신다.
네 어머니는 '혹~시' 잊더라도 나는 기억하리라.
그것도 '항~상~' 기억하신다한다.
누가 알아주고 못 알아줌이 뭐그리 중요할까?
그러나, 인간은 어차피 '사람들 사이'의 존재인 것이다.
그게 '사람 人 사이 間' 이다.
하지만, 그 '사이'가 어려운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기에 더욱,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 이 되어야 한다.
그분은 오늘 말씀에 그러신다.
"손바닥에 써 놓고 보시듯 하신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 항상'..
네 성벽을 내 앞에 두고 보겠다.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
무슨 말씀이신가?
손바닥에 새긴 것처럼 안볼래야 안보실 수 없다는 것이다.
성벽이란 무엇인가?
내 안의 성벽.
나를 무겁게 누르지만 외부로 부터 차단 시켜
안전하다고 느끼게도 하는 것.
'방어기제'라 표현해도 될 른지..
아프지 않기 위해 똘똘 감고 있는 방어벽..
하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없애야 할 것.
그것이 혹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벽'이 아니던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 성벽을 깨부순다고 하시기 보다는
'성벽이 항상 주님 앞에 있다.'라고 표현하신다.
그것은 무엇이던가?
이 어려운 시대.
이리갈 수도 저리 가기도 어려운 이 소외의 시대에
어찌 할 수없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거기에 벗어날 수도 없는 진퇴 양난의 벽.
그 벽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이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성벽.
생존,
심적인 평화를 위해서 자신 안에 지어 놓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제대로 살기 위하여는 반드시 깨어야 할 것,
타인들, 하나님과의 '화합'과 '흐름'을 위하여는
반드시 없어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여 몸부림치고 잇는 성벽.
꼭 없애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성벽.
그것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신다.
항상 보고 계신다.
어쩌면 하나님은 나의 특성을 아시기에
보시는 것이실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손내밀어 그 성벽을 흐틀어 놓으시기는
무엇 그리 어려우신 일이될까?
그 외로움.
하나님이 '후~' 부시면 다 사라지고 말 것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만이 아시는
큰 이유로 해서
그 성벽을 그냥 우리 안에 두신 것이시고
그것을 인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지속적으로 몸부림 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위로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시다.
그렇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외로움'이나 다른 어떠한 '성벽'에 의한 어려움도
'선'이란 이야기시다.
단,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 그렇다 .
그 분이 그러신다.
'내가 항상 네 성벽을 보고 있다. '
참으로 깨드리기 어려운 성벽을 그냥 보고 있으신다신다.
항상..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아시고 보시고 계시며,
그 분의 눈길 안에 있다는 것은
'내 삶의 방향을 인정하고 계시고 이끌고 계신다'는 이야기시라니 그렇다.
감사하다.
18.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반드시 그의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내 눈을 들어 사방을 보면'
' 그들... 내 자식들을 포함한 그들이 '
' 다 모여' 내게로 온다신다.
'성벽'.
그 성벽 안의 '좌절' .
그 좌절의 무거움.
그 외로움..
그 절박함을 딛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네 눈을 들어라.
그렇다.. 성벽 안에 갇혀 있으면 성벽만 보인다.
하지만 사방을 보면 달라진다.
그것이 무슨 달라짐이 있겠느냐 다가오는 마음 속의 항의는
말씀으로 대치하면 된다.
눈을 들으라니 들면된다.
그러면 보인다.
성벽 바깥의 것이 보인다.
그게 말씀이시다.
인간의 머리로는 '외로움'의 무거움으로
합리라는 이름으로 '불가능'한 것 같아도
눈을 들어 보면
그들이 오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내 안에 깊이 바라지만 포기하고 있던 것들..
불가능할 것 같지만 가능한 그것들이 아닐 것이던가?
말씀에서 그러하시니 그렇다.
성벽은 하나님의 앞에 있다.
내가 깨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
깨지지 않아도 보이고
깨어지지 않아도 그들이 온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하실 일을 내가 속단하지 말라는 이야기시다.
내 뇌의 한계로 하나님을 묶으려 하지 말라신다.
내 안에 '성벽'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란 이야기다.
그것을 하나님도 아시고 지켜보고 계신다시는 이야기다
또,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면
성벽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그들이 옴이 보일 것이고
그들이 올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들이 옴은
우리의 생각에 묶여 있어
가능치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축복'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문제는 '내가 말씀을 받아 들이고 아멘'하는 마음에 달려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니 난 믿는다.
내 외로움의 성벽.
내 나이듦의 어이없는 좌절을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고
그것이 있음과 없음과 상관없이
난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 축복은 내가 그리도 절박하지만
내 성벽으로 인하여 깊이 깊이 묻어 두고 있는
그것까지 포함해서 일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그 어떤 것도 미리 재단할 이유는 없다.
말씀이 계시고
말씀이 아멘으로 받아 들여지면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하기 시작하신다.
난.. 가만히 기다리고 기대할 뿐이다.
주님.
내 귀하신 하나님/
나의 인생의 후반부가 그리 밝지 않을것이란
수도 없이 많은 이유와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거할 때고
밝고 힘차지만
늘 그럴 수 없는
나의 부족한 이유로 인하여
조금 정신을 놓을 때는
여지없이 '성벽'이 크고 높고 단단하게
나를 둘러 쌓는 것 같습니다.
사방이 답답하고 어둡고
나 홀로 늙어갈 것만 같은
비록 예전 같은 그리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런 유형의 부정적 힘듦이 내 하루를 붙들려 합니다.
주여.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으로 나를 들여다 보게 하시고
내 안에 성벽의 벽을 바라보고 한숨지으려던
나를 깨닫게 하시고
그 성벽의 평생 따라붙음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제 죽도록 끝까지 항상 .... 지켜보고 계시고
나로 성벽 바깥도 볼 수 있게 하시고
내 그것과 상관없는 축복을 기대하게 하십니다.
주님.
오늘 말씀은 깨달음이고 희망이고 감사함입니다.
주여.
하나도 변하지 않은 생활 패턴이고
들어가는 나이고
늘어가는 주름살 투성이의 저이지만
주님의 은혜로
오늘 다시한번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성벽을 끝까지 바라보시고
나를 주님의 손바닥에 쓰시며 잊지 않으시고
내 가려진 성벽에도 불구하고
보게 하실 내 축복을 기대합니다.
내 살아계신
내 하나님 아버지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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