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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므로 아노라[사50:4-5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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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므로 아노라[사50:4-51:8]

주하인 2013. 6. 11. 09:03

 


7.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주 하나님이 나를 도우신다'

너무도 잘 알고 있고 믿지만

그리 깊이 있게 , 하루 종일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어느새.. 잘 잡아놓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고민과 갈등이 날 흔드는 시간들이 조금씩 늘어 난 것 보니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을 시간인 것 같다.

그때 주님이 이러신다.

'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너무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주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게 너무 도 당연한 사실'이므로' ...

그 사실을 잊지 말자.

주하인 !

주님이 날 도우시므로 ..

그게 당연하므로 ..

잊지말자.

 

' 도우시므로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고'

부끄러움.

어떤 분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이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

심하면 일상의 생활이 제한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그에게 옳은 피드백을 주어

그 자신을 사랑할 만한 '미러링'이 없어서이다.

자신을 부끄러워 함은 인생의 힘없음을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옳은 거울'이시고

저리도 매일 우리를 도우신다.

그러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

 

'내 얼굴을 부싯돌처럼 굳게 하다'

가면.

페르소나.

professional identity.

...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그것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위선적'이 되기도 '처세술'이 되기도 하고

혐오를 주기도 기름칠하는 자가 되기도 한다.

또, 자신의 본 모습을 잃을 수도 성숙한 자되기도 한다.

 이것..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페르소나 ' 쓰라고..

그것.. 조금은 타인을 위하여 '위선'을 누리라는 이야기시다.

그것의 바탕은 하나님이시고..

위선의 '위'.. 거짓 僞가 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은 능력으로 ,

하나님이 옳은 feedback에 의하여 자신을 옳게 보게 함으로

위선이라 착각하고 가라앉아 있는 자아를

옳고 건강하게 만드실 것이라고..

그것을 믿고 건강한 페르소나를 쓰면 된다.

하나님이 '온유와 겸손.. 으로 옷입고'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다.  ^^*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

'아노라' 하셨다.

수치.

계속되풀이 되지만

수치는 타인이 직접 주는 것 도 있지만

자신의 내부에서 그릇 돌아가는 자신의 Image에 대한 왜곡 탓일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을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사실을 앎으로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게 되고

타인을 위한... 또한 자신을 위한 옳은 페르소나,

겸손과 온유로 옷입게 되며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임을 ..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세상엔 '강한 ' 게 '선' 처럼 되어 간다.

소수의 아주 '강'한 자들이 '우상'이 되어

사회의 대부분의 판단을 봉쇄하고 이끌어 간다.

 젊은 여인들의 강한 롤모델은

키가 커야 하고 날씬 하여야 한다.

코는 오똑해야 하고 허리는 잘록해야 한다.

그래서 다들 마르려고 야단이고

얼굴에 각종 이물질을 집어넣고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 뼈를 깍는 수술을 감행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너도나도 씩스팩을 가지고 키가 적으면 '루저'라 한다.

뛰어난 스펙을 가지기 위해 무리를 한다.

.....

.....

그런데 .. 그런 노력들은 일부 선한 듯한 현상을 가져오긴 했다.

세상에 드문 빠른 경제 성장..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현상들..

하지만, 그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영혼은 날로 피폐해져 간다.

드러나는 모습들은 '모두 강하고 모두 아름답고 모두 자신이 넘치는 듯'하나

실은 그 안에는 그들도 모르는 진한 실패감, 소외감, 어려움, .. 등으로 가득찬다.

설령 , 그들이 현대 사회의 리더로 자부한다고 스스로 착각을 하고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져 가는 육신의 탄력은

점점 더 많은 시간과 금전과 노력을 그들의 육신에 쏟아 붓게 만들며

결국은 어느 순간엔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세상으로 부터 소외되게 만들고

그러함은 그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작용하게 되어

작은 자극에도 견디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실은 그 기저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적, 영적 능력이 누구에게나 허락받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들이, 느끼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여도

그 깊은 곳에는 영혼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그렇게도 육신을 포장하였던 것이다.

페르소나를 '영혼'으로 쓰지 않고 육신의 것으로만 쓰기 때문에 그랬고

그래들 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부끄러움,

자신의 존재의 이유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에 올 수 밖에 없는

원죄로 인한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하여 위의 예를 든 방법 뿐 아니라

이유로 칭찬과 좋은 소리 듣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SNS를 통하여 패거리 속에 속하여 안정감을 느끼려 하고

자신과 격이 맞지 않는 교류 ( 십수년 나이차는 젊은 이와의 거리낌 없는.... ㅜ.ㅜ;;) 등을 통하여

육신적 방법으로 그 빈 영혼을 채우려 한다.

그러다가 결국 시간이 되어 '진실'을 마주할 수 밖에 없을 때에

부끄러움은 뚜겅을 열고 폭팔한다.

그러면 그들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사회는 참으로 다양한 병리 현상으로 뒤죽 박죽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부끄러움에 대하여 민감한 사람들은

위축되고.......

 

 

 영혼이 병이든 사회..

영혼에 대하여 관심 조차 없는 사회.

구성원들은 전혀 행복을 논할 수 조차 없다.

그 깊은 속은 '부끄러움'이 자리잡고 있다 .

그 사회를 치유할 수 잇는 힘은 오직 하나님 뿐이다.

 

하나님이 그를 도우심을 믿는 자,

그 사실을 '느끼는 '자 들은 행복하다.

행복해진다.

깊은 부끄러움의 틀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공격할 지 몰라도

말씀으로 희석이 되고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하면

그 부끄러움을 허락하신 '이유'도 깨달아지고

그 부끄러움을 통하여 세상과는 다른 깊은 깨달음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었음이 믿어지게 된다.

그동안 그를 집요하게 공격해오던 수치심이나 외로움은

그의 영혼을 맑고 깊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음이 깨달아지고

드디어는 때가 되어

'부끄러워 아니하기'로 결심하게 되며

타인과 자신을 위하여 허락된 '페르소나'를 쓰기로 결심하게 되며

하나님으로 인한 자신의 옳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으로 그렇게 변화 디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과

순간 깨달아진 자신의 인사이트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순간을 타고

그의 영에 그리 하시는 것이시다.

 

그때 .. 그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되고

그의 영혼은 소망으로 다시 솟아나게 되는 것이다.

 

 

귀하신 주님.

오늘 말씀은 쉬우면서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다 때가 있으시고

그때에 아멘으로 받을 시 반드시 깨달아지고 알아짐은

이전의 말씀을 붙들고 있을 때 알아지던

그 수많은 경험의 시간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오늘은 '수치'와 부끄러움에 대하여 서 입니다.

그리고 그 알지도 못할 이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며

이 땅의 썩어져갈 육신의 것에 소모하고

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그것을 가리는 데 빼앗기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

그것 이제 내려 놓고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주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아는 자로서

그것을 앎으로

이제 부끄러워 아니하고

얼굴을 부싯돌 처럼 굳히고 살기를 선택합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이 주신 페르소나,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살수 있길 원합니다.

그렇게 될 줄 압니다.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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