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꿈에( 마1:18-25) 본문
제 1 장 ( Chapter 1, Matthew )
새해에는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주님 축복을
듬뿍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아침에 꿈을 꾸고서
일어나니 기분이 그리 좋질 않다.
이상하게도
대학교 시절로 다시 돌아갔다.
친한 친구, 내과하는 친구가
내일이 시험이라며 같이 시험공부를 하자고
찾아 왔는데
아이구..이건
난 한자도 공부를 하지 않은 게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그게 모르고 있다가 방치 한 것이 아니고
꿈속에서의 나는 그것을 오늘 내일 미루고 있다가
바로 내일이 되었는 데도
정말 말 그대로 한자도 공부를 하지 않은
그런 상태로 느껴졌다.
시험과목.
의대 시험과목..
뒤돌아 보기도 싫은 만큼 많은 분량이다.
어이가 없다.
친구를 보니
나보다 키가 훨씬 크고
얼굴이 빛이 난다.
난 공부를 안했다며 걱정을 하면서
꿈이 깼다.
지독한 악몽이다.
이렇게 까지 준비를 안했던 것은
내 인생에 없었던 일인데..
꿈이 깨고 나니 '휴우~'했다.
주님의 경고인 듯 했다.
게을러 져 있는 내 영적 상황.
2010년 1월 2일.
역시 늦게 일어난 것이다.
여덟시가 다 되어 일어나도 몸이 찌부두둥하다.
걸어 나가며 묵상집을 펼쳤다.
아니나 다를까.
'요셉'님이 꿈을 꾸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도 '두려워 하지 말라'는 천사의 장면을 보아
그 분 역시 두려워 할 꿈을 꾸셨나 보다.
하지만 두려워 하기 보다는 기뻐해야 할 꿈이지 않던가?
그러나 '잠이 깨어' 현실에 돌아오면
그것은 두려워 할 일이 맞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하면
기뻐할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경받을 만한 계보적 아버지.
그의 인격이 그대로 성경에 적혀져
전 세계에서 대대로 칭송받을 기회이니
어찌 두려워 만 할 일이던가?
요셉님은 인격적으로 행동했다.
현실에 나와서 실제로 나타난
처녀 아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가만히 끊고자..하며 조용히 인내하고 견뎌냈다.
거기에 불타는 젊은 육신을 가지고
결혼한 아내가 아기를 낳도록 인내했다는 것도 그렇다.
왜 그는 그럴 수 있을까?
왜 나는 꿈을 꾸고 계속 두려워 했을까?
요셉님은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두려운 꿈을 꾸었기에
꿈을 깨고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
나는 내 잘못일 수 있을 일로 인하여
죄책감 내지 미안함으로
꿈 속에서도
꿈깬 후에도 마음이 안좋았던 것 만 같다.
그렇다면 요셉님은 더 이상 고칠 것이 없는
타고난 인격자가 아닌가?
그 젊은 , 아니 오히려 어린 나이의 그가
그런 인격을 가지고
그런 티없음으로 온전히 행했다 하니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불완전한 인격체들,
더구나 나처럼 성질 급하고 좋지 않은 ^^;; 자들은
어찌 행동을 해야 하는가?
꿈을 깨고도 맑을 수는 없을까?
맑게 행동하지 못함이
주님이 허락하신 것일까?
아니다.
주님은 요셉의 꿈을 보이심으로
꿈을 꾼 나에게도 무엇인가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니시던가?
그것은 불쾌하고 깨끗지 못한 것이
당신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불쾌한 것은 내 깊은 '죄책감 '탓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벗어버려야 한다.
어찌 벗는가?
무엇이 잘못이던가?
불쾌한 것은 내 오래된 부정의 생각 탓일 게다.
오늘 보이신 것이 영적인 의미가 맞을 것이 분명하고
주님은 내 모든 것을 아시고
주님은 반드시 선함이시기에
그 분은 '회개'를 원하실 지언정
불쾌나 자책이나 더러운 부정의 감정은 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꿈에 대한 말씀을 주시면서
꿈을 꾸게 하시고
나로 당황시키시는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나에 대하여
무엇을 원하시는가?
우선 드는 생각은 '영적 게으름'이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는
율법적 성향과 사람들의 왜곡으로 힘들어 했지만
나름대로 굉장한 열심과 경건함이 어디에 못지 않았다.
'밝은 빛'
'맑은 물'
' 무교병'
'성화' 등이 주제로 기도도 많이 하고
금식도 많이 하고
절제도 많이 시켰는데..
지금다니는 교회는 훨씬 균형이 잡히고
영적이며 자유로운데 그런 분위기가
나에게는 꼭 맞는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종교적 열심이 사라지게 하는 탓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한 주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난 나도 모르게 '방종'으로 '태만'으로 바꾸어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침마다 더욱 일찍 일어나
주님 말씀을 풍성히 듣고 준행하며 날 바꾸어 가지 못하는 것 탓일 수도 있다.
주님은 요셉의 그 엉터리 같은 상황에서
주님 말씀에 따라 차분히 대응하는
그 모습을 보이심으로 그렇다.
연말 연시.
환우 분들이 갑자기 늘면서
자잔한 문제들이 줄을 잇는다.
그래서 마음이 더욱 버거운 가 보다.
오늘
꿈을 보이심으로 나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묵상해 보자.
기도
주님
솔직히 마음이 많이 혼란 스럽습니다.
자잔한 문제에 흔들리는 내 마음이 그렇고
그 마음이 영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그렇고
말씀을 자꾸 게을리 대하는 듯해서 그럼에도
다시 게을러지는 절 돌리는 것이 어쩌면 이리도 힘든지...
그게 어렵습니다.
힘을 내서 아침에는
한끼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끊이지 않습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인도하소서.
마치 요셉님의 꿈에
천사가 현몽하였듯이
저로 알듯 모를 듯 막혀있는
제 마음의 끈을 확 풀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하여 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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