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깨어서 ( 합 1:12-2:1 ) 본문

구약 QT

깨어서 ( 합 1:12-2:1 )

주하인 2009. 4. 18. 09:31

 

이렇게

파수꾼이 파수하듯이

성문을 지키는 성문지기처럼

주님 만을 바라보려 합니다.

 

주여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가르치소서.

저만에게요....

 

 

 


12.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 여호와 하나님

  나의 거룩하신 자시여'
촉촉한 감성이 실려 느껴져 온다.

목소리 깊게 깔리고 떨리는 음운이 가슴으로 느껴져 온다.

두려운 주님을 간곡히 붙드는 ,

그 분의 말씀이 두려움에도 그 분에게 주눅들기보다는

더 간절히 매달리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그것 같은

느낌으로 전해져 온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매달린다.

'주님은 만세전 부터 계시고 날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분명코 주님은 그리 말씀하셔도 우리는 사망에 이르지 않을 것 압니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무게가 무겁다.

그래도 이리 외침이 공감이 된다.

'주님. 내 하나님.   나의 거룩하신 하나님...'

나는 매달릴 곳이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만세 전부터 날 아시고 택하셨으니

날 이대로 버려두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수많은 부정의 생각들이 밀려와

날 사망의 괴로움에 빠드리려 해도

주님

이것은 사실이 아닐 줄 믿습니다.

 주님 주님은 날 태어나기 전부터 선택하셨기 때문이십니다.

 주님은 내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주님은 거룩하신 자이시기 때문이십니다. '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그래.

돌아보면 내 잘못은 여전히 많다.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해 죄악은 날로 쌓여만 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옛날의 그 무거움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

어찌 주님 그럼에도 이 답답함과 무거움이 허락되었다는 말인가?

왜 자꾸만 연민은 몰려오고

왜 내 삶은 변화가 없는 듯 보이려 하는까?

이제 주님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전 버틸 여력이 없다.

 베드로의 그 디베랴 바닷가 같은 좌절은  

나로 견딜 수있는 나이가 아니게 한다.

 

 '주님.

 이 고통의 유지됨이

이 삶의 태도에 변화가 없음이

내 주위 환경이 막힌 듯함이

저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신지요?

 제가 잘못이 많은 줄은 알지만

점점 힘을 잃고 있는 이때에 다시 옛 패턴으로 돌아감은

견디기 힘든 상황입니다.

 나 하나 이겨나가기도 힘든데......

주님 어찌 그냥 두십니까?

 어찌 .................'

 

 
  


제 2 장 ( Chapter 2, Habakkuk )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내가 파수하는 곳.

어딘가?

내 성루.

어딘가?

 

 파수하는 곳이라면

기도하는 곳, 묵상하는 곳  .. 중에서도 더욱 민감히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아니던가?

성루는 적병을 내려다 보고 방어할 수 있는 곳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다.

 

 선다고 한다.

기다리고

바라보며

내 질문에 대답하실 지 본다고 한다.

 질문.

 

오늘 토요일이다.

어찌할까?

세상적으로 열심히 찾아다니고

방법을 찾아 볼까?

또?

옛날처럼 분주히 머리가 뛰어다니려 한다.

'가만히 주님 만 찾다가 시간만 보내면 어찌하나..' 

 별로 차이가 없잖아.   지난 세월과.............'

이런 마음을 내려 놓고

 내 마음을 지키련다.

성문에 서고

파수의 위치에 서서

가만히 기도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서서

기다리고

바라보겠다.

 

 

 

적용

 

1. 어제 읽지 못한 성경 포함 열 네장 읽겠다.

 

2.  내가 해서 될 듯한 일들을 어찌 할까요... 여쭙는다.

 그냥 해야 하나요?

 지금까지 먼저 나서다가 의도와 달리 된 경우도 많았는데요.

 가만히 있는 것은 방치는 아닌지요?

 통제와 방치의 한계를 어찌 알 수 있을 지요..

 여쭙자.

 

3. 결과는 주님께 맡긴다.

 

4. 기도원에 가겠다

 집 앞이 기도원이다.

 내 성루와 파숫대는 거기가 아닌가 싶다.

 이제 물을 일도 많다.

 

5. 서자

 질문하자.

 기다리자.

 

 

기도

 

 사는 게 왜 이리 힘이 드는 지요.

혼자만의 가슴에 쌓이는 무게도 견디기 힘든데

왜 이리 곳곳마다 걸리는 것 투성이인지요.

모두가 내 탓인 것만 같습니다.

이성은 아니라 하지만

그래도 무거운 것은 사실입니다.

아닌 것이

또 깊이 마음으로 다가오려 합니다.

왜 이런 지요?

어떻게 해야 하는 지요?

주님.

부족한 제  탓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

주님 인도하시는 지금까지

넘어지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또 일어서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그럼에도 또 다시 옛날로, 비전없는 미래가 예상이 되며

되풀이되는 답답한 내 인생이 된다면

참 견디기 버거울 것이 사실입니다.

아침에 주님이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지 않으신다면

전 벌써 바벨론의 고통에 눌리고야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허전하고 무거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파숫대 앞에 서려 합니다.

문루에 서려 합니다.

주여

제 질문을 명쾌하게 하여 주시고

그에 답하여 주소서.

주여.

저로 기다리는 힘을 주소서.

주여 답을 듣는 귀를 주소서.

주님

주님은 만세 전 부터 있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주여 주는 내 여호와시여

존귀로우신 분이 아니십니까?

주여 날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이 어두움을 경험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현명한 길을 가르치시고

사망의 길에 들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뿐이겠나이까?

제 주위 모두를 그리하소서.

 

주님을 의지하고 내려 놓으려 하니 주여 불쌍히만 여기소서.

저를 구원하신 예수님

저를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