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깊이 생각하고 굳게 잡을 것(히2:10-3:6) 본문
이리 찬란한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게 하심
그 햇살이
그리 황홀히 느껴지게 하심
모두
우리 주 예수의 덕임을
깊이 생각합니다
내 그리 느끼고
그리 감사히 받을 수 있음은
주 예수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사랑의 보혈
있으셨기 때문임이니
내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소망이며
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자랑임이 맞습니다
주여
그 주신 소망과 확신
내
죽을 때까지
굳게 붙들려 하오니
주님
절 붙드소서
부디
성령으로
강하게 잡으소서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깊이 생각하라'
깊이 생각할 수 있을 까?
내가 ?
지금 사람들이?
특별히 나는 그렇다.
오랫동안 생각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많은 부대끼는 생각들이 번뜩이던 습관들이 있어서인지
아주 가끔.. 직관에 따라 움직이긴 했어도 ,
그래서 성격 급하다는 소리는 들어도
'깊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은 해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일단 빠개질 것 같아서...^^;;
그러나, 깊이 생각할 것이 있다.
그러라 하신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그러신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그러신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느껴지고
말씀이 하나님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며
난.. 그래도 조금씩 말씀대로 이루어져 가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
' 깊이 생각하라' 시니
그러겠습니다.. 하고 순종하는 노력을 하다보니
그 노력을 보고 '그날을 감해 주시는'..
내 집중하려면 깨지려하는 내 머리 속이
점차로 성령의 감동으로 누구러지며
그럴 수 있는 기회들이 조금씩 늘어나며
그게 습관이 되어가고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는 이야기다 .
하나님이 '깊이 생각하라' 하시는 대상은
'예수님'이시다.
아.
예수님.
그 무거운 십자가, 상처나신 몸으로 지시고 그 뜨거운 열사의 땅에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
마침내 십자가에 박히신...
그 예수님..
그런데.. 거기까지 였다.
내 삶은.. .
한동안 의지적으로 그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애쓰며 잊지 않으려 했지만
때만 되면 쏟아져 내 속에서 나오는 '죄성'으로
십자가는 내 안에서 힘을 잃어가고
난 예수님을 단지
'나를 위해 '사랑'하셔서 이땅에 오신 분.. 의
달콤한 부분 만 생각하고
자꾸만 잊어 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
아니다.
그게 . .사실이다.
예수님은 예배에 필요한 요식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 듯
내 기복의 '형상'일 뿐인듯
난 그렇게.. 여기까지 온듯도 하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라'는 부분에 다시 걸린다.
요즈음 내 삶.
계속 막연하게 표현하지만 '과정'을 거치고 있다 .
그 과정에서 난.. 내 형편의 나아짐을 기대하면서 기도도 하지만
예상외로 '십자가'본연의 것을 생각하며 기도하게 되고 있다.
'예수님'의 날것... 이란 목사님의 표현이 내 가슴에 더 온다.
왜 일까?
가장 '현실' 적이고 물질, 과학적인 것에 반하여
난 예수님 자체를 더 기도할까?
진짜 현실이 무엇일까?
겨우 내 삶 속에 이익을 주고 손해를 받고
그러다가 내 주장을 피고 덜피고
내 감정이 감상인지 실질적인것인지......
이러한 것들로 고민하다
그냥 이 땅에 주어진 삶을 마감하는 것이 진짜일까?
믿음이라면서
그러한 현실을 가장한 '가짜'의 삶에
단지 도구가 되는 예수님이 진짜 믿음이던가?
성경에서는
' 먼저 그 나라와 그 ... 구하라.. 그리하면.. 더하리라' 지 않으셨던가?
그게 그거다.
하나님의 본질.,.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보이신 그 사랑의 본질...
그 분이 우리를 지으신
진정한 우리의 삶의 목적을 이해할 때
나머지 부수적인 것도 의미가 생기는 것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고 하셨다 .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나는 '집'이다.
하나님이 드실 '집' .
임마누엘 하나님.
처녀 마리아의 자궁에 드신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듯
내안에 계신 임마누엘 하나님의
거하실 '집'이 바로 나다.
그 집에 '예수님'이 주인으로, 청지기로 드셨다.
그게 내 본질이다 .
그렇다면
난 소망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다 .
하나님의 집이시다.
온 우주에 홀로이신 여호화 하나님.
온 우주를 말씀으로 만드신 전능자 , 로고스 , 엘샤다이 하나님
온 우주의 시초이신 엘로힘의 하나님
온 우주를 ...
그 하나님이 나를 집으로 삼으시니
내 결국은 승리 아니던가?
선이 아니던가?
난.. 그 사실을 깨달아 안다 .
체험하고 머리속으로 확연히 이해되고 가슴까지 내려왔으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소망이던가?
이제 내 강한 육신적 소욕을 뚫고 들어와
다시 세상의 자식,
세상의 권세잡은 자의 손으로 붙들려는
그 '삶을 가장한 고민'과 욕심들이
나를 그냥 두지 않으려 할 때
난 이 소망을 생각하고 기억하여
더는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되어야 한다 .
그게 오늘 그래야 한다 .
내 안에 빛으로 비추시는 하나님께서
위의 사진처럼
어느 것을 보아도
심지어는 구석진 고가의 트럭을 보고
낮은 깎여나간 동산의 허리를 배경으로 하는 황량한 아침의 추위라도
하늘을 배경으로
빛으로 비추이면
더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뀌듯
난 주님 예수님의 그 구원,
그 놀라운 십자가 사랑을 더 뜨겁게 인식하고 붙들 수만 있다면
내 삶은
내 지금의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는
소망과 확신으로 그득하게 될 것이고
나머지 인생의 문제들은
하나님이 내게 가장 합당한 곳으로
하나님의 시간에 인도하실 것임을 믿는다 .
이제 확신한다.
감사하다.
주여.
오늘도 하루 밝았습니다.
날이 어찌나 갑자기 추워지고 눈은 쏟아졌는지요..
천천히 걸어나오면서
온몸을 감싼 방한 물품에 쌓인 속에서
가만히 밖을 보니
쓸쓸하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그득 자신을 감싸도
그안에 '소망'이나 '확신'이 없으면
어두움으로 보이고
추움과 외로움 만 가득할 듯했습니다.
제게는 '결정'하고나서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이후에 닥칠 버거운.. 일들이 고민처럼
내 가슴 속 한 쪽을 누르려 합니다.
마치 이 추운 바람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영적 방한 복으로
칼바람은 내 영혼 속으로 밀려오지는 못하지만
주여..
조금 저 바람소리.. 저 추위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어두워져갈 것만 같습니다.
내 주시여.
저를 붙드소서.
성령으로 그리하소서.
말씀을 주셨으니 말씀으로 운행하셔서
제 영혼,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오셔서
임마누엘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할 수 있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
그 분의 순종,
그 분의 그 인내
그 절대의 고독,
나를 위해 지고 가신 그 놀라운 공감을 묵상하게 하시어
제게 '소망'으로만 그득하게 하소서.
삶을 바라보는 눈이 소망으로 빛나게 하소서.
제 아들들,.. 제 아내.. 제 식구들... 제 모든 아는 분들..
다 같이 느꼈으면 합니다.
주여.
오늘 하루도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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