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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삼가할 괜한 우상[신4:15-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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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삼가할 괜한 우상[신4:15-31]

주하인 2012. 11. 9. 10:55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너희에게

 너희가

 너희는'.. 하신다.

 

' 형상을'

  형상이든지.. 형상....'하신다.

형상이란 단어가 계속 계속 되풀이 되신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것이다.

이후에도 계속 '형상'에 대하여 되풀이 나온다.

 형상이란 실루엣이 될 수도

형체, 윤곽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윤곽을 잘못 이해,

즉 머리 속에 가진  어떠한 필터, 즉 과거의 경험이나 상처 등을 통하여 왜곡된

잘못되었을 '이미지' 일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의미되는 '형체'라는 개념보다는

왜곡된 이미지,  

그 이미지를 강력하게 기뻐하고 붙드는 미련한 현상

즉,  '우상'으로 변질 되기도 한다.

 또, 여기서 '너희는 '.. .이라시면서

'깊이' '삼가라' ..하신다.

 

형상과

내가

깊이

삼가야 될 '왜곡된 이미지' 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누구나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이미지를 자신의 대뇌 속 어디엔가 저장하게 되고

그 사람을 만나거나 그 환경을 부딪치게 될 때

그 이미지를 불러내어 대하게 된다.

어떤 때  우리는 그것을 '선입견'이라는 이름으로

인지하게도 된다.

특별히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많이 배워 자기 교만이 강한 사람들에게

아니면 선천적인 능력이나

깊은 트라우마에 의하여 그리 훈련되어진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능력들이 강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그림 그리는 현상' 

이미지화의 작업은 '무의식적'이며

반드시 '타인 '이나 '다른 물체나 기억'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형상'도 깊게 이미지화 시켜

아주 아주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시시 때때로 꺼내 들기도 한다.

이것을 '자기 이미지'라 한다.

그래서 비슷한 상황에 다다르면

타인이나 자신이나 불구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꺼내어 들어

비교하여 상황을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그것에 어긋나면 잘못된 반응이 나오기도 하니..

자기의 주관적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봄은

참으로 위험하기 그지 없다.

 

 이러한 '왜곡된 형상화', 이미지화는 오늘 말씀에

분명히 나와 있다 .

하나님의 형상을 불꽃에서도 보지 못한 자들이

자기 나름대로 쥐의 형상, 남자의 형상, 여자의 형상..... 으로

'자기를 위하여' 왜곡 시켜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한다.

모든 인간들이 자신의 왜곡된 거울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씀이다.

 

이런 왜곡됨

그렇게 왜곡되게 만드는 거울을 통해 이그러진 형상을

강력히 붙들고 기뻐하는 것,

그것이 ...우상.. 이다.

그것을 인지 하지도 못하고

설령 본능적 아이큐의 높음이나

교육의 힘이나

다양한 이유로 해서 어찌어찌 인지해도

왜곡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왜 그런가?

'원죄적 존재' , 흠이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젖을 먹거나 우유를 먹으면서

어머니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머니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형상을 이미지화 한다.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비교적 건강한 ' 부모에 의하여

이쁘게 바라보여지는 자의

자기 형상은 '건강하게 맺혀진다. '

하지만 한쪽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 고아들..

성장하면서 '의미있는 타인'에 의하여 심한 상처를 받은 자들은

그들의 성난 눈동자나

아예 눈동자로 비추어질 기회 조차 박탈 당한 탓에

심한 왜곡이 온다.

다양한 이유로 그렇게 되어도  인격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런 자들은 아픔을 가지고 클 수 밖에 없고

성격적 '외곬수'의 특성을 지니게 된다.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기반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부인한다.

사랑도 마음대로다 .

그러한 그들의 영혼에 '옳은 이미지'가 맺힐 수가 없다.

필연적으로 가진 왜곡된 거울에

사단은 '네 거울에 비친대로 ' 느낀대로 살아라' 라고 부추긴다.

그러한 왜곡된 거울에 세상은 더욱 이그러진 이미지만으로

그들의 심령에 박힌다.

그게 ........세태가 되어가고

거칠어진 심령을 가진 자들이 득실 거리면서

그들도 그렇게 하는데.....라며 따라가는

거대한 사회 풍조가

오늘날의 현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 높은 자리 앉은 자'들의 '쌍소리'들.

쌍소리 꾼들이 모여 앉아 방송하는 쌍소리 방송들이

그냥 쌍소리가 좋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우상의 형상을 사모하는 그룹들로 열광되어지게 하고

그들과 더불어 거칠어진 시대는

아무렇게나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다가

결국은 '아무데서나 ' 아무렇게나 자신을 해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 기독교인들...

아니다.

분명히 오늘은 '너희가 깊이 삼가'라시며

나에게 그리 말씀하신다.

'너.. 주하인아.

 너는 무슨 형상을 만드는가?

 무슨 잘못된 형상으로 무슨 죄를 지어가고 있는가?

 네가 그처럼 오랫동안 우상으로 만들어 놓은

 왜곡된 이미지는 무엇인가?" 신다.

 

 

 연말이 다가오며

병원 직원 '송년회' 계획이 머리에 그려진다.

좋은 곳.

가족들 모아

토요일 오후에 ..

정말 처음으로 화기애애하고 제법 그럴 듯한 모임을 가지려

오래 근무하는 수족 같은 -ㅎㅎ . 정말 좋은 분이시다.. ^^*- 간호사에게

인원파악 하라 했다.

며칠을 걸려도 안하더니 어제 퇴근 즈음에 슬쩍 그런다.

'모두.. 토요일 오후라 .. '

마음 속에 '불끈'하고 올라오려하는 생각

' 이거 병원의 공적인 행사이고 ,

 이처럼 좋은 일에.............거부..? '

한편으로 ' 내 잘못 생각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두가지 생각이 날 잡는다.

거부가 아니고 다른 의견 일 뿐임을 알면서

금방 가라앉기는 했지만

그런 상황에도 내 머리속을 스치는 '형상'은

'어쩌면.. '

난 옳고 큰 판단을 하는 군주나 CEO 같은 기대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간호사는 감사하며 복종해야 하는 신하 같은 형상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반항하는 신하에 대하여 분노하는 왕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면

당연히도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

 나 뿐인가?

한국인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의견'을 견디지 못함은

이러한 '왜곡된 형상'을 '유교'의 영향으로

우상처럼 지니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주쳐야 하는

이 왜곡된 우상의 진실을 어찌 깨달아 낼 수 있던가?

 

나......

위에 잠시 예를 들었지만

그러한 왜곡된형상의 그림을 자꾸만 그리던 부족한 자였다.

그래서 자주 속이 상하곤했던 자다.

하지만, 조금은 달라졌다.

그 달라짐,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로 하여 자꾸만 비쳐봄이다.

그러고 나선 점차로 내 영혼에 잘못 새겨진 왜곡된 형상을

먼지 닦아내듯 닦아내는 작업을 해왔던 탓이다.

그것......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성령으로 인도하신

그렇게 되어온 '피동적 결과'다.

쉽게 말해 모두 '은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아직도 자주자주 왜곡된 우상을 붙들고 있는 경우가

너무나 태반이다.

 그 형상이 어떤 것인가?

난 .. 안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멋진' 형상으로 서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로는 그런 형상이 바램이 되어 선한 결과로 나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좌절과 두려움의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잘 안다.

그런데 왜 자꾸만 발걸려 넘어지는가?

왜 허튼 '형상'에 휘둘리는가?

 

어제.

퇴근길에 .. 자주 그러듯, ... 길목에 있는 기도원에 갔다.

실은 기도원 가려면 '저항이 나에게 느껴진다.

 그것도 왜곡된 형상의 결과물임이 짐작이 된다.

'사단'이다.

옛 사람들의 소리로 만들어진 그 형상을 타고 막아선다.

그래도 갔다.

난..특별히 기도원에가서 기도나 예배하고 나면 느껴지는

놀라운 통쾌함이 있다.

그 경험은 그 형상이 주는 막아섬을 깨뜨리셨다.

잘했다.

그래서,가니......주시는 말씀이 많으시다.

놀랍다.

기다렸다는 듯이 깨달음이 크다.

'기도'가 부족했다.

더 기도하라 신다.

쉽지 않은 것.

하지만 쉬운 것.

기도하고 나니 더 많은 '인싸이트'들이 생긴다.

거기에 '형상', 잘못된 이미지에 대한 깨달음이 있다.

 

오늘 말씀이 '형상'에 대한 것이다.

특별히 너희는 깊이 삼가라 라 신다.  

그 글이 특별히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난..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느낀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체험한다.

절묘하다.

감사한 하루가 될 것이다.

점점 난. ..깨달음이 늘어가고

어느 때인가 내 깊고 깊은 핵심의 부분에 달려들어가

그 형상마져 깨치고

더이상 그 형상들이 이그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락되어진 100프로 순도의 깨끗한 형상으로 대치되면

난.........땅을 살되 천국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때쯤

사람들은 나보고 ' 성 saint.. 누구'라 할지도 모른다.ㅎㅎ

과도한 바램인가?

아니다.

진정한 주님께 바래볼 기도의 제목이 그것 아닐까?

예수님을 닮은 자.

예수님의 향기를 내뿜는 자.

나를 보면 예수님을 연상할 수 있는 자.

 

아멘이다.

 

하나님.

아시지요?

수술 오라 전화와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갑니다.

기쁨 가운데 흐뭇한 마음으로 올라가니

말씀 주신 것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제 자식들,

제 아내도 요.. 같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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