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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사랑 (행4:36-5:11) 본문

신약 QT

공의와 사랑 (행4:36-5:11)

주하인 2005. 7. 30. 21:57

 

36 :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5 :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11 :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1. 생각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아주 파워풀한 역동적 성령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이토록 주님이 강하게 임하시니 우리의 바람은 순풍에 돛단배가 되기를 바라고 모두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바람이 크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부조리한 느낌이 드는 사건이다.

 

 성령이 이리 임하시는 데도 사리사욕을 채우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렇고...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아주 적은 죄- 논리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현실의 죄악의 수준에 비하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나친 징벌인듯한 느낌이 확 밀려온다.  (실은 우리가 죄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신데...

반드시 바쳐야할 상황이 아님에도 밭을 팔아 충성을 바칠 마음을 가진 기특한 자들이...아주 약간의 죄를 지었다고 이리 죽기까지 해서는 되겠는가?

오히려, 불신자와 바리새파 같은 자들은 죽이지는 않으시고...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초대교회 일원으로 등록하려고 결단한 ... ..상당히 기특한 자들인데.............

  죄가 크다고 해도 과연 죽이기 까지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과도한 징벌은 아닌가?...

 

많은 의구심이 들면서도.... 주님은 ’선’이시다... 는 대 명제 앞에 그냥 스쳐 지나갔다.

 

이 구절을 지나오면서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이 우선이다.

 꼭 내 속의 죄가 들킨 듯.... 동병상련적 아쉬움도 슬쩍 느껴진다.

만일 나에게 이렇듯 전 재산을 바쳐야할 정도의 ’성령감동’이 왔을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 라는 물음에는 확신이 안선다.   따라서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이런 징벌에 대한 두려움에 ’공의의 무서운 하나님’ 이미지가 확 ~~~ 밀려온다.


그래서 슬쩍 지나치는 장면이다.

 

 그런데.......................

 

과연 ’주님이 하시는 것은 모두 우리의 선을 위한 것(”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롬8:28”)’이란 성경의 문구를 봐서도, 

또한 예수님께서 그 모진 고통을 감내하면서 십자가 지시고 가실 정도로 대단하게도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이렇듯 십자가 사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의’를 무섭게 나타내 보이셔야 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공의의 하나님을 내세우실 무슨 원인이 있는가?


 우선 이 아침에 약간의 묵상을 통하여 느낌으로 온 답은 ......

어쩔수 없는 ”공의의 상황에서 사랑하는 자를 징벌하실 수 밖에 없는 분의 눈물... ”이시다.

 

해석하면 이렇다.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2천년 이후에 ’월하인’이 십자가 보혈의 은총을 받고  그 여세를 몰아 묵상을 하고 그 은혜를 팀원과 나누고 이 나눔터에 나누며 선한 영향을 이웃과 같이 공유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초대 공동체가 흔들리면 앞으로 수천년이 흔들린다.
예수님을 통한 천국 대계가 흔들린다.

따라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징벌의 표본’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통해 초대교회는 단단해 질 것이며 수천년 동안 이 일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묵상하고 조심하고 스스로 단속하게될 아주 아주 선한 영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안타깝기는 하다.

아마도 이러한 마음으로 주께서는 죽어서 주님곁으로 온 두 부부를 아마 위로하셨을 듯 싶다.

 

” 그래 비록 너희의 잘못은 크고 그 것을 그냥 방치할 시 세상을 향한 나의 대계가 흔들릴 것 같아 너희를 불러 올렸으나 참 마음이 아프구나... ”

 

아마도 이러시면서 등을 두드리시고 눈물 한방울  뚝~ 흘려 주셨을 것 같다.

 

( 그러나, 절대로 이들을 옹호하거나 두둔하는 입장은 아니다.... )

 


 2. 묵상

 

1) 성령 감동이 있을 때 무조건 따르자

 

2) 세상것과 성령은 병행할 수 없다.

 

3) 주님의 뜻은 시기에 따라 ’공의’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랑을 바라고 어리광을 피울 수도 있으나 주님은 눈물을 머금고 ’공의’를 베풀 수도 잇으시다.    그 시간은 주님이 결정하신다.

 

4) 그래도 주님은 사랑이시다.

 

5) 주님은 항상 우리의 ’선’을 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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