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기도 자체가 축복이다.[겔37:1-14] 본문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 하더라
기도 열심히 하고
주님 말씀대로 열심히 기다렸는데 ,
그래서 주님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셨을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기대하고 있는데
갑자기 생각과는 달리 '골짜기' , 그것도
뼈가 가득한 음산한 골짜기 같은
이해하기 힘든경우가 벌어질 때
그것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임하실 때'라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깨닫게 하신다.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그렇다.
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거쳐 여기까지 왔다 .
어느때, 놀라운 주님의 이끄심으로
기도하는 것 보다 더 놀라운 이룸도 주시더니
점차로 잘 안들어 주시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이전에는 일차원 적인 이끄심 같은 경우가 많았다.
열심히 주님 말씀 대로 하려면 '주시고'
아니면 메마르고......
그러다가 조금씩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응답해주시는 것 같은 확신도 있는데
막상 눈 앞에 이루어진 것이 없는 것도 같다.
오늘 뼈에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이나 '생기'가 없다는 것을 보며
느껴지는 동일한 뉘앙스다.
에스겔님이 하나님의 강력한 이끄심에 의하여
(나같으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 다음에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주시려는 데 이러시지.. 기대하였을 때에
뼈로 가득한 골짜기.. 에 데려다 놓으신다. ㅜ.ㅜ;;)
뼈가 사람으로 되살아 나는 기적을 목도하고는 있으나
생기가 없다.
무엇이 되는 듯 하며 안된다.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신다. .
"생기야 사방에서 와서 이 죽은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리고는 군사가 되어 살아난다.
정말 놀라운 장면이 아닌가?
그런데 왜 주님은 한꺼번에 이런 기적을 보이시지
단계로 그러시는가?
무엇 때문이시던가?
죽은 뼈에 살과 가죽이 붙는 것만도 엄청 놀랍지만,
그것에 생기가 없으니 아직은 그냥 시체 같은 약간은 모자란 '기적'이시다가
다음에 다시
사방에서 몰려 들어오는 생기..........마치 미이라 라는 SF 영화보는 듯하게
완성하시는 장면이시다.
그것... '에스겔'에 나를 대비해 보았다.
위에 잠깐 썼지만
어딘가 자꾸 자꾸 끊기는 부분이 있다.
정말 쏟아 붓듯, 내가 이해하던 부분 보다 더욱 축복으로 응답하시는 듯하다가
잠시 주춤하시는 듯하다.
그러고는 또 , 은혜의 시간들이 넘치면서
마치 무엇인가 곧 이루어질 것만 같다.
그리고는 또 잠잠하시다.
그리고는 완전히 군사로 살아난다.
아내와 저녁마다 자기 전 기도하고 잔다.
급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시작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다.
지난 세월 동안 아주 많은 '기적적' 응답을 체험한 터이고
아내의 기도 덕에 정말 나..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잘안다.
많은 체험이 있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확신으로 시작한 작정기도가
수개월이 되면서도 이루어질 듯 이루어질 듯하면서
미련하고 조급한 우리들을 힘들게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조금씩 나에게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것........
이루어 지도록 기도하지만,
실은 기도하는 사실 자체가 진정한 '축복'임을 ..
마음이 즐겁다.
저녁의 기도하는 시간을 시작하려면 솔직히 아직도 '귀찮다'는 생각이 있다 .
죄송하지만.. ^^;
더구나 이루어지는 싸인도 요원하다. ㅜ.ㅜ;
하지만 기도 동안, 기도하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좋은지 모른다.
요새는 그렇다.
기도한다는 사실 자체가 소망이다.
기쁘다.
잔잔한 기다림이 스물거림을 느끼기도 한다.
뼈가 살아나는 것,
보는 놀라움이야 있지만
에스겔님이 하나님의 일 자체를 기뻐하는 선지자 가 아니었다면,
솔직히 그런 기적이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는 선지지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듣는게
그의 '소명'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은
진정으로 '어제'의 묵상처럼
우리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함이시다.
그 이름을 위하여
나는 '기도'를 할 제목을 부여 받은 것이다.
그렇다.
고난과 고통,
심지어 재물이나 세상의 축복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의 기쁨을
느껴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시다.
그분과 동행하며 대화하여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축복'임을 깨달아 보라시는 것.
나.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응답이고 축복임을
조금씩 깨달아 간다
감사하다.
주여.
늦게 수술을 마치었습니다.
감사하나이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
주여.
주님께 기도하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세상의 모든 현상들,
저의 달란트와
저의 부족한 것,
저의 가진것
저의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
기도제목과 감사제목이 되지만
그 기도와 감사를 하는 사실 자체가 진정한 주님의 뜻임을
다시한번 깨달아 갑니다.
주여.
함께 하려할 때
더욱 기쁨을 주소서.
소망으로만 넘침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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