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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심 [겔35:1-15] 본문

구약 QT

주님의 사심 [겔35:1-15]

주하인 2012. 10. 16. 08:51

 

깃발이 해를 가릴 기세로

하늘을 찌르고 있어도

 

아무리 그들 사이가 좋아

모두 다 잊었어도

 

온 세상을

빛이 비추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처럼

 

하나님의 사심은

너무도 당연하다

 

잊고 있는 것이

진정한 죄이고

잊었기에 흘리는 것이

피같은 죄일 뿐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말씀이 매일 내게 이르신다.

이렇게..

그러나, '임하여 이르셔야 한다'

그 몫은 내 탓이다.

 

 

6.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에게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말씀은 이렇게 나온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

여호와 , 스스로 있으신 자

온전하신 자 .

온 우주에 '대상'이 필요 없으신 하나님.

그 분이 오늘도 살아계셔서

당신이 살아계심을 알도록

나에게

그 분의 사심을 알고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맹세한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신다.

 그분의 살아계심을 오늘 하루도 느끼고 잊지 않기 위해서

그분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활자와 교훈에 지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그 분이 내 영혼에 임하시도록

받아 들여야 한다.

 

' 피'

죄값, 죄의 눈앞의 결과적 현상.

그 피를 미워해야 한다.

주님 때문에 그래야 한다.

그 분이 살아계심을 느끼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내 영혼에 임하시게 하시기 위해서 그리하여야 한다.

그분이 말씀으로 맹세 하시기에 그러해야 한다.

그분, 그 온전하신 분, 여호와께서

나를 비쳐 주시는 '대상'으로서

내 삶을 비치는 거울로서 계심을 체험하고 깨닫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

그 왜곡되지 않은 온전한 거울로

내 머리 속의 수많은 왜곡된 경험으로 인하여 비틀리지 않고

내 영혼 깊숙이 들어오게 하시기 위해 그래야 한다.

'날 위해 몸을 바치시는 하나님이 계실 만큼

난 사랑받기에 합당한 자'임을 깨닫고

그 깨달음으로 인하여 더 이상

왜곡의 심상을 메꾸려는 갈증어린 갈구,

괜한 욕심, 괜한 명예욕, 괜한 철학, .........으로 인하여 더 커지는

이 영혼의 갈증이 없기 위해서라도 그리해야 한다.

 

피를 멀리해야 한다.

피를 씻어야 한다.

피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11.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 대로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심판할 때에 그들이 나를 알게 하리라

 

 또 그러신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고

미워하게 하시고

질투하게 하는

'죄'를 멀리하라.

'피'를 멀리하라.

 

 

 어제 ,

계속 희망적인 말씀으로 채우셨다.

'복'

'복된 소나기'

'하늘 문'

' 땅의 소산' ..............

감동덜하며 습관처럼 묵상을 채워가다

환우를 맞이 했다.

수술 하시기로 하신 분.

비뇨기과 적인 문제가 걸려 있어 협진 의뢰를 했더니

'희한'한 답글이 왔다.

전화를 하니 '특유'의 개념없는 그 P선생은 어이없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방어적 언행 - 솔직히 난 그렇게 밖에 인식이 안되었고 지금도 그렇다. -을 하면서

괜히 언사를 올린다.

이 개념없는 분께 '협진'을 가능하면 안해야 하는데

요새 젊은 세대는 거의 전분야에 비슷한 흐름의 의식을 보인다.

'자기 문제' 만 아니면 그냥 위 아래 , 환우가 없이 짜르고 넘어가는.............

'환우의 입장'에서 한번이라도 발걸음을 덜하게 한다...는

기본적인 도리 문제는 '멀'~ 다.

솔직히 난 그리 받아 진다.

그리고 '과거'에 있던 '도제 '같은 '의사들의 상하 구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미풍으로 지켜져 왔던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다. ..

그래서 '짜증' 이 났다.

몇 번 그런 일들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말씀에 맞추어

자꾸 내려 놓으려 했지만

'흔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나의 상황 판단이 '정말' 내가 옳은 느낌인가.....다.

옳은 생각인 것 같지만,

실은 내 반응이 너무 앞서가는 것은 아닌가 헷갈릴 때가 있다.

내가 옳은 생각은 맞는 것 같지만

이 세대에 내가 너무 맞추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당혹감도 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절대적 기준 자체를 거부하는 이 '포스트모더니즘' 적 시대에

내 것이 옳다.. 고 주장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다고 '환우'의 입장에 서는 '의료'인의 기본 면에서도 그것을 흔드는 것이 맞는가?

그리고.....실은

난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

'예수님을 위하여 나의 낮아짐을 기뻐하는 것'이 '약함이 강함'되는 원리다.

그런데.....

그것을 알지만

그것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

과연 의술적으로도 미련한 자..... ^^; .. 를 용인해야 하는가?

그들의 병폐적 행동양식을 그냥 '낮아짐'으로 참아야 하는가?

.....................

생각이 하루종일 밀려온다.

'화'가 났다가 '하나님'께 죄송했다가...

머리가 복잡하다.

낮추려다가 아닌 거 같다가..

 

묵상의 글을 멈추고는

더 진행하기 힘들다.

'복',

'사이 사이' ............

 

퇴근 시간이 되어서 ' 문헌'을 찾아서 '메일'로 보내며

잘못을 지적해주었다.

그리고는 '약속' 잡아 주신 분과 나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이 조금 가닥이 잡힌다.

'사이 사이' 내 날실을 엮어주시는 하나님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복된 소나기가 복된 소나기로 받아 들여지지 못했음은

어쩌면 내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받아 들이지 못한 탓일 수 있다.

그것..............그렇다면 죄이다.

말씀이 어제 하루 진정 축복으로 다가오지 못했다면

그것은 '죄' 탓이리라.

그리고 그것이 아니고

그러한 어려움 마져 주님의 뜻이고 그게 복이라 시면

그 사이에 ,

그 빈틈에 ,

늘 복이란 편하고 좋은 것 만이라 생각하는

그 생각의 빈틀에 하나님이 사이사이 내 삶 속에 들어와

'아니다.. .이러 이러한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이다... ' 라시며

그 간극을 촘촘히 메꾸어주시려시는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복은 이게 진정한 복이 될 수가 있다.

어려움은 어려움이고 실수는 실수지만

그 속에서 조금씩 주님의 뜻 가운데 하나하나 나에 맞추어

깨달음으로 채워 가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포용하고 누릴 수 잇는 깊은 영성으로 날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복의 소낙비'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도 말씀 정리하여 블로그를 채우는 행위는 안했다.

죄송했지만 내 영적 상태였으니...

주님은 아시리라 생각햇으니

주님은 아실 것이다.

그리 믿는다.

그게 내 성장의 복이다.

 

아침

출근하니 '미움'의 생각들이 다시 깐죽인다.

말씀을 들여다 보니

'피' .. '피.. 피.. 피.. 하신다.

세일산의 에돔인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지만

나.....과연 이 마음이 에돔인의 마음은 아니던가?

좋은 소리만 듣고 평안한 상태만 유지하려는..

이스라엘의 형제같은 민족이지만

그들의 강할 때는 조용하다가

약할 때만 파고들어 적대적 행위를 하는...

나의 에돔의 죄,

피의 죄를 멀리해야 한다.

'그제야 하나님의 사심'을 내가 깊이 느끼고

그 분이 내게 맹세하는 강한 임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다.

오늘은 '무조건' 인내하고 참겠다.

미련하다가 분노하고

약하다고 정죄하는 이런 죄를 더 이상 짓지 말자.

그것이 그들이면 그들을 피해서

환우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가자.

그게 옳다.

그리고는 '빌어주자'

이 어이없는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나의 잘못된 판단일 수 있는 오류의 교정을 위해서도..

 

 

적용

1.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늘 사셔서 내 곁에서 맹세하시고 이끄신다.

  잊지말자.

 

2.  예수님의 고난, 하나님의 살아게심.. 그분의 고난에 동참함

 

3. 피

 더 이상의 정죄는 '피'다.

 피묻히는 것이다.

 미워하지 말자.

 의분을 가지지도 말고 , 내 혼자 세상을 고치려 하지도 마라.

 주님이 하실 부분이다.

 그냥 내려놓는 게 죄에서 멀리되는 것이다.

 

4. 내가 할 일은

 어른으로서 정체성이다.

 인내하고 참아주고 좋은 눈으로 봐주고 부족한 부분은 기도해주고..

 

5. 성경 세장 읽자.

 

 

기도

 내 주 하나님.

어제는 그랬습니다.

말씀은 잘 이해는 되었지만

그 말씀이 내 상황과 하나도 맞지 않는..

살아계시지 않는 하나님.............??? .. 의 미혹이 날 스쳤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들고 있으며 '사이사이' 역사하시는

내 부족한 부분을 꿰매시고 새롭게 만드시는

우리 주님,

그래서 내 삶의 한 조각을 다시 이어가시고

어이없는 상황 조차

복된 소나기 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셧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피같은 죄를 짓지 말기를 권하셧습니다.

그래서 '스톱'하려합니다.

죄된 욕구에서 멀리하게 하시고

크리어 컷하게 제 영혼을 정리하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내 모든 부족을 잡아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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