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 얼마 후 [삿15:1-20] 본문
1 얼마 후 밀 거둘 때에 삼손이 염소 새끼를 가지고 그의 아내에게로 찾아가서 이르되 내가 방에 들어가 내
아내를 보고자 하노라 하니 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 얼마 후 ' 란다.
얼마 가 얼마일까?
얼마 후가 삼손에게는 어떤 느낌의 얼마 후 였을까?
그 얼마 후가 되기까지 얼마 동안
삼손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 소풍가기 전의 아이의 마음이나
그리운 여인을 만나기 위해 하루 종일 근무도 어찌하는 지 모르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퇴근 시간 만 기다리다
장미 꽃 한송이 뒤에 숨기고 흥얼거리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 연인의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기는
그런 연상이 가능한 상태가 아닐런가?
이 천하의 삼손이 '염소새끼'를 가지고 아내를 찾아가는 게 .. .
그 얼마 후의 표현이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장면이지 않던가?
그 얼마 후
그 얼마 후는 내게는 어떤 일이 겹쳐지기에 '얼마 후'라는 단어가
가슴을 흔들며 들어올까?
기대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려왔던 CJ.
그 과정에 불끈 불끈 느껴지는 하나님의 영의 움직이심을 느끼며
이젠 다 정리가 되어
앞으로 나가는 일만 남아 있겠구나...
그 나가는 길이 비록 '고센'의 환경이라도
나와 하나님,야곱과 하나님 만의 깊은 교제의 순간으로
세상이 다 알아질 것 같았던
그 감격의 시간..
기대의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
2 이르되 네가 그를 심히 미워하는 줄 알고 그를 네 친구에게 주었노라 그의 동생이 그보다 더 아름답지
아니하냐 청하노니 너는 그를 대신하여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라 하니
아니,
몇번이나 '네 아내는 네 친구에게 주었다' 는 장인의 냉랭한 말처럼
뒤통수를 때리는 강력한 일들이 있기도 했다.
추석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얼마후.. 는
기대를 무너 뜨리게 하시는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 아니실까?
하지만,
그러함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의도가 있으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참새하나도.... 아니시던가?
4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 마리를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가지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 홰에 불을 붙이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 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들을 사른지라
이 구절을 넘어오면서
늘 당혹스러움을 멈추지 못하겠다 .
한편으로 놀라웁기도 하고...
이 삼손의 거칠은 성정(性情) ~
이러한 자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뜻,
이 시대에 이러한 자가 쓰일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님의 뜻은 그러기에 반드시 내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으실 수 있고
그러함은 뛰어난 탤런트를 가진 자일 수록
더 크게 마음을 키워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하여 이해가 간다 .
한편,
삼손은 어찌 여우 삼백마리를 붙들 생각을 했을 것이며
여우는 어찌 그렇게나 많이 그곳에 서식했을 것이고
그 삼백 마리를 하루에 다 잡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훨씬 편한 다른 아이디어로 블레셋을 골탕먹일 생각을 못했을까?
삼손이 골통은 골통인가?
그런 그가 빨리 잡았다 해도 300마리를 어디에 보관했을까?
다 잡을 동안 보관할 우리나 동굴은 있었을까?
잡힌 여우가 두마리씩 꼬리를 묶일 때까지 가만히 있었을까?
거기에 홰를 달기 위해 많은 홰가 필요했을 텐데 그 수작업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것들을 다 옮기어 블레셋 밭에 풀어 놓기 위해서는 또.. ..
....
한마디로 '미련' 하거나 '기적'이거나..다.
이 미련한 자는 기적을 행하시는 것도 기적인 줄 모르고
무대뽀로 행하고 있다.
그게 하나님을 단순하고 우직하게 믿는 삼손의 장점이지 않을까?
나.
저런 것을 당혹스러워하고
하나님 앞에 더 폼나는 것을 하여야 한다는
내 영적 강박은 아닐까?
내 스스로에 대한 깊은 '자괴'가 아직도 나를 힘있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난.. 누구이고
난 왜 오늘 여기에 서있는가?
내가 하여야 할 일..
단지 회개하고 쭈구리고 앉아만 있어야 할까?
기다리는 게 옳음을 알고
주님을 앞서지 않으려는 조심은 당연하지만
모든 것을 내 수준의 '식탁 , 탁자 정리 ' 수준으로 깔끔 떠는 과도한 조심은 없지 않은가?
삼손이 쉽게 쉽게 기적을 이루어 내는 것.
그의 거침 안에 숨어 있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단순한 믿음이 아닌가?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하나님의 영,성령께서
갑자기 임하셨다 신다.
이제는 늘 함께 계시고 지속적으로 함께 계심이
내 온전한 바램의 목표이긴 하지만
때가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면 강하게 몰아치시기도 한다 .
이 갑자기 임하심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반드시 할 일을
반드시 해야 할 자들의 손을 통해 하신다.,
나..라고
안될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가?
내 지금 이 혼돈 스러운 상황을 이유로
난.. 안될 거라고 단정할 이유가 있던가?
하나님이 임하시면
당연히 무슨 일이라도 가능하다.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턱뼈'가
무기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것으로 '천명'을 죽이기도 하는
웃고 싶기도 놀랍기도 한,
예상을 만화처럼 뛰어 넘으시는 하나님의 행사하심이
참 놀랍다.
그냥.. 맡기고 살면 된다.
얼마후를 기대하여도 된다.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삼손이 삼손의 최후를 맞이한 것은
그의 회개치 않고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의 그러한 어이없는 경박함이
하나님의 손을 통해
세상을 치리하는데는 하등 부족함이 없으셨다.
하나님의 '선'이
반드시 내 욕구에 따르는 '선'과 차원이 다를 수 있음은
세상을 향하여서도 옳으시고
내게도 선한
가장 '선'한 것이기에
초조함이나 경박한 기대는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삼손은 이십년이나 사사로서 떠 받침 받았으니
그 개인에게도 '선'으로 인식될 만한 축복은 넘치도록 주신 것 .. 맞다.
오늘 내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무엇을 '얼마 후'를 시작으로 삼손의 행동을 통해 내게 보이시려시는 것일까?
얼마 후는 지금의 내 심사다.
잘 나간다고 생각하고 행복하다고 외치며 살다가
갑자기 '뒤통수' 맞은 듯한.. .
누구에게 뭐라 정확히 얘기할 수는 없는
지금 현재의 내 모습.. !
하나님이 내 마음을 읽어주시는 것이시다.
그것 만으로도
하나님은 살아계신 매일의 증거 아니신가?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 이게 축복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선의 일부이시다.
거기에 앞으로 '기적'들이 일상에서
삼손이 여우 잡듯 일어날 것이며
그러함에도 그 가장 큰 기적 중의 하나인 그 여우잡이 기적이
내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그냥 흘러 가버릴 일상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르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기'만 하면
난.. 내 인생의 싸움에서
승리로 다시 기록을 유지해갈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시다.
힘이 난다.
감사하다.
얼마 후 있었던 그 일에 대하여 툭툭 털자.
다 잘될 것이다.
또 잘될 것이다.
내 뒤통수를 후려치던 일들 보다 더 큰 축복이 날 사로잡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러하신다고 메시지를 보내신다.
살아계신 내 하나님이..
주님.
감사합니다.
하루라도 빠짐없이
내 모든 것을 '말씀'에 투영하여서
위로하시고 인도하시는
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여.
전 비록 삼손 같은 우직한 절대의 믿음은 없지만
그럼에도 말씀을 통하여 닮아가려 노력합니다.
제 얼마 후였던
그 시간들이 완전히 버려야하고 돌이켜야만 하는
안절부절할 일들이 아니고
그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계기임을 깨달아 알게되니
훨씬 자유로와 집니다
'
주여.
제 손의 장미를 거부한 그를 불쌍하게 여기시고
늘 붙드시고 인도하소서.
전.. .여우 잡이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억울한 마음을 풀고픈 욕구는 있사오니
주여.. 그 마져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시사
해결하소서.
우리 주님.
당신 만을 의지합니다.
제 이십년의 영적 사사 역할이
주님이 약속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도 '선한 결과'로서
지금보다는 더 나은 현실도 좀 허락하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
그 귀한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 ( 2007.12.18 13:58 묵상 글 )
어제는
병원 '산소비 센터 직원'들의
송년회가 있었습니다.
따라온 아이들이
너무도 이뻤습니다.
이 이쁜 아가들 보는 기쁨이
엉터리 같은삼손 같은 보는
주님의 마음을
조금은 읽혀 지게 했습니다.
이뻐라~~
4. 삼손이 가서 여우 삼백을 붙들어서 그 꼬리와 꼬리를 매고 홰를 취하고 그 두 꼬리 사이에 한 홰를
달고
5. 홰에 불을 켜고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곡식 밭으로 몰아 들여서 곡식단과 아직 베지 아니한 곡식과
감람원을 사른지라
이것도 기적이다.
여우가 삼백 마리가 동물원에 있던 것도 아니고
잡았을 텐데
여우 굴에 대가족을 이루어 살 것도 아닌 것을
아마도
이야기의 진행상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잡았을 것을
잡아도 어찌 보관하고 어찌 묶었을 까?
또한
더 쉬운 방법이 있을 것을
여우를 이용한 번거러운 방법으로
블레셋을 골탕 먹일 생각을 했을까?
어찌 되었던
모두 주님의 뜻인게
어제 묵상에 나와 있다.
'기묘자' 예수님 ~~
기기 막측하시기도 하시지..
8. 블레셋 사람을 크게 도륙하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거하니라
이렇게 하고 나서
바위 틈에 거한 이유는 무엇일까?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서 인가?
그렇지는 않을 듯 싶다.
나귀 턱 뼈로
블레셋 사람들을 모두 물리칠 용사가 그럴리가...
바위 틈에 거했다는 것으로 보아
숨어 있는 것이 맞을 개연성이 충분한데
정말 두려워 해서 숨어서 지냈던 것이라면
왜 그랬을까?
아마도
성령이 충만할 때는 괴력을 발휘하다가도
그렇지 않을 때는
힘도,
담력도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바위 틈에 거할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도 했을 까?
두려워 했을까?
기도했다면
깊은 주님과의 만남을 누리고 있었을까?
그의 성품적 성향을 보아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은
여호와의 성령이 임하면
즉시 힘을 쓰게 된다.
이것을 보아서도
위의 도피의 이유를 짐작할 수도 있다.
주님은
삼손에게만은
좀 특별히 임하신다.
'갑자기'
'동시에'
'크게'
감동하게 하실 만큼 급작스럽게 임하신다.
삼손은
다른 사사들과는 또다른
'Solo' 사사다.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이 모이고
조직을 형성하고
그 힘을 이용하나
그는 철저히 혼자다.
다른 사사들은 대화하고 물어보고 하나
삼손은
일방적으로 주님이 임하셔서
그의 특별한 힘을 사용하신다.
주님의 응답은
독창적이고
무궁무진하다.
개인적이고
보편적이기도 하다.
무엇하나
인간의 상궤에 가두어 비추어 볼
정형이 없으시다.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명을 죽이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 일천명을 죽인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나귀의 '새' 턱뼈라는 표현은
처음 보게 된다.
아마도
주님의 성령이 급하게 임하시며
삼손이 대단한 힘이 솟아나게 되며
순간
옆에 없었던 나귀 턱뼈가 하나 생겨난 듯 싶다.
표현 상.
이게 무슨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
새 턱뼈.
급작스러운 성령의 충만함.
아이 같은 삼손의 믿음.
외골 수 .
외로움
자꾸만
논리적 - 실은 가장 바보같은... - 생각으로
이러이러한 이유로
저들은 되어도
난 안되어..라는
하나님을 가장 열심히 믿는 척 하면서
가장
비 신앙적이고
가장 세속적인 생각을 통하여
주님을
내 틀에 맞추려는 것을 제한하려 하시는 것인 듯 싶다.
주님은
주님 의 뜻대로
필요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을
눈에 뜨이지 않게
슬그머니
기적을 베풀어 놓으셔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
그가 비교적 왕따의 행동을 하는 독특한 자녀 일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시다.
새 턱뼈는 기적이다.
눈치 채이지 않게 나타나며
자격 없는 자에게는
시체의 썩고 남은 흔적에 지나지 않지만
필요한 자
자격이 되는 자에게는
가장 훌륭한 무기가 된다.
아무런 걱정도
아무런 의심도
아무런 염려도 필요가 없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심지어는
썩고 남은 시체 마져도 무기가 된다.
그 시체의 뼈조각이
손에 잡히는 데 가져다 놓여 지도록 하시기도 한다.
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
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삼손은 참 어리다.
종적을 걷잡을 수 없는 자다.
목말라 죽겠다.. 고 어린아이처럼 떼쓴다.
그럼에도
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하나님은
물을 주신다.
단순
무식
유치한 믿음이
기적을 마구 가져온다.
주님은
가장되고 교만하고 선한척하며
구제하고 칭송받으며
주님을 덜 자주 찾는 자 보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유치하지만
살아 있는 아버지 대하듯
조르고 떼쓰며 현실감 있게 찾는 이들을
훨씬 더 이뻐하신다.
적용
1. 나에게 '새 턱뼈'는 무엇인가?
2. 기도하고 손내밀면 잡히는게 새 나귀 턱뼈다.
의심하지 말자.
성령의 충만함을 기도하자.
3. 성경 다섯 장 읽겠다.
4. 어제 기도 중 '성령이 임하여 크게 감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가슴이 '툭'하고 터져나가는 통쾌함.
오늘도
묶인 줄이 떨어져 나가는 체험을 할 수 있으려나?
손내밀어 잡은 것이
내 무기가 되려나?
기도하겠다.
5. 오늘은 당직이다.
사고 없기를 기도한다.
6. 내 삶이 혹, 바위틈의 도망자 같은 느낌이 들어도
주님을 만나는
허심 탄회한 시간임을 인정하고 기뻐한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찬양하고
주님이 급박히 임하셔
내 인생을 힘있게 이끌어 갈
그 급작스러운 삼손의 성령 사로잡힘을 체험하길 원한다.
빨리..
손아귀에 새 나귀 턱뼈를 증거로 잡혀 주소서.
그것이 무엇이라도..
기도
주님.
삼손의 단순하지만
힘있는 모습을 봅니다.
전체적으로 본받기에는 무리가 있는 성품이지만
그의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여
기적을 일상처럼 일으켜지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닮길 원합니다.
힘이 들고
필요한 것은
달라고 조르고 싶습니다.
주여
특별히 오늘은
당직을 서는 날입니다.
당직서고
찬양하고
잠을 자고
....
힘이 있는 삶을 허락하소서.
바위 틈에 숨어 있는 듯
외로워도
그 시간이
주님을 만나는 시간임을
기뻐하게 하소서.
혹여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어도
곧 잡힐 나귀 턱뼈를 기대하게 하소서.
멋지게 승리하게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그리스도 이름아래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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