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렇게 최선을 다할 때[눅3:18-38] 본문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세상 사람들 다 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안하시던가?
그냥 하셨다.
이게 '성숙'한 것이고
하나님의 원리다.
세상의 원리를 나름 존중 하신다.
아무렇지 않게..
만일 .. 정말.......죄스러운 상상이지만
내가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하나님이신 입장에서 하등인간들의 .. 어이없는 세례 행위에 과연 .. ㅜ.ㅜ;;
거기에 그런다고 해도 얼굴표정하나 바뀌지 않을수 있을까?
방금 환우 분께서 앉으셔서
너무도 당연한 질문 ( 그분께서는 당연히도 걱정되는 문제들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서는 미련한... )을 되풀이 되풀이 하신다.
나름 최선을 다해 답을 해드리려 ( 내 생각에는 난.. 이만큼도 많이 성장한 거다.. ) 노력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자꾸만 얼굴이 굳어지며 귀찮으려 했다.
다행이도 더 이상의 변화가 내 속에서 일어나기 전 환우 분께서 나가셔서 다행이지
매일 매번 똑같은 미련한 (^*&*()_^$%_)(* .. ) 질문을 들어가며
20몇년을 의사생활하는 것도
감정적으로 피폐해지는 감정 노동자가 아닐 수 없다 .
특별히 여자만 다루는 산부인과 의사일바에야..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주하인..........?............우주......영원 ...
거기에 창조주이신 예수께서 .................비록 사람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지만
그에 비하면..이 먼지.......버러지보다 못한 존재인 우리 인간을 참으시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의 손에 '세례'를 받는 자리에
당신의 순서를 가장 앞자리에 대우 받는 것도 아닌
아무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모든 순서를 다 맞추어 세례를 받으심은
그것 만으로도 '자아'의 부인의 특별한 징표가 아닐런가?
아예.. 늑대 소년처럼 늑대랑 같이 컸기에 자신의 체면이나 위신.. 의 자아의 개념을 모르거나
지체아가 아닐 바에
어찌 자아가 다치는 것을 그리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실 수 있는가?
수십년의 면벽을 하고 참선을 하는 '도인', '스님'들 조차
죽을 때 '수미산'보다 많은 죄를 탄식하며
결국 자아를 죽이지 못하고 죽어가고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그토록 논리적 근거를 통해 진리의 근본에 도달하고자 애썼던 문제들이
바로 ' 자아'를 부인하여
자신이 어떠한 불이익을 당해도 자연스럽고 아무렇지 않은
그러면서도 그로 인하여 감정이 메마르거나 억압되어 상대적으로 폭팔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자신을 놓아 흘려 보내는 것이
'도'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닌가?
그들을 깨달은 자라 명명하며..
하지만 그것.. 자아를 부인하고 자아가 없어지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영'이 그 자리에
내 영혼의 지성소에 '나'란 이름의 세상의 영이 나가고
온전하신 내 안의 성전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됨은 그들에게는 없지만
우리 기독교인은 '자아'는 죽고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이 우리의 내면에서 살아 움직이셔서
성령으로 그득 그득 교통하는 그런 자가 됨이
하나님,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면서
우리에게 보이고자 하시는 근본이시다.
보라.
하늘문이 열리지 않는가?
오늘 내게 하늘 문이 열림을 같이 보게 하신다.
자아가 부인되고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 되면
하나님이 저처럼 기뻐하실 것이시다.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셔서
그 기쁨을 세상에 표하시는 것이시다.
나도 그래야 한다.
병원을 오늘 내일 , 그리고 수요일까지만 근무하면 그만이다.
참...불신자들의 병원에서 근무하는게 14년 만의 처음인지라
많이 당혹스러웠다.
사람은 어디나 다 똑같기는 하여
나름 미션 병원은 복작거리는 사단의 궤계는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기대'보다 어이없는 면을 보고 속상한 바였지만
이것은 ... 참.. 아니다...다.
그래도 하나님의 원리 안에서 게임을 하려는 자들과
마구잡이로 '불신'과 '오해'와 '갈등'과 '궤계'를
아닌 듯이 펼치는 모습들로 많이 당황했다
속상했다.
그래서 많이 '질타'를 하고 싶었다.
실제 '대표자 ' 한분은 어이없는 행동으로 공식적 사과를 받아냈다.
눈에 보이는 많은 부조리들이 이 '준 공무원 병원'에 있어서
하루에도 몇번씩 머리를 치는 어이없음에 대한 징죄를 하고픈 욕구들이 밀려온다.
나갈때 가까이 되니.. 이 병원의 발전을 위하여서도..라는 명분으로
하나하나 본질적인 지적을 해주고들 싶다.
그런데 마음에 자꾸 부담이 오는 것은
'그러함에도 참으라'는 것이고
'그러한 내 욕구는 내 자아의 기승'이라는 느낌이다.
거기에 대한 내 반대생각은 '이렇게 눈에 보이는 부조리를 가만히?............그거 도피 아닌가?.. ' 라는 생각이다.
어느게 옳은지 잘모르겠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내게 강하게 드는 생각은
'내 근본 동기는 내 잘나고 싶은 간절함'이다.
똑똑한 내가 , 무엇인가 이 병원에 흔적을 남겨 , 많은 사람들에게
주하인은 옳았다.. 주하인을 건드리는 자들이 잘못되었다.. 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충동.
그거.
가만히 그 바탕을 들여다 보면
모두 '내 자아'가 발로다.
세상 사람들의 사는 '동기'는 모두 '자기 만족'의 확인이다..라고 심리학자 누가 그랬다..
그게 없으면 여기까지 역사가 굴러오지 못했을 거라고..
그렇다.
그렇게 자아라는 개념은 어느 정도까지는 살게 하는 이유가 된다.
자아가 건강하게 성장해야 튼실한 인격이 된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께서 자꾸만 벗어 놓길 원하시는 것이시다.
예수님 처럼 그렇게
모두를 벗어 놓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존심이 없듯이 그렇게 그렇게 하시다가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목도 하시면서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시기에 그 분의 자아의 자리에 강하게 꽂힘으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하나로 이어지는... ..
그게 우리에게 본이 되어
이 땅의 '원죄적' 존재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자아'가 왜곡되이 강하게 된 것을
서서히 건강한 자아로 '습관'되어지고 커지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가 되면
이제는 '자기의 것'을 포기하는 것 만이
오직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엇음을 깨닫고
내 마음, 내 기준에 어긋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시기에 '순종'하기로 '선택'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강력히 임하셔서
하늘문이 열리고 우리의 머리 위에 강하게 내려 앉고
우리의 영혼 안에 좌정하시어
좌로나 우로나 앞뒤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
움직이고 반응하고 그것 만이 유일한 행복이고 기쁨임을 깨달아 가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가 부르실 때
성화된 인격으로 주님 앞에 가게 되는 것.. .
그게 원리다.
오늘 주님은
오늘 같은 나에게
이제 서서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결단을
매사에 하길 권하시는 것이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자아가 부인되고
주님처럼 그렇듯 그렇듯
주님 말씀으로만 기뻐지는 삶되게 하소서.
오늘 그리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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