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On my way, only with Spirit [눅4:14-30] 본문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시면 못하실게 없을 것이다.
맘이 불편한 것도
몸이 불편한 것도
성령의 '능력'으로 그러신다면
불편한 것을 넘어서서 놀라운 능력이 발휘되지 않겠는가?
그것도 예수님이신 바에야..
주여.
저도 매사에 '성령의 능력으로 ' 감전되게 하소서.
가능하면 제 능력(특별히 이전과 달라진 내 인격..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적 능력도..^^*) 이
그 감전으로 폭팔되듯이 개발되게 하소서.
주여....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NIV : went on his way, 갈 길로 가시더라)
예수님이 하신 일들은
기존의 원리랑 많이 상치되었다.
기득권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가치에 반하는 소리가 있으면
'화'가 난다.
자신의 무지가 들추어지는 게 무섭고 기존 질서 이외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지게 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여 개선하려 하기보다
그 소리를 차단하려 하고 막아서며
자신들에 대한 도전을 '화'로 대처하기로 결정했다.
그 화가 무지한 집단에서 일수록,
좁은 지역사회 일수록 ,
과거일 수록 더욱 심하다.
그래서 그들은 제한없는 '악'을 행하려 하고 있다.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한다.
이 잔인한.......
이 천인공로할..
이 무지하기가 '강아지'보다 못한...........ㅠ.ㅠ;;;
그런데 그러한 무지, 집단 이지메, 무저항성 두려움의 확산이
오직 우주에 홀로이신 '사랑'으로
너무나 안타까우신 긍휼의 결정체로
세상에 肉化 하셔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어이가 없는 일이겠는가?
(아.. 절대적으로 나....인간의 눈으로 본 관점 ^^;;에서 말이다.
하나님의 미리 아실 능력과 그러함에도 선택의 기회를 위하여 오신바에야
담담히 받아 들이시고 "십자가 " 사역을 차곡차곡 이어가시겠지만.. )
이 어이없는 무지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이 오늘 내게 허락하신
레마이시고 '관점'이신 듯하다.
그 분 예수님.
하나님이시자 인간이신 ... 그분의
놀라우신
기묘한
하나님이시자 인간이신 모습의 한 단면이 여기에 보인다.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시더라"
NIV에는 "예수께서 즉시 몸을 돌려 그의 길을 가시더라"라 나온다.
그거..
저렇게 끌고 언덕, 낭떠러지 까지 끌고 갔을 텐데
어찌 가능할까?
마치 SF영화나 만화 영화에서
안개처럼 스르르, 그것도 몸이 잠시 '잔상'처럼 그들 손에 잡혀 있는데
그들의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스며 나와
가만히 군중을 나와
미련 없이 갈길을 가시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렇지 않고 어찌 저런 상황이 가능할까?
이 잡혀 끌려가는 인간의 모습과 상상하기 어려운 묘한 연출의 마술같은 모습이
한 구절에서 묘사되고 있다 .
난 그들 가운데로.....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지는 '지나가시더라'에서 마음이 탁 풀린다.
그 분.
위의 내가 '인간', 아니 지금 '주하인'의 마음 깊숙이 동하고 있는 심사의 뒤틀림으로 보아
저들의 저러함이
'은혜를 원수로, 그것도 지독한 미련함과 독살스러움의 극치로 갚는'
어이없어도 너무 어이 없어
뭐라고 한마디... 아니 천벌을 내리거나.. 최소한 천둥 번개라도 치게 하여
모두 벌벌 떨며 땅에 무릎 꿇게 만든 후
하늘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 이 세상에 미련한 인간들아..
나.. 갈곳없는 너희 지옥 백성을 위해
이땅, 이 천한 곳에 살신성인 하며 몸바쳐 내려왔건만...
너희들은 이게...............!!!!!!! " 하며 외치고
그냥 혼내고 싶은 마음 더 이상은 자제하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그 자리를 벗어나면
조금이라도 속 시원 하겠건만.......
주님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시다 .
단지 저런 신묘한 모습을 기점으로
주하인 .. 이 미련한 자가 무언가 깨닫기를 바라시며
레마를 남기실
그 세심한 배려 만을 남기시었다 .
다행이도 , 감사하게도
주하인
상황에 틀리지 않도록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을 내 하루에 비추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로'라 신다.
그들이 아무리 뭐라고 무섭게 날뛰어도
그 사이를
그들이 모르는 특별한 방법으로
그냥 '가로지르고 ' 나오신다.
그들은 '예수님의 상대가 아니시다."
나.
인생의 머저리들(^^;;;;)이 너무 많이 눈에 뜨인다.
병원에서는 똑같은 것을 아주 쉽게 설명해도 못 알아 듣는 '환우 머저리..(죄송..ㅜ.ㅜ;;)
자기의 본분을 모르고 '의술'보단 '정치력과 권력욕'에만 몸부림 치는 의사 머저리들( 죄송..)
후배 알기를 자기 손의 구슬처럼 아는 '선배 머저리'
예의와 범절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리더 머저리..
교회에서는 봉사가 모든 영성의 다 인것처럼.. 텃세하시는 머저리..
음이 틀린지도 모르고 마이크를 가져다 대며 더 크게 '봉사'하시는 찬양 머저리...................^ㅜ.ㅜ;;
와...
왜 내 눈에는 이 '군중' 같은 잔인하고 머저리 같은 머저리들 만 보이고
왜 그들의 하나하나 단점들이 내 눈을 파고들며
왜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지... .
하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아무런 일말의 반응없으시며
'군중을 가로질러'
그냥 차분히........
당신의 길을 (on his way)가신다.
오늘 내게 그러신다.
'군중은 반응할 상대가 아니다.
불신 자들은 기대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존재다.
네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드러난다.
네 일상은 성령의 능력을 의존하라.
그리고 가라.." 신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이 이 곳 근무 마지막 날입니다.
14년 만에 미션병원이 아닌 곳,
그것도 지역 사회 깊숙한 곳,
그것도 의료원이란 조금은 '공무원' 행정이 많이 잔재하는 곳에서
다양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
그리고 '의료'의 본질 보다는 행정적인 것, 조직에서 눌려서 풍기는 약간은 버거운 냄새..
그 안에 모여든 분들의 캐릭터의 충돌...................
다양한 경험들을 했습니다.
결국 이곳에서는 이곳의 특수 상황에 맞는 많은 연단들을
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일년이 지나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문제들은 결국 '내 자아'와의 싸움임을 목도 시키고 훈련시키시기 위함이심을 요.
아버지..
그래도 그 증거가 오늘 예수님 처럼
저들을 가로질러
자연스레이
물 흐르듯
연기가 바람에 흐르듯
그들의 모든 어리석음, 과도한 분노, 불신의 자기 존중의 극치, 그 기득권의 몸부림,
끝을 모르는 비 이성적 파괴의 욕구...........를 헤치고
단지 자기 길을 가시는
우리 예수님 처럼...
그리 되길 원합니다.
순간순간 '멋지게 한 소리'하고
아니면 ' 이 병원을 위한 조언'을 한마디로 하여주고 싶고
그들의 조금만 코칭해주면 그와 그 주변이 편해질 것 같아 질책성 한마디를 해주고 싶은
충동이 불뚝불뚝 듦은
어쩌면 고운 포장지로 포장한 썩은 내 자아인 듯 싶고
군중 안에서 몸부림 치고 싶고
그들을 공격해서 하나라도 제압하고 싶은 이 미련한 자아가 용틀임 하고 있음입니다.
주여.
분명코 오늘 말씀을 비추어 제 하루를 적용해보면
그런 '자아'의 움직임이
군중의 소요를 유발하여 그들도 다치고 나도 다치며
전혀 예수님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영적이지 않은 '모습처럼 보일 것이 쉽게 예상이 됩니다.
그러겠습니다.
그들의 부족함에도
전 조용히 '제 갈길을 가겠습니다. '
그들의 소리지름, 비아냥, 웅성거림...
다 사단의 궤계 안에서 썩어가는 세상의 그들임을 알고
전 제 자아를 다시 제 영혼 안으로 품어 올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정화 시키고 태워 버리는 ' 그런 노력 만 하겠습니다.
제 길 만을 가겠습니다
덜 흥분 됩니다.
덜 자아 각성 됩니다. ㅎ
주여 감사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오직 성령.
오직 내 주님 하나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은 이러셨다[눅6:12-26] (0) | 2016.01.19 |
---|---|
해도 될 일들[눅6:1-11] (0) | 2016.01.18 |
네 것 주님 것 & 내 것[눅4:1-13] (0) | 2016.01.12 |
그렇게 최선을 다할 때[눅3:18-38] (0) | 2016.01.11 |
가중된 어려움의 본질에 대하여[눅2:21-38] (0) | 2016.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