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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를 알고 계신다[창15:1-21]

주하인 2014. 9. 16. 10:22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의 이 소리.

' 하나님.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합니까?'

 이 소리의 깊은 본심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구하는 것,

하나님께 여쭈어 보는 것.

하나님께 하소연 하는 것..

그것은 분명코 훌륭하지만

그 뒤의 소리를 보라.

나이 그렇게 많은데 아직 아들이 없는데

바라기는 하지만

맘에는 포기하고 있어서

하나님이시라도 가능치 않으실 이야기는 아니던가?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시니 '속상한 마음'을 다 내려 놓고

하소연이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이 아닌가?

그게 정확할 것이다 .

그렇다면 그게 '믿음'인가.. 혹 의혹,  불신앙인가?

어찌 구분할까?

 

실은 이러한 구분이 중요한 것은

나름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게 '불신앙의 죄'일지도 모를 두려움 때문에

아주 많은 깊은 신앙인들 조차

주님 앞에 더 나가지 못하고 주저 앉아 버려

늙은 닭의 신앙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아브람의 이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합니까?"라는 고백이

오늘 내게는 절절한 원함의 본질인 것 같고

인간의 한계,

신앙인의 어려움의 본질인 것 처럼 느껴져

새삼 가슴을 흔든다.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공의로 여기시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는다'

그래서 공의로 여긴다... 하신다.

분명코 그는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뉘앙스의 어조로

하나님께 하소연 했는데.. .

그것을 뭐라하지 않으시고

그분은 '아브람의 믿음'만 보셨다 .

그리고 그를 공의를 소유한 자로 여기셨단다 .

 

그것..

어디까지 믿음의 수준을 높이냐도 아주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

개인의 특성,

그 사람의 자라온 환경,

믿음의 시간..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시는 정도...........

그 복합적인 결과로 인하여 그가 어느 정도 성숙되어가는 지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

그러기에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믿는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며 주의 말씀을 듣는 가와

그가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는 가이다 .

나머지 , 성장 부분으로 인한 가장 아름다운 물음과 믿음의 정도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 아직 아브람의 그 허탄한 조롱투의 말에도

하나님은 이리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시다.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것...

아는 것이

나에게

많은 자유를 준다 .

난. . 단점이 많은 자다.

정말이다.

무척 급하고 다혈질이다 .

좋게 표현해서 그렇지 욱.. 하면 .. 끝이다.

매일 올라오는 죄성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러고 나면 난.. 깊이 죄송함을 느낀다 .

그래서 한동안 주님 앞에 나가기 힘들었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래도 나간다 .

그래도 '날 의롭다' .. 내 믿음을 .. 주님이 기뻐하셔서

내게 ' 네가 나 , 여호와를 믿으니.. ' 라시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난 하나님 앞에 나간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이 내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믿게 되고

그것은 나로 '소망'이 커짐을 의미한다 .

 

소망이 있는 삶.

매일 매일 소망을 인정하며 사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

나이 불문, 날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

영생을 약속까지 하니..

점차 두려움이 없어지고 가벼워 지기에 그렇다 .

 그분이 내게 '이땅을 주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빼어낸 하나님'이시라니

그렇다 .

 

감사하다 .

 

 

주님.

오늘 하루.. 수술 하고 나니 또 반나절이 다 지나가고

따사로운 햇살이 조금은 뉘역거리는

그 시간이 또 왔습니다.

정처없이 시간만 보내어 버리는 것 같고

오늘 무엇을 해도

더 이상의 의미가 없을 것 같던

그 어두움의 시간들은 점차 멀리 지나가고

참 가벼히

지금의 이 부드러운 가을 날씨의 양광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글을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주님.

제게 주시는 말씀을 알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게는

''아직 주여.. 제가 이루어 깨닫지 못하는

막힌.. 그래서 마음을 잠시 흐트리면 몰려들듯한

무거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이 땅에서 인생이

꼭 그리 행복하지만 않을 것 같아요.. ' 하고 외치고 싶은

'아브람의 갖지 못한 축복'인 아들에 대한

허탈한 외침이 저와 비슷한 듯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믿고

하나님으로 인한 소망은 있지만

어딘 지 모르게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

그런 조금은 안정되지 못한 믿음 .. 말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하게

그런 나를 알고 계신다. .. 고 하시는 듯

주님이 위로하십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 .무거우려는 마음을

주님이 이렇듯 도장 찍으십니다.

 

그게 좋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묵상을 놓지 않고 잇습니다.

살아계신 내 아버지를 만나는.. .

정말.. 저는 이토록 부족한 믿음이지만

주하인.. 네가 나를 믿는 구나.. 하시니

그게 정말 감사합니다.

예수님..

살아게신 하나님 아버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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