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러할지라도[창31:1-16] 본문
나, 주하인아
그러할지라도
.......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반드시
나와
함께 하실 것이시다.
할렐루야 !
1.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이십여년을 함께 한
사촌 형제들이
재산을 앞에 두고는
야곱을 모함한다.
그동안, 20여년간 어찌 지냈을까?
그들이 놀렸을까?
그렇진 않더라도 버걱 거렸을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을까?
그렇지만, 오늘
그들은 재산을 앞에 두고는 '야곱'을 원수로 여기려 한다 .
2.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라반도
얼굴을 바꾼다 .
3.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서
역시
하나님께서 나타나 이르실
그 지점에 와 있다 .
4.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그러자 만반의 준비를 끝낸 야곱은
긴밀히 아내 들을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나름의 역사를 실행하려 하고 있다.
정확히는 그들, 외삼촌과 사촌 형제들의
그에 대한 친절도
야곱과 사촌형제들 사이의 친분에 대하여서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주 살가왔던 상태라기 보다는
약간의 거리가 있던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친한 듯하지만
어딘가 모르는 벽이 있는.......
5.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20여년을
비록 친척이긴 하지만
타향에서 남의 집 살 때
거기에 어찌 인간 관계의 버거움이 없고
어찌 어려움이 없었을까?
자기 집에서 조차 '형'인 에서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살았는데........
하지만.. 그 야곱의 성품상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서 하루 하루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얻어지고 소출되는
나름의 작은 터 (가족, 재물, 힘.. )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른 것은
그 삶....에 파묻히지 않고
항상 준비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되
세상에 매몰되지 않는.......
그리고 그 때는
'상황'의 변화와
그를 통하여 알아차리게 된 '징조'를 가지고
계속 하나님의 싸인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
여기서
오늘 내게 보게 하심.
'인간관계'의 버거움... 이다.
그 버거움은
어디에나 있다.
심지어는 가장 가까워야 할 '형제'와 사이에서도 그렇고
어쩌면 피를 나눈 가까운 이웃이어서
형제보다 가까울 이웃사촌(^^*)인 사촌 들과의 관계도 그러하며
어머니의 오빠인 외삼촌과의 관계도
아내들끼리
아내인 형제들끼리.......
어디에나 갈등이 있고 어려움이 있으며
심지어는 '물질'과 연루되면
하루 아침에 '적'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그래서
비록 이성으로 , 옷으로, 철학으로.....법으로
포장으로 가리고 막아서지만
'짐승'과 다름없는게
우리 네 인간이 분명하다.
또 한번 확실한 사실을 눈에 두고는
실망이 들려하고 있다.
그런데......
수천년의 역사를 뒤집어 보아도
수억만리의 거리를 두고도 너무도 똑같은
인간들의 그 추악함, 그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허락되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그들과 하등 다름없을
나.. 는
그들을 혐오하고 그들에게서 떨어져
독야청청,
홀로 고고하게 사는 것 같이 산다고
무엇이 다를까?
그게 주님이 좋아하심일까?
어쩔 수 없이
뒤에 줄줄이 달려오는 내 식솔, 내 가족이란 무게 때문에
가면쓴 웃음을 짓고는 있지만
하루하루가 야곱의 두려움 같은 두려움을 키워오며
도망칠 궁리만 하고 살까?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다시 야곱으로 돌아가 본다.
그.. .
매일 양을 치면서 마주할 형제들에게
웃음을 보내고
지나치며 농담하고 툭하고 어깨한번 치고....햇으리라.
그러면서 같이
남자로서의 통하는 농담도 건네고
장난도 하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를 서운함, 아쉬움.......은 있었으리라.
(굳이 외삼촌의 박한 대접을 떠나서라도.. )
그리고 마주하는
걱정하던 '인간관계의 파국'의 실체에 마주함.
사촌 형제들의 악한 소리.
대놓고 얼굴 바꾸는 '라반'
이것........
그냥 서운히 생각하고
끊어지는 인간 관계의 아픔만으로 두려워 하거나
그러함에 대하여 '외로움', 절망(버려지는 상황......연속....)으로 만 받았다면
그 , 야곱은
자살을 해도 그리 욕할 수 없을
어려움이 분명하기도 하다 .
.... ㅠ.ㅠ;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러한 인간 관계의 버거움에 의하여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형에게서 살인 위협,
친척들에게서의 배반과 위험한 상황.....에 대하여
그냥 받아 들였다 .
그것을 내면화 시켜
좌절이나 절망으로 자신을 썩게 하지 않았다.
그게 중요하다 .
그것을 말씀하시려 함이신 듯하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그들은 안타까워 하고 불쌍히 여길 존재지
의지하거나 의뢰할 대상은 아니다.
...
그렇다 .
그는 그렇게 받은 듯하다.
그들의 배반을
그는 또 아무렇지 않게 받아 냈다.
그리고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그는 묶이지 않았다.
풀어내서 다른 방향을 찾아냈다
이것..
과연 '긍정적'이고 지혜로운
그의 성품으로만 보아도 맞을까?
위의 계속 풀어온 관계의 문제에 대하여
선천적으로 저렇게 태어나서 자유로울 자 .. 몇이던가?
현대의 세상.
자살자나 우울증 환자 들이 부지기수다.
갈수록 더 늘어간다.
그게 대부분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파고 들어가보면?
그리고 그 인간관계의 버거움 바탕에는
인간의 '죄성'.. 원죄적 이유 때문이고......
그를 인식하는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외로움'이다.
관계를 끊겨 느껴지는
자신의 인생의 우주가 무너져 버려
더 이상의 살아갈 존재의 이유나
자신을 자신으로 인식하게 해줄 대상(형제, 가족........친구.)이 없어짐.
그 외로움... 말이다.
그 외로움을 가리려는 '분노'......'무기력'........말이다.
그런데
그 야곱이 다른 것은
위에 써 놓았듯
다른 반응,
긍정적 반응이고
그 반응의 근간은
때가 되어 나타나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을 놓치지 않는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가장 큰 끈, 소속으로 삼은
정말로 옳은 선택의 야곱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보라.
오늘 고백이
그의 그러함을 그대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할 지라도'
이 소리가 힘이 있다.
20년을 몸바쳐 헌신한..........그 자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려도....
사방이 꺼져 내려도.. 말이다 .
그래도 살아갈 힘이 있음은
'내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는
저 고백 말이다
그렇다 .
난...
확실히 안다.
수도 없이 많은 인생의 질곡을 거쳐거쳐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이 연약한 마음에 상처가 갈갈이 앉아 버리고
천지와 지축이 무너지는 경험
(장난처럼 시작했던 대학교 때의 첫 연애의 파국^^;;
의료 사고로 병원 이전, 개업하던 병원 닫고 레지던트로.. 봉직의로..
과정에서 나몰라라 하던.....
열심히 봉사하고 찬양하던 리더 자리 내려놓음....의 버거움..
현재 직장으로 옮기던 과정의 믿는 자들의 버거운 반응들.....
성공한 친구와의 괜한 격조감.................잠시만 되돌리려도 이리 아프다.ㅠ.ㅠ;) 때
얼마나 많은 인생의 고통이
날 짓눌렀던가?
그때마다 ......%$^&*()_....ㅠ.ㅠ;; .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며
시간이 지나자
도저히 고백하기 어려운 일들이 다가와도
그러할지라도
라고 고백하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 힘이
이제는 생겼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리도 오래 친하던 친구들이
다양한 이유로 인하여
친구의 아들이 결혼하는 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나름 이해는 된다.
상황과 시간이 ..........ㅠ.ㅠ;;
그러고 나니
괜히 외로운 생각이
내 안 깊은 곳에서 스물스물 몰려 나오려 한다 .
주님을 기대하며 기도하여 가라앉혔지만
마음이 약~간은 불안정하다.
아마.. 내 깊은 외로움의 흔들림이 밀려오는 듯하다.
이제 남은 시간.......늙어가는 일만 남았는데
이 외로움이 적어지지는 않을 것이 두려운 듯했다
아.
아직 하나님을 믿고 내려 놓음이
내게는 부족함을
절감하고 있다.
아침에
여지없이 머리 한구석에 상념이 자리하려 한다.
말씀을 들여다 보니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라는 구절이 가슴에 온다 .
'야곱'의 저 어려움속에서도
차분한 대응은
흔들리지 않음의 정체가
그러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였음이 밀려온다.
잘 안다.
잘알지만 잘 안되는 것을
주님이 이렇게 또 다시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모양이다.
감사하다.
주님.
길게 늘어 놓았습니다
아마.. 야곱의 상황에
지금의 내 마음을 투영해서 인가 봅니다.
주님..
그러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내 안의 쓸데없이 다가오는
이 허탄함들.......
살아계신 주님 앞에 내려 놓으니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오늘도 내게 함께 하게 하소서.
붙드소서.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이 모든 허무한 현상들
다 사라지게 하소서.
주님 만을 의지함으로 채워지게 하소서.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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