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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리의(딤전 1:1 -11) 본문

신약 QT

나의 우리의(딤전 1:1 -11)

주하인 2008. 8. 16. 08:55

제 1 장 ( Chapter 1, 1 Timothy )

 

 

 테라스의 철장을 통해 본

산허리의 십자가.

 

테라스의 철장은

내 마음 속에 들어 앉아서

편견에 서린 눈으로 보아왔던

세상을 나타내는 듯,

멀리 보이는

푸른 산, 높은 하늘 아래의 십자가는

내 나아갈 방향을 보이는 듯하다.

힘이 솟는 듯 하다.  ㅎ

 

 

 

 

 

아파트 아래로 

내려도는

실개천의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주님을 묵상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는

내 귀를 휘감아 돌고

 

 

 

 

 

오늘 따라

올려다 보이는  하늘은

어찌나 

 푸른지요.

 

주님과 함께한

아침의 짧은 묵상시간이

참으로 고요하고 황홀 했답니다.

잠시 묵상하고 들여다 본

오늘 묵상성경 구절의

우리 구주 ,하나님 , 우리 소망 , 예수님 , 긍휼평강 등의

단어들이 꿀처럼 달게 들어옵니다...

샬롬

 

평강의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렇게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말씀은 하나님이셨어요.

특별히 오늘 아침

저에게요..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긍휼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져서

내 방 테라스에

침대를 뒤로 기대 앉아

멀리 보이는

산허리의 아침 하늘과

그 산아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을 묵상했다.

 눈을 감고

주님을 집중하려하니

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정겹다.

계곡의 물소리가 콸콸 들린다.

 

 

내 귀를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시원히 스쳐 지나간다.

 그 스치는 바람에

내 피부는

신선한 느낌을

내 중추 신경에 전한다.

 슬며시 감아 버리기 前

내 눈을   

하늘 색과 산의 빛깔이

십자가의 여운과 더불어

날 고요히 고요히 가라앉힌다.

 십자가의 잔영이

내 영혼에 점차로 커져간다.

 그 분의 허락하신

이 평안 가운데

 가만히 있는다.

오랜 말씀 묵상의 '기간' 탓인지

머리 속에 슬며시

기뻐하는 말씀 구절이 떠오른다.

 혼돈 속으로 날 흔들려던

잡 생각 들의 파워가

서서히 가라앉는 듯하다.

 대신

알지 모르는 평화와 기쁨이

내 영혼 어디선가

피어오르 듯 올라온다.

 아이들과 아내를

내 평온 속에 불러 올린다.

답답할 마음보다는

주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것 같은

안도감이 날 사로잡는다.

 

 깊은 평강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눈을 뜬다.

 묵상집을 들여다 본다.

 

우리 구주

우리 소망

은혜

긍휼

평강

....

현실감 있이 다가오신다.

 

'내 구주' 하나님

그 구원해주신 나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내 구주를 넘어

'우리' 구주가 되시길 바라신다.

내 아들 들의 구주.

내 아내의 구주.

내가 아는 자들의 구주.

모든 이들의 구주가 되시어야 한다.

 

 '내 소망' 예수님.

그렇다.

그 분 만이 내 소망이시다.

나는 어려서 부터

별로 삶에 그리 집착이 없었다.

좋은 것도 아주 좋지를 않다.

돈도 많은 것도

하나도 부럽지 않았고 않다.

젊었을 때는

차하나만 가지면 되고

나이가 든 지금은

여행하는데 지장 없을 정도 ( ㅎㅎ 이게 돈이 들기는 하지만 돈 자체는 아니다 ㅎ. )이외

돈이 많은게  부럽지 않다.

그래서

소망이 그리 별로 없다.

어쩌면 그러한 내 나른한 의욕없음은

현실에 드라이브가 적어

성공하지 못하는 필연적 현상이 될지도 모르고

내 자녀들에게

내 아내에게 그리 큰 혜택을 주지 못할 지도 모르긴 하지만

그게

주님을 쉽게 깊이 만날 수 있는

또다른 장점이 될 지 몰르긴 한다.ㅎㅎ

 어쨋든

그 별로 낙이 없는 세상에서

날 움직이고 있는

힘이 있다.

열정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기뻐함'이고

' 예수님이 날 위로하심'을

'성령'을 통하여 느끼고 인식함이다.

가끔은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이것이 혹시 거짓은 아냐?'라는

의구심이 들고

그 때마다 냉랭하게 가라앉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그래서 이 어리석고 나태한 영혼에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열정이

날 사로잡는 경험이 되풀이 되며

주님은 살아계시고

그 살아계신 주님이

날 사랑하시고

난 그 사랑 안에서 죽을 때까지

충성하고 살아야할 존재임을

점점 더 영혼 깊숙이 인식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힘이 들고 삶에 부닥쳐

옛 구습이 나올 때

좌절할 때

그 힘없음으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을 때가  종종있다.

 

 주님은 오늘 아침

소망이시고

구주이심을

이해가 아니고

말씀의 교묘한 논리가 아니고

그냥

말씀으로 느끼게 해주시고 계신다.

아침의

고요한 묵상의 시간을

기다리셨다기나 하듯이

그 소망이 사실이고

내 살아갈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신 시켜 주시는 듯하다.

날 구원하신 구주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느끼게 해주신다.

내 노력이 아니고

말씀하신게 사실이고

사실이 말씀이시고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내 부족한 영혼에 사실로 각인 시켜 주시는 것이시다.

  

 그 분은

그 것을

'은혜'라고 하신다.

'평강'을 주신다.

그러시면서

'긍휼'이 여기실 것을 느끼게 하시고

긍휼이 내가 가지고 가야할

또 다른 덕목임을 명심케 하신다.

 

 

 이 '내' 소망을

'우리 소망'으로 바꾸어야 한다.

 아침의 내 영혼에 각인되는 말씀이 그렇다.

 

말씀으로 나에게 가지게 하시는

또 다른 부담은 이것이다.

 사도 바울은

소망이신 '예수'님의

'명령으로'

'사도'가 되었다는 점이다.

부럽다.

사도가 아무나 되나?

그리고 난 그 명령을 들었을 사도 바울의

사도되기 전 그였다면

얼마나 부담이 왔을 것인가가 먼저 가슴에 온다.

그러면서

그는 3년의 광야에서의 내적 투쟁을 거쳐

그 명령을

용광로에 제련하듯

고통으로 연단을 받고 나서야

사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하니

그 힘듦이 짐작이 간다.

 난,

사도라 받을 자격이 없음이

먼저 다가온다.

그러기에 명령을 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내 소망이신 예수님이..

아니

솔직히 그 분이 내 소망이심이

확고 부동이 불타듯이 오지 않는다.

위에 썻듯이

약해져 가는 열정이

그 분의 이름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나오는 느낌정도이다.

그렇다면

저렇듯

놀라웁게 명령을 받아들이고

전 인생을 불사를

그 자신의 정체에 대한

확고부동한 인식은 언제나 생길 수 있는 것인가?

 

오늘 아침은

예전에 느끼던 그 평강의 느낌이

오랫만에 살아 나오는 듯하여 기쁘고

그 기쁨에 조금은 더 명확하게

말씀으로 인지됨이

예전 보다는 한걸음 더 나간 듯하여

기쁘다.

 긍휼히 행할

오늘 하루의 내 삶의 태도를 결정지어주심도

기쁘다.

 주님은 살아계심이

진실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느껴져

지속적으로

내 소망없던 삶이

에너지로 채워질 것이 기쁘다.

그리고는

조금 더 기다리고 있으면

주님께서

언젠가 나에게 정말 합당한

'명령'으로 오시고

그를 통하여

내 노후의 삶이

조금은 더 뚜렷한

진실의 목표로 채워질 것이 기대가 된다.

 

 

 

적용

 

1. 사랑하자.

 내 감성에 맞지 않는 자도 긍휼히 여길 하루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몸부림 ^^;;  치자 !

 

2. 기도원 간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내일 있을 '예술 공원에서의 찬양'을 위하여 기도하겠다.

 

5.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뻐한다.

 

6. 난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이다.

  내 소망을 넘어

 우리 소망이 되어야 한다.

  난, 하나님이 내 구원의 주님이시다.

 우리의 구원이 주님이 되시도록  전하자.

 ..................

 전했다.  세명..    

그 중 한명은 내일 교회 - 병원 교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야호 !

 

 

 

기도

 

주님

놀라우신 주님

당연히도 주님을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그 삶 속에서의 내 엉터리 같은 죄는

날 자꾸만 가로 막아

진실이신 하나님을

소망이신 예수님을 자꾸만 잊고

혹여 ..

하는 마음으로 의심케 만들고 있습니다.

솔직히

앞으로도 그리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

그러나,

주님은 예상치 못한 기쁨으로 절 잡고 계십니다.

살아계셔서 틈날 때마다

절 깨닫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내 잘 잘못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평강으로

성령으로 날 잡아 이끄시는

이 원리를 알게 해주시고

그리 체험케 해주심을 찬양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긍휼하길 원합니다.

주여

주님 안에서

좀더 겸허하고 차분히 있을 수 있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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