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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토스트에 임하시는 구원의 감동(렘 1:1-10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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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토스트에 임하시는 구원의 감동(렘 1:1-10 )

주하인 2009. 9. 1. 10:32

(렘 1:1-10 )

 

 

푸른 하늘이

외로운가?

자유로운가?

 

현재의 멈춤이

쉼인가?

버려짐인가?

 

부는 바람이

시원한가?

두려운가?

 

......

 

그게 무엇이든
난 
주님과 함께한다.

난 
저 푸른하늘에 
녹아 들어 간다.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언젠가

어떻게 이든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실 것이다.

 단,

뚜렷이인가 희미하게 인가?

언제나 인가?

선택적인가...의 차이 일 뿐....

 

주여.

저에게도 뚜렷한 말씀이 임하시길 간구합니다.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님의 말씀으로

그의 삶이 뚜렷이 결정되어 버렸다.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난 부럽기도 하지만

자신이 없기도 하다.

주님이 '선지자'라.. 가족과 삶을 버려라.. 하실 것만 같아 두렵다.

아직은 난 '아이'다.

성인아이는 이제는 아니지만

아직도 영적으로 '아이'인 것만 같다.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

 주님은 이런 나를 아시기에 아무  말씀 하지 아니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
난 '아이라'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처럼 절박한 ,

주님의 말씀에 나가지 못할 나름의 사유가 있다.

도저히 .........

주님은 아신다.

나도 이제는 뚜렷이 안다.

 

 주님은 '예레미야'님에게는 말씀하시지만

나에게는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오늘의 묵상은 예레미야를 통해 그 시대의 상황을 펼쳐보이시는

성경의 활극을 감상하라는 말씀이신가?
나에게 큐티로 다가오실 때는 어떠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던가?

과연

일상의 다람쥐처럼 되풀이 되는 이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이 신기하게도

'주하인아, 너 지금 부터 선교사로 나가라'.. 이렇게 하시는 것 만이

내 믿음의 나가야 할 결국이란 말이던가?

그러한 전제가 없고

그것이 예레미야 처럼 비젼으로 될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묵상을 접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지금껏 매일 매일 묵상을 접해오지만 나의 일상 하나하나를

지도하고 인도하시던 분이 아니시던가?

 

'바라옵기는

아직은 부족하여 꼭 주님의 일을 목숨걸고 할

대단한 비전을 가진 자로서는 아니지만

내 일상에서 주님의 뜻을 따라 살 자로서

내 이 후반의 삶에 힘있게 나아갈 비전을

주님이여 말씀으로 강하게 잡아주소서.'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님에게는 이렇게 설명하신다.

'두려워 할 것 없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입술에 말을......'

 

 구원하신다.

함께 하신다.

와 .. 힘이 난다.

장래가 탄탄대로로 느껴지며 걱정이 하나도 없어진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휘황찬란한 BMW나 벤츠, 롤스로이스를 타고

적색카펫을 밟고 다니며

손들고 사자후를 발휘할 때마다

모든 사람이 벌벌 떨며 영광.. 을 외치는

그런 삶은 아닌 듯하다.

예레미얀 눈물의 선지자다.

읍소해도 들어주지 않는 왕따의 삶이 40년 가까이 되풀이 될 운명이다.

그런 그에게

'함께 하신다.

 구원하신다.'라 하신다.

 

구원과 함께 하심의 의미가

우리가 막연히 사역이나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자 할때

머리 속에서 환상으로 그리는

그러한 화려한 삶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저러하신 말씀을 하신 뜻은 무엇인가?

그 분이 거짓말을 하심이 아님이 분명하고

상황을 모면하려는 '환상'을 불어 넣으심도 아님이신데

왜 그러실까?

무슨 의미신가?

 

 그것은 이러한 것이다.

상황은 분명코 어려움이 따라올 것이지만

그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샬롬'의 영혼을 유지할 수 있다면

상황이야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주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의미는

그의 내적인 통합성 ,

그의 영적인 성화

그의 영혼의 평강을 의미하는 것이지

상황을 변화 시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난'

그것을 바라는가?

 바란다.

외부적 상황도 축복이 따라오면 좋다.

그것은 주님의 영역이지만

주시지 않아도 오늘 주님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듯

강력한 확신으로 내 영혼을 두드리셨으면 좋겠다.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영혼의 평강이 날 붙들면 좋겠다.

 

 

 아침에 약간 시간이 남았다.

걸어나오다가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토스트 ' 집에 들어갔다.

소세지 토스트.

아직도 아이처럼..ㅎㅎ.. 소시지를 좋아한다.

입에 베무니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운 맛이

소시지의 짭자름하면서도 톡톡 터지는 것이

내 어린 입맛을 찌릿 찌릿 자극하면서

허전한 내 위장을 달랜다.

 연습하는 읊조리는 기도로 자그마히

'주님이여 감사합니다.

 이 맛을 느낄 수 있는 혀를 주시고

 이 맛을 볼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허락하시고

 이 맛을 알 수 있는 금전을 주시고

 이 맛을 만들려 노력하시는 .... . 감사합니다. '

 갑자기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강력한 행복감이 순간 내 영혼 속에서 밀려온다.

깨달았다.

 주님의 뜻을 생각하는 아주 조그만 노력, 즉 말씀 묵상을

기뻐하는 주님께서 당신의 구원의 기쁨

함께하시는 자의 평강을 잠시나마 체험시키시는 것이시다.

 그것은

주님이 위의 예레미야님처럼 강력하게

실체화되셔서 나타나시면

그 얼마나 대단한 구원의 감동이 될 것인가...

그것은 세상의 조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될 것임을

당연히도

소시지 토스트 하나에도 느끼게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감동이 늘 몰아치신다면

아니, 늘은 아니시겠지만

두려워 하는 시간이라도 임하시면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고 그리움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약함이 강함이 되는 것이고

 낮아짐이 높아짐이 되는

그 역설의 하나님의 원리시다.

그 비밀이시다.

 내가 하려면 두려움이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면 기쁨이고 감동이 되는 것이다.

 

 괜히 아침에 불안으로 시작할 뻔 했다.

그것을 주님은 말씀으로 막으시고

말씀의 살아계심으로 체험시키신다.

 

 난 감사하다.

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옆에 두고

그 말씀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갈 기회를 가졌다.

이제 간구하는 것은

아직도 내 안에서

'아이처럼 ' 두려워하는 그 상황에 대하여

또한, 막연히 짐작으로 내 후반을 설계하고 있는 그 상황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예레미야님에게 하시는 것처럼

'너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 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너의 그 아이같이 두려워 하는 것은 내가 막을 것이다.

 그 눈을 잡을 것이며

 그 혀를 막을 것이고

 그 얼굴을 부싯돌 처럼 굳힐 것이다.'... 라고..

 

 

 

적용

1. 기도한다.

 소리내어 내 음성으로 기도하자.

 묵상으로 기도하자.

 주님 만이 날 살리실 분이시다.

 주님의 평강과 은혜 만이 오직 유일한 내 생명의 원천이다.

  내 삶의 유일한 방향이시다.

 

2. 나는 아이와 같다.

 그 아이와 같은 내 한 부분을 주님께서 만지시길 기대한다.

 기다린다.

 말씀이 임하시길..

 

3. 성경 일곱 장 읽겠다.

 

기도

 

 주님

전 이럭저럭 많은 부분을 이해하고는 있습니다.

나의 곤란.

나의 곤란의 이유.

나의 곤란의 예후...

거기에 임하실 주님의 따르시는 동행.

동행에 따를 내 평안함의 결과.

그 것의 놀라운 기쁨.

평안.

평강..

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주여..

아직은 내 가슴에 깊이 안내려 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여유만 조금 생기면 솔직히 걱정과 갈등이 스물거리려 합니다.

괜한 두려움이 날 사로잡으려 합니다.

주여.

이제 간절히 빌것은

주님의 말씀으로 절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좋은 것은 좋게 받아 들이게 하시고

안좋은 것은 덜 안좋게 받아 들이게 하소서.

주님의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실 방향을 믿게 하소서.

기다리는 인내를 허락하소서.

주여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의 영성

 

-시와 그림-

 

 

 

나의 작은  이름이 주보다 드러난다면...

 

그 분의 크신 이름 뒤로 시들어 떨어지기를...

 

나의 짧은 생애에... 막이 내리는 날 까지...

 

내가 걸어온 이 길위에 나의 흔적 남지 않기를...

 

내가 걸어온 이 길에... 누구의 이름 남을지...

 

내 안에 있는 나에게 비켜서라고...늘 말하네...

 

그렇게 내가 바라는 소망이 하나 있다면...

 

그 분의 이름 그 뒤로 비켜서는 것...

 

 

 

(간주)

 

 

 

 

내가 걸어온 이 길에... 누구의 이름 남을지...

 

내 안에 있는 나에게 비켜서라고... 늘 말하네...

 

그렇게 내가 바라는 소망이 하나 있다면...

 

그 분의 이름 그 뒤로 비켜서는 것...

 

 

예수의 이름 그 뒤로...

 

물러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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