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래도 다른 이유(삿20:29-48) 본문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41.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그놈이 그놈인데
두번은 저쪽에
또 요번은 이쪽에
승리를 거두시게 하시고
그 승리의 모습 조차
여호와께서 직접 앞서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는 모습을 뵈면서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전후 좌우 고려하지 않고
묵상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다른 주님의 대우는
열 한지파 연합군의 열렬한 기도에 있다.
27절에 '언약궤가 거기에 있고'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두번의 실패를 통하여
낮아질 만큼 낮아진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진실하게 매달린 결과이다.
그 결과
주님은 그 들의 기도에 촉촉히 응답하셨다.
응답하시면 놀랍게 응답하신다.
파죽지세.
히스기야의 천사군대.
와호장룡의 기적...
순간 떠오르는 도우심의 모습이다.
몇가지 생각되는 점이 있다.
기도는 기도다.
아무리 기복적 기도라도
주님은 기도를 좋아하신다.
그 분에게 처절히 매달리는 기도는 당할 자가 없다.
단, 전제가 있다.
주님을 주님으로 모셔야 한다.
'언약궤'가 마음에 있어야 한다.
마음에 있기 위해서는 낮아져야 한다.
낮아짐은 철저한 회개를 동반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늘 성공하고
늘 일등을 하고
늘 힘이 있어서는 안될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연합군이 두번의 깊은 실패 가운데야
겨우 그 들의 앞에 언약궤를 두었다.
아니,
이전에 두었을 수도 있지만
새삼 눈에 들어온 것은
그들이 실패로서
낮아진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오늘 묵상은 그런 의미에서
몇가지 희망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주님은 사랑이시다.
어찌 되었던
스스로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 자라 해도
주님의 혼남을 얻어 좌절을 받은 자라해도
그것은
주님을 깊이 만나기 위한
주님의 경고일 뿐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또하나
낮아짐과 고통과 힘듦과 가난함과 실패와...
모든 가지고 싶지 않은 단어들은
실은
주님을 깊이 만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
주님을 촉촉히 알고
세상을 성공위주의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감동섞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통이 우리에게 올 때 어찌 해야 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잘못에 의한 것인지
주님의 뜻에 의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잘못은 과감하게 회개해야 한다.
회개가 안되면
고통은 길어질 뿐이다.
그리고
고통은 주님의 평강을 얻기 위한 길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
주님 앞에 잠잠해야 한다.
그 분 앞에 힘듦을 내려놓고 기다려야 한다 .
때가 되어
내 영혼의 지성소에
성령께서 임재하시게 되면
실패와 고통은 멀리가고
영혼은 평안으로 가득차게 되며
엮이고 매인 환경은 풀어지게 된다.
삶의 문제들은
어느새 주님께서 다 풀어 주시기도 하고..
적용
1. 성경 열심히 읽겠다.
6장
2. 회개할 것 빨리 회개한다.
3. 고통은 주님 앞에 내려놓고 기다린다.
4. 당직 설 때 사고없이 해주시길 기도한다.
5. 내년 계획표 신중하게 짠다.
6. 사람보다 주님 본다.
연합군이 사람 믿고 실적 믿고 분노하다 질책과 고통을 당했다.
정신차린다.
7. 늘 주님 앞에 있음을 명심 명심한다.
기도
주여
기도가 잘 안나가네요.
아마도
언약궤를 앞에 두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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