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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일어섰다(행9:32-43)

주하인 2007. 9. 28. 12:40

제 9 장 ( Chapter 9, Acts )


 
34.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 이 덩쿨은 수천번을 꺽여도 주님을 위해 일어날 듯 보입니다. )

  
  일어나다.

 

세번이나 눈에 띤다.

더구나 애니아에게는

일어나서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신다.

그 일어남을 보고

사람들이 주를 믿는다.

 

 일어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애니아는 팔년 된 중풍 병자다.

그는 그 시대의 의학기술로 치유가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고

있다해도 설령 금전적 뒷받침이 되었을 가능성이 부족한 자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그 중동의 더위와

그 시대의 불결함과 가난함 등에

치유에 대한 희망의 부재 등의 이유로

아마도 굉장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

그 시절이 팔년이다.

 

그러다가 '베드로'가 꿈결처럼 다가온다.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

' 일어나라'

' 자리를 정돈하라'

 

거기에 어떠한 설명이나

일어날 이유에 대한 당위성이나

일어나서 앞으로 해야할 계획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다.

 

 어제는 아내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들은 간증이라고 한마디 건넸다.

간병인 아주머니께서 20대 초반에 결혼하고 몇일 안되어

목이 부어올라 진단을 받으니

갑상선 종양이라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비 130만원.

당시에 집한채 값.

결혼하자 마자 시댁에 떠 안길 그 부담이 너무 죄스러워

남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넋을 잃고 방황하길 수일.

그렇게나 거부당하면서도 늘 전도지를 건네던 'S'교회의 집사님이 두고가신

전도지에 실린

말기 폐병환자의 회복 간증을 우연히 읽고

성경책도 가지지 않은 채

멍한 머리로 찾아간 교회의 제일 앞 좌석에서

갑자기 그 교회 목사님이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갑상선 문제'있는 자가 오늘은 고침 받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갑자기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몸이 둥둥 뜨는 느낌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 후부터 열심히 교회를 나가면서

완전회복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많지만

이 이야기가 오늘 '애니아'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며

시기적으로 그 이야기를 듣게 하신 하나님의 나에 대한 메시지가 보이는 듯 하다.

 

 그 부인도

애니아도

도르가도

아무런 설명이나 지시를 받지 않고

그냥

명령처럼 지시를 받았다.

 

그냥

'일어나라'

 

거기에 눈에 들어오는 구절

'일어나서 정돈하라'

 

그리고는

그 부인도

애니아도

도르가도

그냥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 모습으로

많은 자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역할을 했다.

 

 

( 이 풀은 풀 자체로 주님을 찬송했습니다 )

 

 어제 그제 휴일 동안

많은 사진을 찍었다 .

겁나게 기쁨으로 이곳 저곳에서 찍느라

식사하러 오라고 부르는 장모님댁 콜에 가는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가는 길목 길목 날 유혹하는 것이 많아서..ㅎㅎ

 

그 중에 일부는

생각케 하는 것이 있었다.

 

위의 풀 사진은

'존재의 이유'라는 나름의 이름을 붙혔다.

그 구석쟁이에서

이름없는 풀로 있지만

그 풀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통해 들어온 의미가 있었다.

 

그 자체로 영광을 돌리다.

 

풀이면 풀로

의사면 의사로

아버지면 아버지로

나의 능력이 이정도면 이 능력으로........

그냥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담벼락 아래에 핀 풀의 생명은 그자체가 신선한 감동을 준다.

그 부인과

애니아와

도르가의 일어섬은

그 자체가 주님에 대한 전도이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놀라운 구제와

힘이 있는 간증의 능력이 아니어도

그들은 주님을 찬송했다.

 

 

 

 ( 채송화는 볼품없지만 참 아련하고 가여운 느낌을 줍니다. )

 

 이 이뿐 꽃 들이 채송화 들이다.

채송화는 잎사귀라고 보기에는 징그러울 감촉의 조그마한 잎을 달고

꽃이라고는 초라한 꽃으로

동요에도 등장하는

어딘가 아련한 느낌을 주는 꽃이다.

그 아련함은

채송화이기에 가능하다.

 

그들은

늘 스스로의 화려함을 간구하고

과거의 잘나가던 시절을 비교하고

현 상황에 절망하며

담벼락이 아니고

커다란 장미 농원에서

같이 자라는 한 그루의 장미로서 바램만 가지거나,

좀더 화사한 모습을 가지고

좀더 커다란 송이를 이루길 바랐더라면

담벼락의 풀은

쉽게 말라 버리고 마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채송화는 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하고 마는 들 풀이 되었을 것이며

누워 있던 애니아는

우울증으로 비틀어져 죽기 오래였을 것이다.

 

 주님은 나에게 이리 말씀하시는 듯하다.

'주하인

 오래된 구습있지?

 마치 중풍병 앓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될 자리이기는 하지만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사슬이라 생각되어 생각조차 아니하고 있는 왜곡된 생각 있지?

 이해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으면 시행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논리의 틀림이 있지?

 그것을 벗어라.

 그리고 , 주님이 일어서라 하면 그냥 일어서라.'

 

가만히 입장을 애니아에게 대치해 본다.

난 오래된 두려움이 있다.

'안될 것 같은..

 망신 당할 것만 같은..'

왜인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가만히 포기하고 있는다.

그게 주님을 만나고서 많이 낡아진 동앗줄이지만

실은 아직도 개지 못하고 있는 중풍병자 이불 같이 되어 버렸다.

 

자기 연민?

 

 그런 내가

무기력하게 양광아래 누더기 이불 위에 누워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자가 슬그머니 다가와

'일어나라' 한다.

아마도 예전의 나라면

'미친X' 하고 돌아 누웠을 것이다.

그런데, 애니아는 그냥 일어났다.

사전에 교분이 있는 자도 아니고

더구나 그에게 베드로의 그 이적을 오랫동안 들어서 갈구해왔다는 단 하나의 성경적 증거도 없고

그럼에도 그는 아무 대꾸도 않고

의심도 않고

일어선다.

참으로 이게 중요하다.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더구나 시체인 도르가에게

일어나라.. 하니 일어난다.

이게 중요하다.

 

주님의 그것은

우리의 선택은 필요하지만

결단이나 의지나 모든 것은

다 그 분이 내 선택을 기다려 이끌어 가실 것만 같다는 것이다.

 

이 때 애니아는

갑자기 온 몸에 힘이 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치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 정말 자신도 모르게..라는 말이 힘이 된다.-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그는 희망없는 중풍병자였다.

그가 일어나자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그를 통하여 살아계신 그 분을 뵈었다.

 

 원리는 이런 것 같다.

늘 난 베드로 같은 성령의 때를 기다리여야 겠다는 것이다.

주님이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선한 쪽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다.

 또, 그 분은 기다리고 믿는 선택을 중시하고 모든 것은 다 그 분이 인도하신다는 믿음이다.

일어나라고 하면 의심하지 않고 일어설 의식 만 가지면 된다.

지금껏 넘어짐을 많이 되풀이한 이유는

자리 정리를 안해서 그런 것 같다.

 필요없는 중풍담요는 이제 걷어 버려야 할 것 같다.

하늘을 향해 먼저 두 손으로 잡아 들고 털어버려야 한다.

팡~팡~

소리나게 자기연민을 떨구어 버려야 한다.

안된다고 , 망신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과거의 소리들은 떨어 버려야 한다.

때가 되면

주님이 오셔서

일어서라 하는 시기가 되면

과감히 떨구어 버릴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다.

 

 

적용

 

1. 성경 다섯 장 읽겠다.

 

2. 안된다는 생각은 정리한다.

 

3. 일어서라 하실 때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림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가슴떨리는 기대가 있다.

 

4. 일어서라 하시면 결단할 마음의 준비를 결단해야 한다.

 

5. 전도한다.

 

6.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한다.

 주님이 일어서라 하신 후의 모습에

과도한 상상은 금물이다.

 난, 채송화 일수도

담장 밑의 풀일 수도 있다.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 원한다.

나 자신을 그런 것에 만족할 수 있도록 주님 도우시길 기대한다.

날 사랑하자.

 

 

 

 

기도

 주님

감사하여이다.

일어서라는 말씀에

일어선 애니아와 도르가

일어서라 말씀 전하는 

베드로에게

오늘 느낌을 받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전 늘 부족하고

아직도 담요를 벗어버려 개어 놓지 못한 듯

늘 가슴 한 구석이 아직도 찝찝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걸 개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뜻을 읽었습니다.

도우소서.

때가 오길 기다립니다.

그 마져도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나를 사랑하길 원합니다.

주여

어떤 모습이든

날 받아 들이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들풀처럼

해바라기 처럼

칸나처럼

모퉁이 풀처럼

채송화 처럼

주님을 찬송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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