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기도로 돌아가자(행10:1-16) 본문
제 10 장 ( Chapter 10, Acts )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기도하는 자 고넬료.
그는 경건하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그렇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증상이 나오기에 경건한 걸 알수 있다.
그 기본은 '기도'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자다.
그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다.
응답을 받는다.
9.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베드로도 기도하는 자다.
타향에서도 기도한다.
지붕에 올라가 기도한다.
자기 만의 기도시간을 철저히 준칙하는 자다.
그 중에 그는 응답을 받는다.
( 기도로 두 우주가 만났다.)
둘은 사전 약속도 없었지만
한 곳에서 조우 하게 된다.
역사적인 만남.
성경의 기록
이 사건을 통해 전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데
시나리오의 한 일부분을 담당하게 되는 사건.
그 사건을 통해
묵상의 거리를 만들어 주심으로 또 한번의 깨우침을 가질 사람이
지구상에 엄청나게 많이 존재할 가치가 되는 일.
전혀 다른 환경의
두 인물이 공유한
소우주의 충돌.
이 모든 것이 '기도'로서 이루어진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추석 3일 뒤인 음력 8월 18일.
손님을 초대하지 않은 단촐한 저녁식사.
아내의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을 먹어가며
너무 맛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며
이 혀끝과 날 위로 해주는 음식솜씨까지 좋은 아내의 위로가
정말로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 혀끝을 자극하는 미각을 확대시키면
그것 ..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는 또하나의 재미가 되고 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배가 불러서 하루에 정해진 정도 밖에 안되니
배 안부르고
미각을 확대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순간
천국에서 이런 미각의 자극을 느끼지 못하면
그곳 생활이 과연 재미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스치고 지난다.
그러나, 난 곧 깨달았다.
천국과 세상의 대비.
세상은 세상 나름대로 한없이 재미있고 흥미 진진하고 행복할 수도 있다.
천국은 세상의 재미는 느끼지 못한다.
세상의 재미는 하지만 유한하다.
세상의 재미는 소수의 사람에게 제한되어 있다.
세상의 것은 더 큰 보상을 요한다.
만일 음식을 탐하면 '당뇨'가 기다리고
색을 탐하면 병이 기다리고
명예를 탐하면...............
또한 그 탐함의 뒤에는 유한한 자원의 갈취라는 상대적 손해의 사람이 나온다.
이 세상의 재미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욕'이다.
정욕의 재미는 정말 짜릿하였다.
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천국은 정욕의 짜릿함이 없기에
정욕이 주는 행복의 느낌을 느낄 수 없는
메마른 곳이 아닌가?
이 정욕은 성령의 소욕과 절대로 병립할 수 없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이 다름이 아니다.
천국은 과연 그런가?
난 금방 깨달았다.
이런 혀를 강렬히 자극하는 정욕의 행복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는 것.
기도가 쌓이고
묵상의 시간이 지나며
주님과의 은밀한 대화와 그 분이 쏟아 주시는 은혜의 기쁨을 체험한 자로서
세상의 것은
어느새 의미가 멀어져 가고 있다.
과거의 나.
이러한 체험이 경미하고
좀더 영적으로 어렸을 때는
정욕의 미가 없으면
천국은 무미건조할 것이라는 논리적 궤변에 걸려 넘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러기에
천국이나 기도나 사명이나... 모든 하나님 적인 것은
나중에 죽어서 가보면 알 정도일 것 이외의 의미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주님의 기쁨
주님의 평강 - 아침에 골로새서 3장에,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얻었다'는 구절이 가슴에 꽂혔다- 에 비할 그 아무 것도 없다.
이 어리석은 주 하인에게도 보여주시는 그 평강의 기쁨 조차도 이리 큰데
만일 천국에서 주어지는 영생의 기쁨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일 것이다.
세상의 기쁨은 시간이 지나면 (옥시토신에 의하여 1년 반까지 가기는 한단다...) 사라진다.
주님의 기쁨은 그렇지 않다.
체험해 보지 않고는 그 기쁨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이 원리 조차도 표현할 수 있는 기독교 인 조차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 난 너무도 적은 자지만 주님 만을 이처럼 바라봅니다.)
엊 저녁.
아내와의 식사 이후
아내는 교회로
난 운동하고 늦은 기도원 약속하고
우리 부부는 잠시 따로 분리되었다. ㅎㅎ
식후 얼마의 소화 시간을 가진 후 운동하고 나니 11시.
집에 돌아와 둘째 아이와 1시간 가량을 이야기 하였다.
그 아이는 내 생일 선물을 위하여 나름대로 거금 인- 일생 1000원 이상의 선물을 그 아이가 해 본적이 없다. 그것도 선물 하지 않으면 안될 공포 분위기 조성 하에서 조차 ..ㅎㅎ- 5천원을 투입하여 , 그것도 그 아이의 성품상 어려울 듯한 선생님께 허락 맞고 오후 늦게 안양시내를 뒤진 대 event 후 구입한 '내 선물용 명함첩'을 이쁘게 포장하고 편지를 써서 내 방에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그 아이는 스스로 생각해도 그게 무척 자랑스러운 가보다.
나름의 전과를 흥분하며 나에게 전하며 내 반응을 기쁘게 탐색해 간다.
난
이 아이가 나이는 하이틴이지만 이런 순수한 면이 있어 가끔 기쁘기 그지없다.
기쁜 마음은 주님이 주신 것이리라.
늦게 거의 한시가 되어서야
아내, 아들과 헤어져
바로 앞 기도원 철야 예배를 갔다.
정말 처음 제대로 하는 철야 예배다.
둔한 마음으로 갔으나
내 마음 상태와 상관 없을 주님의 인도하심을 늘 기대하게 된다.
마치는 시간이 가까이 되어서야 도착한 그곳에
강사 목사님이 '성령충만', 오직 성령으로... 라면서
성령 찬양만 1절을 되풀이 시키신다.
성령충만 만 기도하라 신다.
요새
바울의 대변혁
베드로의 인격의 뒤 바뀜.
그리고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묵상을 하고 있던 차 아닌가?
단순하고 명료한 기도 인도가 맘에 든다.
주님의 인도하심이라 생각이 든다.
머리는 복잡하고
생각이 이리저리 뛰려하던 것.
우주의 궁극의 끝에
현재와 미래와 과거에 계시는 그 분을 묵상하며
내 죄
내 부족한 결점
내 복잡한 머리...
모든 것.. 그냥 십자가에 맡기고 기도했다.
허라고 하시는 대로..
한시간 여 그대로 하니
난 어느새 서 있고 - 서 있도록 지시는 하시었다 -
가끔 가끔 눈 앞에 십자가에 계시는 예수님이 내 정면에 보이는 듯하다.
기도로 난 믿음의 선진들의 그것을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깨우쳐 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손수건 하나도 안챙겨 갔는데
난 눈물이 콧물이 강처럼 흘러서
그거 해결하느라 많이 죄송(^^;;;) 했다.
ㅎㅎ
3시가 넘어서야 내려왔다.
내려오는 하늘은 너무도 밝은 대보름 달이다.
하늘의 구름은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림이다.
그 뒤로 산의 실루엣이 수채화의 한켠을 채운다.
그것 만으로도
난 행운아다.
주님이 그리신 캔버스의 살아움직이는 명화를 돈한푼 안내고 내 혼자만의 소유로 보고 있다.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달은 흐르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 자고
아침 7시 반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
오며
성경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지만
예전의 무거운 부담은 덜하다.
주님은 차분히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주신다.
기초로 돌아가서
날 하나하나 돌아보게 하신다.
당연하지만
주님을 만남은 세상의 것과의 이별을 하며
하나하나 주님의 원리로 내 속을 바꾸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중에
인격의 변화는 필수이다.
그 변화를 주도함은 주님의 성령님이시다.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한 우리의 선택은 '기도'다.
묵상이다.
찬양이다.
그 과정의 혼란은 '주님의 평강'으로 도우신다.
평강은 성령이 인도하신다.
예전에는 강의를 받은 초등학교 학생이라면
이제는 실습에 들어간 좀 큰 학생이 된 차이다.
적용
1. 기도한다.
토요일
저녁에 시간을 식구들과 같이하고 가족 예배 드리고 시간이 되면 기도원 가겠다.
2. 성경 다섯장 읽겠다.
3. 기다린다.
주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인내로 기다린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어제
많은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정욕과 양립할 수 없는 주님의 원리에 대하여 확연히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그 원리를 내 속에 붙들기 위해
기도하고
성령으로 내 속을 지져 가며
세상의 정욕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어리석은
진짜로 어리석은 초등 믿음의 수준에서
벗어나야할 당위성에 대하여 느꼈습니다.
기도하게 하소서.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고넬료와 베드로처럼
장소 불문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를 회복 시키소서.
특별히 기도할 수 있는 여건과 집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오시는 모든 분들이
이 방을 나갈 때
저와 같은 원리로
머리를 끄덕이고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가실 수 있도록 도우소서.
이 모든 말씀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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