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그가 변했다. 나도 변한다(행7:30-42 ) 본문

신약 QT

그가 변했다. 나도 변한다(행7:30-42 )

주하인 2007. 9. 19. 10:32

제 7 장 ( Chapter 7, Acts )

 

( 폭풍 전 하늘, 그리고 십자가 )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그 시간..

 

 노인 모세가 터덕 거리며 걸어가던 광야의 저끝 나무에서

불꽃이 희한하게 타오르는 걸 보았다.

그리고 , 가 보았다.

거기에서 천사의 형상을 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왕자 모세에서 내려앉은 노인 양치기 모세는

그걸 보고 참지 못하는 호기심을 아직 지니고 있었다.

 비록 수많은 갈등과 생각과

좌절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아직 내적인 힘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주님이 주신

막연한 이스라엘 백성 들에 대한 관심.

 

40년 기간.. 약속은 없었다.

그러나, 어제 묵상의 얘기처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마음이 동했고,

그것을 확고부동한 소명이 아니었어도

의심 반 진심 반으로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 두고 살아 왔던 모양이다.

그 광야

아무 희망 없고 막막한 곳을 걸어다니며

그는 아마도

막연한 희망으로 생각을 놓지 않고

묵상하며 다녔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 멀리 관목 숲에 난 불의 이상함을 늙은 눈으로 볼수가 있었고

갈 힘이 남아 있던 것 같다.

 

그런 것이다.

때가 되어야 한다.

지금 특별한 소명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묵상하고

기다리다가

어느때 세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광야의 40년의 적막함은

그에게 시험의 기간이 었을 듯 싶다.

 

자신의 육적인 생각과 욕정을 내려놓을..

그리고 나서

나름대로 포기가 되고

막연한 남에 대한 관심 만이 남아

그 안에 온전한 비움이 되어서

드디어 주님이 역사하실 자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될 시...

바로 그때

주님이 떨기나무에

묘한 불을 태우시며

묘한 불을 볼 수 있는

묘한 눈을 가진

나이가 비교적 많이 들었지만

묘하게도 주님을 알아볼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는 모세에게

불현듯 나타나신 것이다.

 

주님은 주님의 때에 주님의 판단에 맞추어 나타나신다.

그 때를 맞추는 것은

우리가 온전히 비워져야 만 가능하다.

비워지는 것은

우리의 욕정과 육성을 언제쯤 포기할 마음의 의지에 따라 다르다.

 

 

 


 
31.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 있어 
  그때쯤

세미한 소리가

기이히 들리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때쯤

세미한 소리가

주의 소리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33.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주님의 소리를

천둥이 우르르하는 둔한 소리가 아니고

전율과 더불어 뚜렷이 알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텔레파시처럼..

 

 

 그 분은 오늘 말씀하신다.

 

네 발에 신을 벗으라.

이곳이 거룩한 곳이다.

 

오랫동안 신을 벗으라는 뜻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막연히 이해가 될 듯도 싶다.

그것은 개인적으로

주님 앞에 서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는 연습을 시키시기도 하고

예수님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 연습을

비록 간헐적이나마 하게 하심으로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나 거룩한 곳이란 사실을 인식 만 하면

주님이 역사하심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직은  자주 잊혀지지만..

 

 오늘 모세의 거룩한 곳은

그 분이 그 사십년의 광야 동안

간헐적으로 주님을 묵상하고 은혜 받으며

그 공허하고 모질고 긴 광야의 시간을 지나면서도

평범한 타인들처럼

오히려 멍해지고 바보처럼 되어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여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깊어지고 길어짐으로

이제는 단 15분 - 프랜시스 성인의 고백이던가?   -의 빈틈도 없이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질  자격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가 있다.

그건

모세가 어딜 가던

그는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신을 벗어서

늘 대지에 발을 딛고

대지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운을 느끼고

하늘을 쳐다 볼 때마다

하늘의 운행하시는 주님의 영을 보충받는

그런

늘 내주합일 되어 계시는 그 분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신발이라는 것은

서있는 대지와 차단 시키는 물질이다.

그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늘 교류되어 있는 상태를 차단하고 있는

어떤 '터부'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

그 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아직도 요원하기는 하지만

늘 주님 앞에 서 있는

그래서 거룩한 주님의 성령이

단 일분의 빈틈도 없이 내주합일되어

성령이 폭포수 치듯이

내 배로 부터 흘러나와

어딜 가나 거룩한 곳이며

무얼 먹어도 해가 없고

외부의 어떤 해도 날 상하게 하지 못하는 상태인

늘 거룩한 주님 앞에 서는 날 막는 것일까?

 

그게 무엇일까?

내가 벗어야 할 신은 무엇인가?

한시라도 그러기 위해 내가 해야할 이 광야의 행태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미움,원망,시기, 질투, 비교, 좌절, 남에의한 흔들림...........................

 

  

 
35.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 
  모세는 거절당했다.

세상에서..

이스라엘

자신이 도우려 했던 선한 의지를 지녔던 그 대상에게서

어이 없이 거절 당했다.

그래서 그는 광야로 도망쳐 와서

좌절과 번민과 비움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가시 떨기 나무 속에서 보이시던 천사의 손'을 통해

속량하는 자로 보내지셨다.

 세상은 그에 대하여 판단을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으나

그는 변했다.

 

이게 정답이다.

그는 광야의 그 과정을 통하여

세상의 소리와 상관없이 변했다.

 

 

 ( 아침 하늘이 이리 아름답게 변해 있었습니다. )

 

 

그가 변했다.

주님으로 인해 그가 변했다.

세상이 변한게 아니고 그가 변했다.

세상은 그래서 변한다.

그로 인하여 변한다.

그게 주님의 손으로 그랬다.

그가 변하기 위해

광야의 세월이 필요했다.

광야의 세월은 인고의 세월이다.

그러나, 그는 견뎠다.

그래서 변했다.

세상이 변했다

 

 

적용

 

1.  소명에 대하여 생각한다.

 소명은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남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룸도 주님이 하신다.

소명이 가슴을 떨리도록 크게 올 수 있기를 기다린다.

 

2. 광야에 대하여 묵상한다.

 광야는 인간의 판단을 넘어선다.

오래걸릴 수도 있다.

인간적 희망이 소실된 장소일 수 있다.

그것은 절망이지만 희망이다.

나도 광야를 걸어다닌다.

 

3. 나이는 주님 앞에서 의미가 없음을 기억한다.

 

4. 내 신발을 벗겨 주시길 기도한다.

 그 기간도 주님이 결정하심을 믿고 기다린다.

 모세는 나이 80에 벗게 된다.

 

5. 성경을 다섯 장 읽겠다.

 말씀 만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 살 유일한 안내자이다.

 

6. 세상의 원리와 주님의 원리에서 주님의 원리를 붙든다.

어제는 오랫만에 직원들과 회식을 따라갔다.

참 잘논다.

재밌겠다.

부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순간 고리타분한 나.. 라는 생각이 스친다

세상의 원리에서 하나님의 원리가 흔들릴려 한다.

의지를 발휘하지는 않았지만

금새 차분해진다.

 주님의 원리를 쫓다보면 세상은 따라오게 됨을 확신한다.

난 주님이 좋다.

 

 

기도

 

주여

감사합니다.

 

 그 천지개벽의 대 전락 후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곳에서

모세가 겪었어야할 중노년의 시간이 가히 짐작이 갑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중년을 보내는 좌절의 직업을 가진 저와

일견 비슷해서

유달리 공감이 가는 모세의 연단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는게

저도 비슷해서 감사합니다.

주여 떨기나무의 하나님을 뵐 자격이 있을 지는 모르지만

십자가를 통하여 주신 예수님을 통하여

동일한 기회를 주셔서 더욱 더 감사합니다.

주님

깨달은 은혜 놓치지 않도록 하소서.

신발을 속히 벗어

주님이 원하시는 그 시간에 속히 달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늘 주님의 떨기나무 임하심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도록 도우소서.

광야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우소서.

광야의 삶에 정신 빼앗기지 않도록 도우소서.

희망 없는 것 같지만 희망이 있음을 알게 하소서.

세상의 것이 날 위협하고 흔들어도

주님이 원리가 되시면

세상의 것은 아무런 효과가 되질 못하며

주님이 원하시면

그것 모두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하소서.

주여

도우소서.

모든 것 다도우소서.

나 마져 변케 하소서.

주님을 따라 걷겠습니다 .

주님 변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과 땅(행 7:54-8:3)  (0) 2007.09.21
나에겐 ( 행 7:44-53 )  (0) 2007.09.20
오래 기다리면( 행 7:17-29 )  (0) 2007.09.18
성령이 답이다( 행7:1-16)  (0) 2007.09.17
기도와 말씀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행 6:1- 7)  (0) 2007.09.15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