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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답이다( 행7:1-16) 본문

신약 QT

성령이 답이다( 행7:1-16)

주하인 2007. 9. 17. 08:54

제 7 장 ( Chapter 7, Acts )

( 갇힌 듯 하지만 난 주님의 하늘을 갈망하나이다.)

 


1.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 
  무서운 분위기

 무서운 목소리.

'이 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부형.

NIV에서는

아버지, 형제들이라고 되어 있다.

 비꼬는 게 아니다.

다정한 언사다.

 그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어제 묵상에서 나온다.

다정히 부르고 있다.

그리고 아래에 진행되는 말이

주님의 얘기만 하고 있다.

 

 어찌 가능할까?

( 주님 !!!

 

오직 성령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님

 

그 분이 답이다.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고 나서야 하란을 떠 날 수 있었다.

 

나의 데라는 무엇인가?

무엇이 죽어 나가야 하는가?

 

너무도 잘안다.

P.와 W 불분명.

그렇다면 이것 마져 온전히 주님께 내려 놓고 기다려야 하는가?

시간이 되길...?

 

 그리고 나서야 가나안 땅으로 옮겨갔다 .

아브라함도.  

 

 
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유명한 구약의 예화들.

모두

환난이 있다.

환난 중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답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씀으로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스데반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은 없는 것 같아도 천사의 얼굴을 하고

그 무서운 사람들의 세상적 물음에

너무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원리

예수님의 살아계심에 대하여 얘기 할 수 있었다.

 

 세상의 원리로 보면

도저히 합당치 않은 이야기들.

 

  스데반이나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두

초절정의 믿음의 소유자며

믿음의 조상이거나

예수님의 예표적 인물로서

닮아가길 원하는 분들의 좋은 면 -특별히 축복 받은...- 만 눈에 들어와서 이지

실은

이들이 겪은 고통과 환란은 말도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믿음 때문이다.

당연히..

 

 주님은

축복을 주시되

축복 만 주시는 게 아니다.

 

 스데반도 고통은 겪었으되

성령이 함께 하셔서 담대할 수 있었고

요셉도 그랬다.

 

일상에서 고난은 필연이다.

고난이 있어야 축복이 있다.

고난 없는 축복은

향기없는 뉴질랜드 꽃이다.

 눈 속에서 피는 설중 매는 더 아름답고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는 더 가슴이 찌릿하다.

 

 주님은 고통 없는 축복은 원치 않으신다.

그렇다면

고통은 반드시 감내하고

기뻐해야할 조건이다.

 

 고통 오면 기뻐하자.

굳어지는 얼굴을 펴고

억지로 웃자.

천사의 얼굴을 주실 줄 또 누가 아는가?

비록 나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저와 함께 계셔'라는 말씀처럼

나와 함께 계실 것을 믿어 의심치 말자.

아브라함처럼 단순하게 말씀을 의심치 않는 그런 자가 되자.

그리고

내 속의 터부가 곧 빠져나갈 것을 기다리자

기다리는 동안이 힘들고 어려워도 기다리자.

힘들고 어려운 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기회임을 알며 기다리자.

그러면

주님은 스데반의 그 모든 비밀을 알려 주실 것이다.

 

 

적용

 

1.  가만히 기다린다.

 주님께 기도하며 기다린다.

 내 후반의 비젼은 데라가 죽어야 온다.

 

2. 힘듦을 기뻐하자.

 그리고 그때 함께 계시는 주님을 묵상한다.

 

3. 일상을 충실히 산다.

 요셉이나 아브라함은 큰일 하려 하지 않았다 .

하루를 주님을 의식하며 살았다.

날 구원하신 십자가 예수님이 날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그냥 믿는다.

그냥 성령 충만하길 기도한다.

 

4. 성경 다섯 장 읽겠다.

 성경은 목숨이다.

말씀이 내 삶이다.

무조건 읽고

무조건 묵상하고

무조건 기다리자.

 

 

 기도

 

주님

늦었습니다.

왜이리도 잡아다니는 세상일은 많은지요?

왜 아직도 내 안의 데라는 죽어 나가지도 않는지요?

그러면서도

아브라함 처럼 진득히 기다리지도 못하는 지요?

왜 그리 요셉처럼 차분하지도 못하는 지요?

그러면서

왜 이리도 상황만 틀어지면

제 곁에 함께 계시는 주님의 존재는 까마득히도 잊혀지는 지요?

아침에 오다가

버스를 기다리며

예전에 은혜 받을 때 적어 놓은 급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래요.

분명코 그때는 내 눈이 촉촉히 젖어 들었고

가슴은 환희로 벅차던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자주요.

그럼에도

이 어리석은 영혼은 아직도

하란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여

기다리렵니다.

주여

당신이 이루실 줄 기다리렵니다.

기다리는 선택을 하렵니다.

움직이는 결단보다는 기다리길 선택합니다.

독자적으로 움직이면

조금더 나을 줄 알고 움직이다가

얼마나 많은 낭패를 경험했는 지요?

 

주님.

기다림으로

제 육신의 데라가 떨구어져 나갈 기회를 가지길 원합니다.

주여

당신이 제 안에서 역동하는 원리를

상황과 상관없는

내 온유와 겸손과 변함없는 평강으로 체험하길 원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주여

성령으로 날 인도하소서.

주여

성령으로 날 함께하소서.

 

주여.

주여.

찬란한 점심의 햇살처럼

찬란히

제 영혼에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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