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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에 듣고 영혼에 심기우고 (렘 36:1-19 ) 본문

구약 QT

귀에 듣고 영혼에 심기우고 (렘 36:1-19 )

주하인 2010. 4. 27. 15:04

제 36 장 ( Chapter 36, Jeremiah )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흐린 하늘이 매일 되풀이 되고

계절은 감각을 잃어갑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붉은 마음을 피워내는

꽃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도

손을 들어

주님 찬양하듯

홀로 뛰어난 존재 있습니다

 

주여

제 마음

그리하게 하소서

제귀에 속삭이시는

주님의 소리 들어

영혼을 모두어

주님 찬양하는 삶을 사는

제가 되게 하소서

 

 


1.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의 구전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감옥에 갇혔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고

'바룩'-32장에 나온.. - 이란 훌륭한 조언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예레미야님에게는

물리적 '갇힘'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영적인 자유자 아니던가?
  
  
6.  너는 들어가서 나의 구전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집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 귀에 낭독' 하다는 말이 자그마치 일곱번이나 나온다.

 

말씀이 직접 영혼에 임하는 예레미야님과

귀에 그 말씀을 전해주고 읽어주어야

겨우 영혼 속에 조금 내려와 이해가 가능할 

성장하지 못한 평범한 기독교인들과
 
 

19.  이에 방백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그나마 귀에 들려 줘도 그 영혼 속에 들어가질 못하는

방백들이 대비가 된다.

그 방백들이 예레미야님의 명령과는 달리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 한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드는가?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영혼에 직접듣는 예레미야님과

육신의 귀를 통하여 듣고 또 듣고 또 들어야 

겨우 영혼 속에 그나마 밤톨보다 적은 씨가 뿌려지는 어리석은 주모 같은 자들과

그나마 귀에 듣고 따른 생각을 그들 영혼에 다른 생각을 전하여 받는 방백같은 자들과...

 

 

  언제 부터인가

아침에 조금씩 조금씩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줄어들다가

꾀를 내어 MP3에 그날 묵상 구절을 녹음하여

걸어나오며 버스를 타며 듣고 온다.

버스를 탈 때는 그나마 묵상집을 들고 탈때가 자주 있어

그럴 때는 차 안에서 묵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영감이 떨어질 밖에... ㅜ.ㅜ;;

MP3에 녹음하여 듣는 경우는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을 때다.

그런 데 녹음을 하여 '귀에 들려지는 ' 하나님의 말씀이

가끔은 차안에서 울려나오는 라디오 소리나

창밖에서 눈에 쏘아져 들어오는 풍경이나

끼어 들어오는 차, 불법을 행하는 차, 양보하지 않는 차들이 있을때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별개의 외침으로 들릴 때가 많다.

솔직히 어떤 때는 출근하는 10-20 여분 남짓이

단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을 때도 있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바삐 나설 때

하늘이 맑고 공기가 쾌청한데다

눈을 자극하는 사진 소재가 있으면

어느새 난 그 쪽에 신경 쓰느라 거의

귀에 낭독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마디도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고는 결국 출근해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다가

마지 못해 '블로그'에 대충 그럼직한 주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가지고 마구 써내려가면

그나마 주님이 '네 수준에서는 그정도 밖에 할 수 없지'하는

사랑섞인 포용이 느껴져

그 맛으로 마구 써내려갈 때가 태반이다. ^^;;

 그것은 어쩌면 나 주하인 개인의

영적 성장과 주님과 동행하는 코람데오 삶의 시간이

점차로 늦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내 이 엉터리 같은 묵상의 결심으로

주님의 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신 분들에게

영향이 있을 수 있기에 허락하신

주님의 크고도 놀라운 배려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나.

그럼에도 그러한 것을

날 매개체로 삼으신 주님의 사랑을

죄송하고 감사히 여기지는 못하고

내 속 한켠에는 어쩌면 스물거리는 자랑이 날 교만히 사로잡아가고 있을 때도 있다.

마치 이것이 내 일인 것처럼..

그러다 보면 내 귀에 낭독하시는 이런 주님의 말씀 - 내 게으른 천성을 불쌍히 여겨서

MP3라는 편법을 허락하시어 주시는 이토록 넓으신 주님의 아량의 말씀-을

마치 잘 하는 것 처럼 착각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난 더 깊은 영적 교류는 없어도 되는 것 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많이 갈급하여 지기도 한다.

 

 예레미야님의 그 영적 풍성함.

비록 육신은 '갇혀있는 ' 영어의 신세이시지만

그 분 영혼의 자유로움과 풍성함과 막히지 않는 흐름은

도저히 비교할 바는 되지 않지만

이전에 그나마 조금 일찍 일어나서 주님의 그 풍성하신 은혜를

감사하게 묵상하고 큐티를 시작하여

놀랍도록 내 안에서 주님의 역동이 시작이되고

그것은 곧바로 '시'같은 글을 쓰게 만들어

길을 가다가도 불현듯 종이를 꺼내고

부스럭 거리며 펜을 꺼내어

허겁지겁 글을 쓰게 만들던 그 놀라운 영감의 경험이 있었었다.

물론,  최근 수년 내 경험해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지나가다 번뜩하고 내 눈을 쏘아들면서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미세한 전율 같은 것이

날 스치고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놀라운 희열로 사진을 찍어대던 그 느낌...

그 느낌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가끔은 '기도원'도 가고

말씀 앞에 몸부림 치고는 있지만

그때의 그 깊은 감성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나 , 내 귀에 말씀을 집어 넣어서라도

다시 내 영혼에 불을 지피는 자 되길 원한다.

 한편 , 방백들의 태도에서

그들 귀에 들리지만 그들의 영혼에 다른 소리, 다른 감각이 들어가도록 만드는

이유에 대하여 묵상을 해 본다.

그들은 '현실적 고려'를 했을 지모른다.

걱정과 근심과 가진 자로서의 기득권에 대한 염려가

하나님이 귀에 넣어주시는 말을 왜곡시켜 받아들이는 것 일 수 있다.

 경계하는 것이 이것이다.

나.

나름 습관이 되고

글 올리는 것이 어떤 사명처럼 느껴지면서

어쩌면 저런 기득권의 논리가 내 속에 있게 될 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주님의 말씀이 내 자랑이 오염이 되어

그 자랑으로 비틀려 세상에

오염된 '유교병'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주님이 직접 귀에 대고 말씀하셔도

내 생각이 방해하는 것을 보라.

조금 더 순수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님의 온전하심,

주님의 살아계심을 좀더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분이 계신 사실..

그 분이 날 건지신 사실...

그 분이 날 십자가에서 구하신 그 은혜..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이해하고 감사할 마음의 동기가 생긴다는 것 만으로

깊이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

특별히 아침의 시간에 맞아야 할 것이다.

  MP3에서 읽혀지는 말씀의 낭독이라도

집중해서 받아 들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적용

1. 귀에 듣는 주님 말씀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 민감성을 위해 기도한다.

 

2.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주님과의 묵상시간을 늘인다.

 

3. 세상 염려, 근심, 터부에 대한 고민은 말씀 앞에 내려 놓는다.

 쓸데없는 감상, 느낌은 가라 ~!

 난 말씀 , 살아계신 하나님을 묵상하고 선택한다.

 

4. 아침은 무조건 살아계신 하나님을 묵상한다

 

5.  성경 세장 깊이 묵상하며 읽는다.

 

6. 내 귀에 말씀하시는 주님을 묵상한다.

 

 

기도

  주님.

귀에 말씀하시는 주님.

살아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늘 살아계셔서 내 귀에 속삭이시는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하나님

친밀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가까이 인식하지 못했고

멀리 말씀 속에

내 인지의 장난 속에 그려지는

막연한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살아왔던

이 어리석은 주하인을 불쌍히만 여기소서.

저.

더 깊이 주님을 만나길 소원합니다.

진실의 아버지.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으로 임하셔서

내 영혼의 폭을 깊이 넓게 만나주시고

팽창시켜주시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탄성이 쏟아져나오고

눈물이 감동으로 나오게 하시고

쳐다보는 시야의 놀라움이 그득한

그런 감성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구원하시고

저를 인도하시고

늘 귀에 속삭이듯 다정히 인도하시고

모든 매사에 나사 빠진 듯 실수 연발이고

망각이 특기인양 잊어먹기 잘하는

이 못난이 주하인을 사사건건이 이리 간섭하시고

인도하셔서 다시 일으키시는

그 주님을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주여.

간절히 비옵기는

제 자식들,

그 아이들에게도 그냥 두시지 마시고

매사 귀에 대고 간섭하시고

그 아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인도하시사

매사에 주님의 감동으로 살아가는 일생되게 하소서.

주님.

세상이 너무 변해갑니다.

당장 내년에 어찌될지

오늘 어찌될지 모를 상황으로 어려워져가고 있는 이때

절제하게 하시고

자중하게 하소서.

어서어서 옛 부흥의 시절로 다시 돌이키시사

주님의 뜻 가운데 겸허하게 하소서.

 이나라 지키소서.

이 대통령님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사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정책을 피시게 하시고

매사에 흔들림없는 견고함으로 이끄시어

이 나라 , 세상에 리더가 되게 하시사

마지막 날 세상을 위해 쓰임받는

제사장 국가의 기본이 되게 하소서.

모든 경제, 정치, 문화의 리더가 되게 하소서.

이 나라 구성원 한분한분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소서.

더럽고 추악한 문화  사라지게 하소서.

화합하게 하시고 청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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