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노비와 자유와 말씀( 렘34:8-15 ) 본문
제 34 장 ( Chapter 34, Jeremiah )
8.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언약하고 자유를 선언한 후에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시드기야 왕이
백성들과만 언약하고
자유를 선언했는데도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님에게 임하신다.
'노비를 자유케 하고 다시는 종으로 삼지 말라.'
어쨋든 회복의 약속은 아니셨어도
말씀이 임하셨음은 주님의 마음이 돌이킬 여지가 있는 것이다.
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복종시켜 노비를 삼았더라
그러나 회복이 약속이 없으셨어서일까?
그들은 다시 '자유'를 억압하여 노비를 삼는
죄를 저지르고야 만다.
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그러자 , 다시 주님의 말씀이 임하셔서
예레미야님께 징벌을 예고하신다.
오늘 묵상 중 눈에 띄는 것은
'노비'를 풀어주고 또 압제하는 모습과
그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이 임하시는 부분이다.
노비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던가?
주님 앞에 올바른 모습은 아니었음에도
주님과의 계약이었던 노비 풀어줌을 준행하는데도 주님이 임하시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던가?
노비는 나에게는 무슨의미일까?
주님의 말씀이 임하시는 것을 보아
주님의 '특성'이라면 너무 불경한 언어이겠지만
주님의 이 세상에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던가?
히브리인이고 유다인으로 표현된 '노비'는 동족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육년을 잡아 두었으면 칠년 째는 풀어주라 하셨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노비.
그것도 자신의 언어를 쓰고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노예니
이방 노예 들보다는 훨씬 편하고 쉬울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그들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던 노비를 버림은
어쩌면 굉장히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자유케 하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
나에게 그런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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