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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 주하인 ( 요 8:21-30 )

주하인 2009. 1. 28. 08:45

제 8 장 ( Chapter 8, John )

 

집에 있는 구피랑은 다른 금붕어.

배가 볼록한게 뒤뚱거려서

귀여운 종자.

복어같은 금붕어.

 

생긴 것은 달라도

금붕어 같은 나.

 

나는 금붕어다.

나는 주님의 금붕어가 되길 원한다.

그것도 생명령 넘치는 ..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나'와 '너희'를 말씀하신다.

 

 '나'는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시지만

'예수님과 닮을 자' 모두에게 자신을 돌아볼

모든 예수님을 열렬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나 주하인에게

나를 돌아보고

예수님을 닮기를 간절히 비시는 '나'의 의미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계시는가?

" 위에서 낳은 자."

"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

 

반면 우리와 주하인, 내가 닮지 말아야 할 '저희'의 모습은

'아래에서 낳고

' 이 세상에 속한 자'라고 하신다.

 

 

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시면서

'너희'는 '너희 죄' 가운데 죽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너희와 나의 차이는

'예수님을 믿는 자' 와  '믿지 못하는 자' 차이다.

그렇다면 죄 가운데 죽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구원 받지 못한 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옥 백성이라는 의미이다.

이  세상을 마음대로 살다가 어디인지 모를 데로 썩어간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럽다.

이층인 내 진료실에서 내려다 보니

어떤 중년의 남자분께서 담배를 피워물고는

아마도 비틀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로 병원 주차장 쪽을 걸어가면서

' XX , 난 지옥 안간다.   내가 안간다는데.. '라시면서 사라지신다.

'너희'에 속한 그 분이 불쌍하다.

잠시 중보를 했다.

 


 
 
29.  를 보내신 이가 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렇다면

주님과 같이 온전한 '나'의 정체감은 어떻게 유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 분은 단언한다.

 '나를 보내신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정말 나도 그러고 싶다.

아니, 실제로 그 분의 임재감을 느끼려고 부진 애를 쓰는 편이다.

그분이 함께하시는 임재의 체험은

나도 모르게 선한 생각을 하게 하고

깊은 평강의 느낌으로 지낸다.

그 느낌은 기쁨이다.

증상은 감동이다.

이웃에 행복에 대하여 전파할 자신과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매일같이 밀려드는 삶의 문제들과 내적인 불편감들과 마주닥치면서도

난 어떻게  주님의 이러한 노력을 닮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항상'

항상이다.

난, 실은 거의 항상 넘어진다.

조금만 더 환우에게 친절하면 될 것을

'툭~'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를 던지고는 '금새 ' 후회하지만 늦다.

동료 들에게서 미련스러운 -^^;;  내 생각- 반응을 볼 때

금새 내 입술은 튀어나오고 말투는 냉랭해진다.

눈빛은 차가워 진다.

그리고는 금새 아차 .. 한다.

어떻게 '항상'일 수가 있는가?

 안다.

알긴 안다.

 주님 처럼 주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혼자 두지 않으신다 한다.

 

 어제 그제 구정을 지내고 올라왔다.

예전과는 다른 평온한 느낌으로 올라왔다.

형님이 깊이 예수님을 체험하셨다.

수개월 전 부터 아침마다 메시지 보내셔서 동생들을 축복하신다.

그 분 형님께서 집에 멋진 '구피'라는 금붕어를 기르신다.

이 놈 세마리를 가져오니

어느새 온 아파트를 다 나누어 줄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게 컸다.

 검은 지느러미를 옛스러운 선비의 수염같이 휘날리며

물 속을 가르는 구피는 생긴 것과 금붕어라는 느린 특성과는 달리

상당히 빠르게 헤엄을 치는 것이 '생명력'과 '우아함'이 동시에 느껴져

이 작은 생물체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형님에게 몇 마리 달라고 하여 분양 받아 왔다.

형님은 아침 일찍 작은 어항에 몇마리 담아

넘어지지 않도록 포장을 잘해  내 차에 실어 놓으셨다.

 비교적 덜 막히는 도로를 뚫고 집에 무사히 올라왔다.

얼른 서둘러서 어항 부터 챙겨서 아내에게 올려 보내고

포장을 띁고나니 이 것들이 이상하다.

움직임이 거의 없다.

숫컷 - 구피는 숫컷이 암컷의 1/3도 안되는 데 지느러미는 훨씬 우아하다- 한마리는 뒤집히려 하고 있다.

나머지 세마리도 거의 움직임이 없다.

간헐적으로 버끔 뻐끔 댈 뿐 ..

마음이 급하다.

산소 돌을 사 넣어야 한다는 형님의 말씀이 생각나 산소돌을 구하려 했지만

연휴라서 ........

역시 의사인 나는 다르다.

집에 링겔 줄 돌아다니는 것과 주사기 가 마침 있다.

링겔 줄을 잘라서 한 쪽끝은 어항의 큰 조개 껍질로 눌러놓고

반대편에 주사기를 대고 강제로 산소를 밀어 넣었다.

죽어가는 환자 응급처치 하는 기분으로..ㅎㅎ

 한참을 그랬다.

그러나 차도가 없다.

내일 떠다니는 시체 몇구를 건져낼 생각으로 속이 울렁거린다.

아내와 아들도 걱정이 많다.

생명은 크기에 상관없이 귀하다.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이럴 때가 기도해야 하는 때'라고 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말이 맞다.

아주 잠깐... 기도하니, 느낌이 온다.

'여보, 빨리가서 뜨거운 정수기 물좀 받아와봐'

아내는 떠오면서도 걱정이 많다.

한컵을 부으니 쏟아지는 물이 어항의 물과 온도차이 때문에

물길이 확연히 보인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물이 들어가자 마자 금붕어들이 놀랍도록 빨리 반응을 보인다.

순간적으로 죽어가던 금붕어가 활력을 찾아 빨리움직인다.

 식구들이 순간, 탄성을 질렀다.

'야~~아~'

그리고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

서둘러서 추운 우리 집 공기 때문에 또다시 금붕어들이 곤란을 겪을 것이 두려워

바닥에 내려 놓았다.

뜨근한 장판 아래에 놓고 내 머플러로 어항을 둘러 쌓았다.

 잠시의 그 모습을 보면서

난 '성령'을 부으니 시들시들 죽어가던 내 영혼이 살아 나는 듯한 모습을

뚜렷이 본듯 감동이 밀려왔다.

  

 세상에서 비들비들 시들어갈 때

주님이 함께 하시면 난 금방 살아난다.

내 살길이 어디인지 이제는 확실히 안다.

세상에 목놓아 살다 보면 어느새 차가와지고

죽어가는 지도 모르게 죽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구피 주하인...

맞다.

 항상 주님을 사모해야 한다.

그 분이 좋아하시는 것을 늘 바라야 한다.

그 분이 좋아하시는 것은 나 자체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환경 - 따스한 공기 적당한 먹이 충분한 산소- 속에서

난 구피의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성령으로 인하여 생명력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세상의 차거운 물속에서도 죽지 말고 버텨야 한다

끝까지 너울거리는 내 지느러미를 하늘 거려야 한다.

그들이 번식하는 그 번식력으로 내 생명을 이웃에게 나누어야 한다.

전도해야 한다.

삶으로 주님에게 기쁨을 드려야 한다.

그것도 항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단 일초도 잊지 않는 몸부림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분은 내 삶의 터를 속속들이 보고 계시다.

비록 구부러져 크게 보이고 적게 보이기도 하는 오류는 있지만

난 구피같은 눈을 들어서 주님을 늘 주시해야 한다.

그것 만이 이 급변할 수 밖에 없는 어항 같이 적은 지구의 세상에서

나란 구피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 만이 구피가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가듯이

시들어가며 죽어가지 않을 유일한 길이다.

 

 

적용

 

1. 성경 일곱장 읽겠다.

 

2. 난 주님을 항상 인식하겠다.

 

3. 나는 주님이 아니시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자 임을 명심한다.

 

4. 세상의 물 속과는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자이다.

 

5. 수요일이다.

 열심히 하루를 살겠다.

 기도하는 전인치유의 하루가 되겠다

 당직을 최선을 다해 서있겠다.

 

 

 

기도

 

주님

엊그제 보이신 그 놀라운 반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따스한 물이 들어가자 마자 였습니다.

주님.

서서히 식어가는 세상의 물 속에서

아직도 세상의 원리 가운데 가슴을 조이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구피보다 머리 적은 주하인은

그렇게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나'에 대하여 돌아볼

정체성의 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주님

닮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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