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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때(요7:1-13)

주하인 2009. 1. 22. 11:05

제 7 장 ( Chapter 7, John )

 

목련이

아직은 꽃을 맺지는 못하지만

터질듯한 그 생명력이

파릇한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몽울을 맺고 있다.

 

때가 되면

그는 또 한번

멋진 꽃으로 피워 내리라.

 


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피하신다.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셔서..

두려움은 아니시겠지만

그래도 전능자이신 분이 피하신다.

 

며칠 째 계속

주님이 예수님이시고 하나님이신 분의 말씀을 묵상하지만

멋지고 은혜로운 부분 보다는

약간은 엽기적이고

거북스럽기도 하기도 하고

차갑고 냉철한듯하고

거기에 오늘은 한술 더 떠

유약한 모습을 보이신다.

아니, 유약하지 않으심은 알지만

곁에서 뵙기에 속상한 부분이다.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그 답이 '때'가 아님도 알고 있다.

 

 주님의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 생각에 맞는 때라면

그냥 늘 멋지고 힘있고 은혜롭고 거침이 없고

유대인이 풍파를 일으켜도 물이 흐르듯 피해나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내 때는

내 감각에 맞는 때다 .

주님의 때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때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때는 가끔 내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쉽게 말해 어이없고 , 쪽팔리는 일을 ^^;;  그냥 참아가신다.

힘이 없어 도망다니는 비겁자의 모습을 보이신다.

그러면서 그게 힘이 없음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그냥 하나님의 뜻 때문임을 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하인.

주님의 때가 맞다해도 오늘 예수님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 까?

수도 없는 많은 죄를 짓고

마음은 분노와 불안으로 뒤 범벅이 되고

여차하면 터뜨릴 지경에 와 있을 지도 모른다.

 주님 예수님은 이 어이없는 미물보다 못한 자도 그러한 속상함을

그 대단하신 분의 위신으로 어찌 참아 내실까?

아마도 아무런 걸림이 없음이 분명하긴 하지만

어찌 그러실까?

 그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이 일치되기에 그러시고

그 분이 행하실 일을 확실히 알기에 그러신 것이다.

 

그렇다면

나 주하인은 왜 그러지 못하는가 쉽게 나온다 .

난 내가 주님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 - 전병욱 목사님께서 '종의 의식'을 버리고 '자녀'의 의식을 지니라 하신다...   '-라는 온전한 자기 정체감이 없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기뻐 내 것으로 하는 의지가 없음이 분명하다.

 그 의지가 발휘되지 않고 그 정체가 뚜렷하지 않음은

온전한 성령의 충만함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횟수는 많지만

더 깊은 사모가 부족함이 일 수도 있다.

 주님에 대하여 말씀으로 가까워진 지혜는 늘었어도

성령으로 내 영의 깊은 살이 틔워지고

성령으로 내 영의 피가 돌아가야 한다.

 이렇듯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그 분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과 그 분의 뜻이 일치되는

그래서 그 분이 늘 내 안에 계시고  

난, 그 분안에 거한다는 사실이

내 삶의 단 일분도 잊어지지 않아야 한다.

늘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해야 한다.

 

 나 주하인

아직 내 때를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아무 것이나 한다.

그러나, 주님의 때를 더 살아 드려야 한다.

온전히 주님의 때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처절히 주님을 사모해야 한다.

그래야 

이 버거운 영혼의 정서를 벗어던지고

이 육신의 썩어 문드러질 듯하면서도 유혹적인 끌림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만이

진심으로 주님이 이 세상에 주시고 싶어하는

영생의 자유를 누리는 길이다.

 

 

적용

 

1. 주님의 뜻에 맞추어 드리는 삶을 살자.

 오늘 하루 만이라도 내 약해짐을 기뻐하자.

 손해보더라도 주님의 뜻이면 참아내자.

그래서 그 분이 내 안에서 기뻐 쓰다듬는 체험을 다시금 되풀이 하자.

 

2. 성경 일곱 장 읽겠다.

 지혜는 말씀에서 나온다.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성령의 은사를 옳게 누릴 수 있다. .

 신비주의가 아니고 신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3. 기도한다.

 당직이다.

 성령으로 날 이끌어 달라 기도하는 시간이 되겠다.

 

4. 요 며칠 흔들린다.

 그래도 참자.

 주님은 어이없는 일을 주님의 때로 넘기신다.

 

5. 주님은 내 감각에 맞지 않는 일도 받아 들이길 원하신다.

 주님의 뜻이면 그리하게 하소서.

세상에 어이없는 일이 어디있는가?

 다 주님의 뜻인 것을..

어이없음은 내 때에 맞추려는 어리석은 노력일 뿐...

 

 

기도

 

주님

전 아직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제 모든 것임을 고백하면서도

삶과 믿음과 행동의 괴리가 번연히도 제 안에서 일어납니다.

주님

도우소서.

성령으로 이끄시고 도우소서.

절 강하게 잡으소서.

주님의 뜻 아니면 눈도 돌리지 않게 하소서.

무엇을 할 것인가 조금은 더 뚜렷하게 하소서.

그게 반드시 선교나 사역의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제 삶에서 조금은 더 주님을 위하여 날 내려 놓을 수 있는 하루 되게 하소서.

한걸음 한걸음

주님의 때에 맞추어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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