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의 때(요7:1-13) 본문
제 7 장 ( Chapter 7, John )
목련이
아직은 꽃을 맺지는 못하지만
터질듯한 그 생명력이
파릇한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몽울을 맺고 있다.
때가 되면
그는 또 한번
멋진 꽃으로 피워 내리라.
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피하신다.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셔서..
두려움은 아니시겠지만
그래도 전능자이신 분이 피하신다.
며칠 째 계속
주님이 예수님이시고 하나님이신 분의 말씀을 묵상하지만
멋지고 은혜로운 부분 보다는
약간은 엽기적이고
거북스럽기도 하기도 하고
차갑고 냉철한듯하고
거기에 오늘은 한술 더 떠
유약한 모습을 보이신다.
아니, 유약하지 않으심은 알지만
곁에서 뵙기에 속상한 부분이다.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그 답이 '때'가 아님도 알고 있다.
주님의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내 생각에 맞는 때라면
그냥 늘 멋지고 힘있고 은혜롭고 거침이 없고
유대인이 풍파를 일으켜도 물이 흐르듯 피해나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다.
내 때는
내 감각에 맞는 때다 .
주님의 때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때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때는 가끔 내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쉽게 말해 어이없고 , 쪽팔리는 일을 ^^;; 그냥 참아가신다.
힘이 없어 도망다니는 비겁자의 모습을 보이신다.
그러면서 그게 힘이 없음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그냥 하나님의 뜻 때문임을 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하인.
주님의 때가 맞다해도 오늘 예수님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 까?
수도 없는 많은 죄를 짓고
마음은 분노와 불안으로 뒤 범벅이 되고
여차하면 터뜨릴 지경에 와 있을 지도 모른다.
주님 예수님은 이 어이없는 미물보다 못한 자도 그러한 속상함을
그 대단하신 분의 위신으로 어찌 참아 내실까?
아마도 아무런 걸림이 없음이 분명하긴 하지만
어찌 그러실까?
그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이 일치되기에 그러시고
그 분이 행하실 일을 확실히 알기에 그러신 것이다.
그렇다면
나 주하인은 왜 그러지 못하는가 쉽게 나온다 .
난 내가 주님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 - 전병욱 목사님께서 '종의 의식'을 버리고 '자녀'의 의식을 지니라 하신다... '-라는 온전한 자기 정체감이 없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기뻐 내 것으로 하는 의지가 없음이 분명하다.
그 의지가 발휘되지 않고 그 정체가 뚜렷하지 않음은
온전한 성령의 충만함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횟수는 많지만
더 깊은 사모가 부족함이 일 수도 있다.
주님에 대하여 말씀으로 가까워진 지혜는 늘었어도
성령으로 내 영의 깊은 살이 틔워지고
성령으로 내 영의 피가 돌아가야 한다.
이렇듯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그 분의 뜻이 내 뜻이 되고
내 뜻과 그 분의 뜻이 일치되는
그래서 그 분이 늘 내 안에 계시고
난, 그 분안에 거한다는 사실이
내 삶의 단 일분도 잊어지지 않아야 한다.
늘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해야 한다.
나 주하인
아직 내 때를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난 아무 것이나 한다.
그러나, 주님의 때를 더 살아 드려야 한다.
온전히 주님의 때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처절히 주님을 사모해야 한다.
그래야
이 버거운 영혼의 정서를 벗어던지고
이 육신의 썩어 문드러질 듯하면서도 유혹적인 끌림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 만이
진심으로 주님이 이 세상에 주시고 싶어하는
영생의 자유를 누리는 길이다.
적용
1. 주님의 뜻에 맞추어 드리는 삶을 살자.
오늘 하루 만이라도 내 약해짐을 기뻐하자.
손해보더라도 주님의 뜻이면 참아내자.
그래서 그 분이 내 안에서 기뻐 쓰다듬는 체험을 다시금 되풀이 하자.
2. 성경 일곱 장 읽겠다.
지혜는 말씀에서 나온다.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성령의 은사를 옳게 누릴 수 있다. .
신비주의가 아니고 신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
3. 기도한다.
당직이다.
성령으로 날 이끌어 달라 기도하는 시간이 되겠다.
4. 요 며칠 흔들린다.
그래도 참자.
주님은 어이없는 일을 주님의 때로 넘기신다.
5. 주님은 내 감각에 맞지 않는 일도 받아 들이길 원하신다.
주님의 뜻이면 그리하게 하소서.
세상에 어이없는 일이 어디있는가?
다 주님의 뜻인 것을..
어이없음은 내 때에 맞추려는 어리석은 노력일 뿐...
기도
주님
전 아직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제 모든 것임을 고백하면서도
삶과 믿음과 행동의 괴리가 번연히도 제 안에서 일어납니다.
주님
도우소서.
성령으로 이끄시고 도우소서.
절 강하게 잡으소서.
주님의 뜻 아니면 눈도 돌리지 않게 하소서.
절
무엇을 할 것인가 조금은 더 뚜렷하게 하소서.
그게 반드시 선교나 사역의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제 삶에서 조금은 더 주님을 위하여 날 내려 놓을 수 있는 하루 되게 하소서.
한걸음 한걸음
주님의 때에 맞추어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피 주하인 ( 요 8:21-30 ) (0) | 2009.01.28 |
---|---|
판단할 때 필요한 일 (요7:14-24) (0) | 2009.01.23 |
난 안가렵니다 ( 요6:60-71 ) (0) | 2009.01.21 |
그냥 믿자(요 6:41-59 ) (0) | 2009.01.20 |
그도 또한 유혹이다 (요 6:30-40 ) (0) | 2009.01.19 |